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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

[ 반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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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2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80g | 138*203*30mm
ISBN13 9788954446303
ISBN10 8954446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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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예리한 감각으로 촘촘하게 직조해낸 삶의 문학]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이현석의 첫 소설집. 책에 실린 매 편의 작품들이 이 세계와 사람들에 대해 그가 가졌을 집요한 물음들을 짐작하게 한다. 예리하게 깨어있는 감각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동시에 문학을 읽는 맛 또한 진하게 느끼게 할 책 -소설MD 박형욱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이현석 첫 소설집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현재 한국 소설 평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현석 소설가의 첫 소설집 『다른 세계에서도』가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2017년 중앙신인문학상 공모를 통해 소설 「참(站)」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에는 제1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읽어내는 힘”(오정희 소설가) “관념과 실감의 충돌 속에서 어느 쪽에도 함몰되지 않으려는 안간힘”(권여선 소설가) “섬세하고 엄정한 시선과 감수성”(전성태 소설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배경으로 한 소설집의 표제작이자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다른 세계에서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작가는 가장 동시대적인 윤리와 사회문제를 소설로 풀어내며 정교하고 치밀한 질문을 던지는 리얼리스트다. 다양한 인물들의 다채롭고 이질적인 목소리와 시선을 교차하며 서사를 구축하면서 골똘히 고민해봐야 하는 현실 사안의 세부와 인간 본연의 모순적인 지점까지도 감각하게 한다. 이현석의 소설은 현재의 세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치열하게 기억하고 기록하며, 그럼으로써 망각을 저지하며 더 나은 이후의 세계를 맞이하려는 삶의 문학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
다른 세계에서도
라이파이
부태복
컨프론테이션
눈빛이 없어
너를 따라가면
참(站)
참고한 내용과 약간의 덧붙임
발문 우리의 가능성_한정현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두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로, 나는 약 열 달 전부터 여러 번 그것을 쓰려고 시도했다. 등장인물의 나이를, 성별을, 젠더를 바꿔보았고 배경과 상황과 디테일을 바꾸기도 했으며 국적과 시대도 바꿔보았다.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중에서

어쩌면 수연이 그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수연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이유는 결국 수연이 아닐 수 없음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중에서

임신소식을 전했을 때, 기혼이라도 당혹감과 우울을 숨기지 못하는 산모들, 반대로 뜻밖의 유산에도 안도감이나 위안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오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다른 세계에서도」중에서

이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어야 하지 않을까. 기약할 수 없는 언제인가가 아닌 지금 당장이어야 하지 않나.
---「다른 세계에서도」중에서

아버지 안에서 라이파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영우는 초조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라이파이」중에서

단 한 번의 돌려차기. 긴 어둠 끝에 나타난 라이파이를 영우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라이파이」중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같잖소?” 부태복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서 특징적으로 설사 같은 복부 증상이 동반되는 점을 지적했다.
---「부태복」중에서

우쭐해진 기분에 부태복이 자기는 임진강을 건너왔다고 말하자 나쁘지 않던 테이블의 분위기가 돌연 식어버렸다. 사람들이 그를 노려봤고 옆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 한 명은 그에게 귀순자냐며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부태복」중에서

특히 〈컨프론테이션 1〉은 멀어질수록 또렷해지는 착각이 들어 나는 그 작품을 앞에 두고 자꾸만 멀어져갔다.
---「컨프론테이션」중에서

나는 너 좀 이상해, 라며 피식거렸다. 넌 아니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 한서가 두 손으로 내 뺨을 만졌다.
---「컨프론테이션」중에서

그 소리는 한참 전부터 벽을 넘어 식탁 위를 뒤덮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그의 울음을 듣고만 있던 준모가 중얼거렸다. “그날 이후로, 저 친구 눈빛이 없었어. 제정신이 아니었지. 어디 저 친구뿐이었겠나.”
---「눈빛이 없어」중에서

이를테면, 그때 그 사람은 정말 컷소를 정비하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애초에 난간 아래를 수직으로 응시하던 그는 정말 땅에 핀 꽃을 내려다보았던 것이었을까.
---「눈빛이 없어」중에서

그 언니 후랑크후르트로 간댔나. 거기 가면 집도 주고 옷도 준댔나?
---「너를 따라가면」중에서

1980년 5월 22일의 오후. 정혜는 투명한 팩 안에 조금씩 차오르는 피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한쪽 문이 닫혀야 반대쪽 문이 열린다. 교도소의 출입구는 이런 식이다.
---「참(站)」중에서

“이런 곳을 ‘참’이라고 하는군요.” “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서 미장일 하던 재소자들이 그럽디다. ‘층계참’ 할 때 그 ‘참’ 말이죠. 어쩌다 보니 저희도 그렇게 부르고 있네요.”
---「참(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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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동시대적인 윤리를 서성이며 구축하는 질문들

