품목정보
발행일 | 1998년 0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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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9쪽 | 600g | 148*210*30mm |
ISBN13 | 9788908071537 |
ISBN10 | 8908071539 |
발행일 | 1998년 0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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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9쪽 | 600g | 148*210*30mm |
ISBN13 | 9788908071537 |
ISBN10 | 8908071539 |
『비탄의 집』에서 버나드 쇼는 엘리 던으로 하여금 중요한 진실을 말하게 했다. 숏오버가 영혼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먹느냐고 묻자 엘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 많이 먹어요. 음악, 그림, 책, 산, 호수, 몸에 걸친 아름다운 옷과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큰돈을 쓰지 않으면 그런 것들을 얻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 영혼은 그토록 굶주린 거죠.”
(콜린 윌슨, 『정신기생체』, 폴라북스, 2012, 21쪽)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에 대해 검사는 “그의 영혼을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배심원들에게 말했다.”뫼르소의 경우 (앞의 인용에서 엘리가 대답한) ‘그런 것들을’ 얻을 수가 없어서 (영혼이) 굶주렸고 그래서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뫼르소는) 사르트르의 『구토』에 등장하는 로캉탱과 같이 명민한 관찰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런 남다른 식성을 같게 되는 과정 같은 것은 생략돼 있다. 뫼르소는 카프카의 『변신』에서 갑충(terrible vermin)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와 같이 신선한 식품 맛을 느끼지 못 하는 상태로 작품에 등장하는데.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육체적인 식성은 남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단 영혼은 식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단조로운 색조로 그려진 평범하고 규범화된 불모의 삶에 대한 분노가 솟구친다고 헤르만 헤세가 쓴 『황야의 이리』의 할러는 말하지만, 뫼르소는 그저 무감각하고 비현실적으로 느낄 뿐이다. 그런 태도, 가령 자신의 일임에도 타인의 일을 다만 바라보는 것과 같은 태도 또한 끊임없이 확인되는데. 이는 그의 육체적인 식성이 남아 있는 점과 대비를 이룬다. 그는 생명이 흐르는 파이프(pipe)에 지나지 않는다─T.E. 로렌스와는 다르게, 그다지 훌륭한 파이프도 아니다.*
*『벗들이 본 로렌스』.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에서 재인용.
이런 뫼르소의 태도의 특성을 나타내는 다음 인용도 독자의 기억에 남는 몇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뜻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중략)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편이고 나는 승낙을 했을 뿐이다. 그때 마리는 "결혼은 중대한 일이에요."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태도는 헤밍웨이의 『병사의 고향』에서 주인공 크레브스, 또는 (역시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프레드릭 헨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상태에서는 사랑할 수가 없다. 특히 뫼르소의 경우, 무관심에서 오는 투철한 ‘정직함’까지 볼 수 있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거짓을 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콜린 윌슨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비현실의 심한 더러움에 행복이 오염되어 있다면 행복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하여서 “그는 거의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범우사, 1997, 56쪽.
뫼르소는 당연히 인간의 삶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동경 따위도 없다. 간신히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말만이” 그에게 “의미를 잃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세상에 잘 못 들어선 짐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뫼르소이기에, 예심판사가 그의 머리 위에서 십자가를 흔드는 것은 촌극이 되고, (재판 중에) 검사가 그의 “심리의 공허”를 마치 사회의 악이라도 되는 듯 몰아붙이는 것 등을 보고 있자면 뜻밖에 오락적인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뫼르소에 대한 나의 빈약하고 의심스러운 이해를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 염려스럽지만, 하여튼 이 모든 것들은 (너무도 당연한) 한 마디로 아웃사이더의 문제이다. 콜린 윌슨의 소설 『정신기생체』의 「작가 서문」을 보면 카뮈의 『이방인』이 미국에서는 『스트레인저』로, 영국에서는 『아웃사이더』라는 제목으로 각각 번역되었다고 하는데. 제목도 내용도 모두 정확히 아웃사이더인 셈이다. 이 문제를 이 한 권을 갖고서 아무리 파고들어도 어림없겠고, 또한 석연치 않은 것은 (뫼르소와 같이) “징후와 별들이 드리운 밤”이 되고나서 무얼 깨달아봐야 너무 늦다. 죽음이 나를 앞지르기 바로 전이니까.
책을 덮으면 문이 열리는 그런 작품이다.
내 그림자가 못 쓰게 되기 전에 어서 입장해야 하니.
Au revoir!
이방인과 페스트 둘다 읽어야 되서 샀는데 ..
까뮈의 의도와는 다르게 번역이 된 것 같아요. (mere를 어머니 라고 번역되어있더라구요..그외에도 cela~ dire 부분도 조금 아닌 것 같구요..)
첫문단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냥 넣어뒀어요 ㅠㅠ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원본에 충실한 번역본을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