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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를 적다

[ 양장 ] 민음의 시-280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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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22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56쪽 | 310g | 124*210*15mm
ISBN13 9788937409004
ISBN10 8937409003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부

낙타 13
정물화 15
계동과 가회동 사이 16
중세를 적다 18
낮꿈 20
숯 너머 동백 22
코끼리傳 2 4
가릉빈가 26
본색 28
묵음 30
질문 32
너 34
송전탑 35
낚시꾼 36
꽃의 본적 38
나무의 영역 40

2부

의문 45
Y 47
병 48
북극 50
사라진 문자 52
다리의 처음 54
오리배를 읽는 시간 56
그날 58
푸른 코끼리 60
금요일 62
불멸의 사전 63
열쇠 64
화석 66
서쪽의 우산 68
암각화 70
숨은 천사 72
만신 73

3부

다른 형식의 새 77
당신의 컵 79
폭설 80
죽은 인형 82
시 84
방언 86
보라의 방향 88
모과 90
저녁이라는 물질 92
202호 남자 94
독무 96
어느 날의 오후 98
벌새 100
텍스트 92

4부

빵의 양식 105
없는 말 107
픽션들 108
소리의 행방 110
얼음장을 읽다 112
징후들 114
어떤 날 116
돌사자 118
붉은 날 120
클릭 122
빗소리 경전 124
입구 126
설원 128
이상한 오후 130

작품해설
불립문자를 향유하는 시간 133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너는 없고 이름만 남아 문맹인 밤이 너의 얼굴을 몰라 본다 너를 열고 들어간다 이름은 젖어서 불이 붙지 않고, 이름 안에서 너는 발굴되지 않는다

너를 부른다 사진 속 웃는 얼굴처럼 봄은 가지 않고 여전히 봄이어서 손닿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붉은 꽃, 봄은 출발하지 않는다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이름을 한 자 한 자 적을 때마다 까르르 웃으며 달아나는 파도, 밤으로 편입된 책상과 의자만 남아 몇 마디 말에 부딪쳐 삐걱거린다

다만 그렇게
이곳에 없는 봄은
---「너」중에서

복사본에 원본대조필 도장을 찍는다
원본과 같은 거라고
넘칠 일도
모자랄 일도 없다고
안심하라고

불태워 없애야 되는데
도장 찍힌 대낮 한복판에 번뜩이는 햇볕의 광기

강가에 나가 강물의 리듬에 손을 적신다
손에 와 닿는 물의 정직한 감정들이 몸속으로 흘러든다

눈앞엔 죽어서도 오리가 되지 못할
오리배

문장 밖으로 나오는 길을 잃고
오랫동안 오리가 되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기호들

사무실로 돌아와 조각조각 오리배를 찢는다
여러 번 베껴 적은 맹서의 문서들을 파쇄기에 넣고
단 한 번의 사랑만 기억하기로 한다
---「오리배를 읽는 시간」중에서

술병이 깨졌다 오래된 집을 버리고
사방으로 흩어진 이목구비
여기저기서 말똥거리는 눈
뻐끔거리는 입

몸을 버린 물이 마음 가는 대로 흘러 다녔다

첨도 끝도
좌도 우도 사라졌다
얼마나 오래 견디다 마음 바깥으로 나온 허밍인지

곳곳에서 처음 보는 꽃이 피어나 오늘이 낯설어졌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들
어순도 문법도 없이 반짝거렸다

혀끝에 박혀 발음되지 않던 새들을 지우는 동안

산란하는 약속처럼
말이 말을 버리고 질주하였다

저녁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숨을 곳이 많아진 알몸의 햇볕들
들끓는 피의 방향으로 공터가 넓어지고
색색의 날개 퍼덕이며 무한대의 음악이 시작되었다
---「방언」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세상의 절망과 시 쓰기의 희열

돌도 나뭇잎도 아닌
하느님도 나비도 아닌
너였다가 너의 미래였다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다만 지금은 황홀한 한때
-「화석」에서