소설집의 처음을 여는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에서 의사인 ‘나’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시진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인데, 그는 과거에 커밍아웃하면서 부인과 딸을 떠났었다. 10여 년을 함께한 그의 동성 연인은 병원에 찾아왔지만 어떤 관계도 인정받지 못한 채, 이시진의 가족들에게 쫓겨나야 했다. 한편 나의 대학 동기인 수연은 그 상황을 텍스트로 풀어내며 생활동반자법 제정이라는 공론을 이끌어내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실을 과장하고 각색한다. 나는 수연에게 전화를 걸어 그 글은 픽션이 아니라고, 쓰기 전에는 최소한 동의는 구했어야 했다고 비판하지만, 되레 수연이 되받아친다.

“넌 물어봤니?” (……) 데뷔 직후인 2년 전 지금은 폐간된 작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을 떠올린 나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갑작스러운 청탁에 부랴부랴 쓰고는 잊어버린 작품으로 거기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모티브가 수연이었다.(17쪽)

‘나’는 그 소설을 떠올리며, 그 인물을 충분히 가공했다고 속으로 항변하지만 그럼에도 떳떳하지 못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처럼 소설은 첨예한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재현과 대상화에 대해서 숙고해야 할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표제작인 「다른 세계에서도」에서 역시 임신중지 및 재생산권에 대한 중층적이고 다면적인 시선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소설은 동생의 갑작스러운 임신을 걱정하는 산부인과 의사인 ‘나’(지수)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카(동생 해수의 태아)에게 보내는 전언의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사안에 대한 시각은 ‘나’가 참여하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칼럼 필자 모임에서 첨예화된다.

필진들 모두가 낙태죄 폐지에는 동의하더라도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구사하는 언어는 다르다. 희진 선배는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57쪽)다며 현실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대중의 반감은 최대한 피하는 방식의 표현을 지향한다. 반면 지수는 여성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권리로서의 임신중지를 피력한다. 이현석의 소설은 젠더/계급/가족의 층위를 넘나들며 그 미세한 결을 섬세하고 사려 깊게 살핀다. 소설집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병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고 그 실감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한 작가 이현석의 이력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지적이고 생명력 있는 이야기의 넓고 깊은 매혹

이현석의 소설은 다분히 이지적인 방식으로 활달하고 생명력 있는 이 세계의 순간들을 그려내며 우리를 매혹 속으로 이끈다. 또한 다채로운 소재와 방식과 구성으로 풍성하고도 능란하게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라이파이」는 1959년부터 10년간 연재된 동명의 SF만화를 소설 속으로 끌어온다. ‘라이파이’는 한국 최초의 토종 히어로. 검은 안대를 쓰고 흰 두건을 이마에 두른 라이파이는 연두색 쫄쫄이 유니폼을 입은 채 돌려차기 한 방으로 적들을 제압한다. ‘나’(영우)의 아버지 조한흠이 청소년기에 열광했는데, 이제는 노년에 다다른 조한흠의 환시 속에 라이파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한흠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 가히 뛰어난 도시 연애담이라고 할 법한 「컨프론테이션」은 이제는 사랑에 다소 심상한 전문직 여성 화자에 대한 탄성 넘치는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소설은 ‘내’가 다시 연애 감정을 느끼며 예외적인 관계로 한 사람을 들이는 그 순간을, 단단해지다가도 이윽고 허물어져가는 그 관계성을 성찰해내는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 〈컨프론테이션〉의 배경과 묘하게 교차시키며 삶의 비의를 곱씹게 한다.

노란 색감과 따스한 촉감으로 충만한 기억을 되새기다 보면 결국에는 단단해 보였던 우리의 관계가 열없이 허물어져간 장면들에 당도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테면 그것은 구드룬 엔슬린과 안드레아스 바더가 연인 사이였음을 뒤늦게 알게 된 여름밤처럼 평범한 대화 끝에 찾아왔다.(171쪽)

제발트의 소설 구조를 차용했다고 밝힌 「눈빛이 없어」에서는 이현석 소설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제발트의 독자라면 환호할 법한 이 소설은 발전소 기술자로 일했던, 천부적인 손재주를 지닌 우재의 삶에 대해, 일하면서 겪었던 끔찍했던 일들에 대해, 거기서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해, 그 미시사를 건조하고 담담한 필치로 묘사해낸다. 「너를 따라가면」의 배경은 1980년 광주다. 소설은 그 당시 광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정혜의 삶 전체를 조망하며 여성 젠더라는 렌즈를 통해 그날 광주의 시공간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내 피가 더러워, 더럽냐고!”(251쪽) 수혈이 시급한 상황에서도 작부의 피에 대해 차별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소설들의 끝에 이르면 작가는 ‘작가의 말’을 대신한 ‘참고한 내용과 약간의 덧붙임’을 마련해 작품을 쓰게 된 배경 및 출처 등을 상세하게 적어두었다. 이는 어떤 책임감 내지 명징성을 추구하려는 작가의 성향을 반영하는 것일 텐데, 이현석 소설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정치적 산문을 문학적 비명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작업”(『문학동네』 2020년 여름호)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의식하며, 현실을 가감 없이 직시하고 기억해야만 하는 순간들을 어떤 식으로 기억할지 신중히 고민한다. 『다른 세계에서도』는 그 작업의 충실한 첫 번째 결과물이다. 그리고 박민정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이 작품집은 새로운 계보의 리얼리즘을 촉발할 것이다.