홍일표의 시에서 시적 주체인 ‘나’는 자주 사라지거나 최소한 희미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또한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지닌다. 코끼리가 되고 돌사자가 된다. 사라진 문자가 되고 야생의 어둠이 된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나’는 그러나 마냥 평안하고 자유로운 상태에 놓인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무엇이든 볼 수 있고, 무엇이든 볼 수 있기에 그 모든 것을 받아 적어야 하는 책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아우성과 분노가 있다. 회한과 탄식이 있다. 보기 싫어도 보이지만 그것이 무언지는 잘 모르겠기에 그것을 적기 위해서 그것을 더 자세히 보아야 하는 운명. 시인은 그 운명을 황홀한 한때로, 희열의 순간으로 받아들인다.

세계의 (비)독해와 다시 삶을 향한 언어

여러 생을 건너와
오직 천지 가득 명랑하게 뛰노는 빗소리
빗소리
-「빗소리 경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에 등장하는 숱한 ‘나’는 세계를 독해할 수 없다. 독해할 수 없음을 시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불립문자’를 쓴다. 불립문자는 안개처럼 끝없이 모호하고 계속해서 지워져 쉽사리 읽을 수 없다. 그것은 경직되고 가시적인 인간의 언어와 대비된다. 시작과 끝이 확연한 인간의 세계와는 달리 불립문자의 세계는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변하고, 끝과 시작이 부드러운 원형으로 맞닿아 있는 듯하다. 마치 윤회하는 삶처럼. 이토록 해석 불가능한 세계의 삼라만상을 독해하려는 시인의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로 연결된다. 삶의 순간과 편린 들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그 자리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원할 처음이기에 새로운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중세를 적다』를 읽는 일은 여러 생을 건너와 천지 가득 명랑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것과 같게 된다. 중세에서부터 이어진 삶의 경전이라고 하여도 감히 충분할 것이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삼라만상의 “모호한 문장”을 읽을 수 없는 곤경에서 출발한 홍일표는 이제 “분명했던 것들이 분명하지 않아서 즐거운 전란”에 도착한다. 지금 그는 ‘분명하지 않은 것’을 해석 불가능성의 궁지가 아닌, 변성과 창조의 가능성으로 하는 자리. 그리하여 모든 것이 변화하는 무상한 세계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한 ‘나’는 멈추지 않고, 멈출 수도 없이 소멸과 새로운 재탄생을 향해 나아간다. 삶을 새로 출발하는 일은, 내 안에서 새로 돋은 날개를 펼치는 일은 그러므로 언제든지 가능하다.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없는 말들이 자욱해지”(「없는 말」)는 불립문자의 시간에 홍일표는 “이곳에 없는 이름을 지어 부”르는 일부터 시작한다.
- 김수이 (문학평론가)

회원리뷰 (1건) 리뷰 총점10.0

혜택 및 유의사항?
파워문화리뷰 홍일표의 '화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오***스 | 2021.08.14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황홀     너는 가고 있고 가면서 변신하고 있고 아무도 몰래 얼굴을 감추고 사라지면서 어디서 맑은 개울물 소리   날아다닌 꽃을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 손끝에서 하느님이 웃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심심하여 지상에 내려와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는 것 허공 안팎을 들락거리던 나비 한 마리 네가 없는 붉은 우체통 같은 오후의 정수리에 앉아 있다  ;
리뷰제목

황홀

 

 

너는 가고 있고

가면서 변신하고 있고

아무도 몰래 얼굴을 감추고 사라지면서

어디서 맑은 개울물 소리

 

날아다닌 꽃을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 손끝에서 하느님이 웃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심심하여

지상에 내려와 아이들과 놀아 주고 있는 것

허공 안팎을 들락거리던 나비 한 마리

네가 없는 붉은 우체통 같은 오후의 정수리에 앉아 있다

 

신의 지문이 묻어 있는 버드나무잎 하나

우편엽서처럼 날아와

가만히 들여다보면

햇살이 새겨 놓고 간 오돌도돌한 불립문자

더듬더듬 손끝을 타고 올라와 소곤거린다

 

소곤거리는 봄볕과 함께 산림문화관에서 버드나무잎 화석을 읽는다

돌과 이파리의 경계 너머

사라진 네가 숨어든 곳

유리관 안에서 모른 체하며 앉아 있는

돌도 나뭇잎도 아닌

하느님도 나비도 아닌

너였다가 너의 미래였다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다만 지금은 황홀한 한때

- 홍일표, '화석'

 

 

가고 있는 를 시인은 가면서 변신하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존재가 어디에 있을까? 몰래 얼굴을 감추고 사라지는 저 맑은 개울물 소리또한 시간의 흐름을 따라 끊임없이 어딘가로 흐른다. 사방에 깔려 있는 무수한 생명들은 저마다 시간을 살고 있다. 이들이 사는 시간은 물론 외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날아다닌 꽃을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 손끝에서 하느님이 웃고 있다는 시구에 나타나는 대로, 시인은 생명과 생명을 하나로 이어주는 하느님을 상상하고 있다. 시인이 상상하는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은 생명이 있는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정확히 말하면 생명 하나하나가 하느님을 품고 있다. 맑은 개울물 소리에도 하느님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만물에 깃든 하느님도 가끔은 심심하여 지상에 내려와 아이들과 놀아주고는 한다. 지상에 내려온 하느님을 굳이 인격체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하느님은 인격일 수도 있고, 기운일 수도 있다. 이리저리 해석할 여지는 다분하지만, 단 하나의 의미로 해석될 수 없는 존재가 하느님이다. 허공 안팎을 들락거리던 나비 한 마리에도 하느님이 깃들어 있다. “신의 지문이 묻어 있는 버드나무잎 하나또한 이와 다르지 않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는 햇살이 새겨 놓고 간 오돌도돌한 불립문자가 새겨져 있다. 불립문자는 인간의 시선으로 해석할 수 없는 문자이다. 인간의 의미를 뛰어넘은 자리에 있는 문자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불립문자가 더듬더듬 손끝을 타고 올라와 소곤거린다”. 아무나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물을 향해 귀를 활짝 연 존재들만이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그 속에 하느님을 품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왜 사물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듣지 못하는 것일까? 사물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물에 깃든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햇살이 새겨 놓고 간 이 하느님=불립문자를 읽으려면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에 주목을 해야 한다. 하느님의 소리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듣는 것이다. 머리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그 감촉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시인은 바로 이 느낌으로 버드나무잎 화석을 읽는다. “돌과 이파리의 경계 너머에 있는 이 화석을 시인은 사라진 네가 몰래 숨어든 곳으로 표현한다. 겉으로 보면 유리관 안에서 모른 체하며 앉아 있는 듯싶지만, 버드나무잎 화석이 결코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돌과 이파리의 경계를 넘은 화석을 따라 시인 또한 경계를 넘은 자리에서 그와 마주하고 있다. 화석은 돌도 아니고 나뭇잎도 아니다. 하느님도 아니고 나비도 아니다. 동시에 화석은 돌이고 나뭇잎이고 하느님이고 나비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이 화석을 시인은 온몸의 감각으로 느낀다. 온몸의 감각을 사용하려면 몸 깊이 숨어 있는 하느님을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가끔은 심심한 하느님을 불러내 아이들과 더불어 놀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느님은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우편엽서처럼 날아온 사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존재에게만 그 모습을 나타낸다. 아무 때나 드러날 하느님이라면 구태여 사물의 소리를 듣는 귀를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다만 지금은 황홀한 한때라는 시구에 표현된바, 마음속 하느님과 노니는 이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 이루어진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존재가 아무 때나 나타날 리 없지 않은가.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황홀한 한때는 시적 순간이 펼쳐지는 현재를 의미한다. 시적 순간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 현재로 표현된다. 이 순간을 놓치면 하느님은 저 멀리로 사라지고, 동시에 시적 순간 역시 허망하게 허물어진다. 시인은 너였다가 너의 미래였다가라는 시구로 현재 속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시간들을 포괄한다. 시간을 사는 하느님은 시간 속에서 시간을 넘어선다. 시간을 살기에 하느님은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시간을 넘어서기에 하느님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 홍일표는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하느님을 통해 시적 현재로 들어가는 순간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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