작가의 말

구상 단계에서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의 가제는 ‘동의와 각색’이었다. 내가 가진 두 직업 간의 괴리에 대해, 특히 ‘재현’이라는 차원에서 벌어지는 충돌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2018년의 봄, ‘의료인의 글쓰기’와 관련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세 명의 동료들과 함께 『AMA Journal of Ethics』 2011년 7월호, ‘Physician-Authors’ 특집에 실린 논문들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가졌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묵직한 대의 없이, 거대한 사명도 없이 가끔은 왜 정의가 우리를 저절로 이끄는가,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처음 만난 이후로 내게 그런 작품은 바로 이현석의 소설이다. 하물며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을 날마다 확인하는 자에게도 질문이 육박한다. 분명 저 소설의 인물들처럼, 나의 선택과 윤리도 그 자리에 있었던 자가 필연적으로 가 닿을 수밖에 없는 실존이 아니었나. 이현석의 소설은 당연히 사회와 역사에 눈 밝은 작가만이 써낼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겹겹의 내러티브에는 오늘내일만 보는 감각으로는 절대 유지할 수 없는 작가의 집념이 서려 있다. 이 작가는 왜 이렇게 지독한가, 작품을 읽는 내내 작가의 오기에 질리고 또한 질투를 느꼈다. 소설을 쓰는 일이 그의 현장을 개척하는 일처럼 당연히 치열하리라는 예감이 사실이 된 지금, 작가가 내놓은 첫 번째 작품집은 사건이다. 이 작품집은 새로운 계보의 리얼리즘을 촉발할 것이다.
- 박민정 (소설가)

현실의 여러 문제를 끌어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자주 잊고 사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소설은 매혹적이다.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를 접하게 될 독자들은 소설의 이런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진실을 찾기보다 진실 속에서 헤매도록 설계되었기에 ‘어떠한 방향조차도 내게는 아무 의미가 되지 못’하는 순간들을 절묘하게 구현해낸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어도 좋을 시간이자 공간인 ‘참(站)’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과 ‘말해져야 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음을, ‘진실에 대한 열망’이 ‘마음이 쳐둔 함정’이 되는 이유를 헤아리는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욕망에 몰두하기보다 욕망의 작동을 분석하고 우월한 도덕을 점유하기보다 그 우월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크고 높은 고민을 하는 그의 인물들은 비록 고독하겠지만 우리가 거의 잊었거나 잊을 뻔한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게 한다는 점에서 놀랍도록 아름답다.
- 조해진 (소설가)

바로 그 마음이 결국엔 우리를 구할 거니까. 이 소설들이 우리를 가능하게 만들 거니까.
- 한정현 (소설가)

회원리뷰 (40건) 리뷰 총점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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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d******y | 2021.12.0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만큼 다양한 삶을 그리면서, 우리가 멀리 있다고 느낀 다른 세계의 모습을 이렇게 깊은 속들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언니가 내뿜은 연기가 길 위로 흩날렸지요.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고." - 나도 언니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언니가 지어 보인 웃음은 곤란함만 간신히 감출 뿐이었는데,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이;
리뷰제목

 

 

이만큼 다양한 삶을 그리면서, 우리가 멀리 있다고 느낀 다른 세계의 모습을 이렇게 깊은 속들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언니가 내뿜은 연기가 길 위로 흩날렸지요.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고."

-

나도 언니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언니가 지어 보인 웃음은 곤란함만 간신히 감출 뿐이었는데,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이 어떠한지 가늠이 되지 않아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습니다. 뒤이어 언니가 "그러니까 네 생각은 조금 미뤄둘 수 있을까?"라고 묻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도 선명히 떠오르는 것은 "너무 춥다. 어서 가!"라며 흔들던 언니의 손과, 먼발치에서 돌아보니 겨울바람에 휘날리며 은색으로 빛나던 언니의 단발머리.

이 두 가지만큼은 여전히 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57/58p

우리가 흔히 바라보는 시선 이면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모은 단편 소설집이다. 성소수자, 낙태, 60년대의 근대화, 북한, 법조계, 노동.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외면받아 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들 곁에서 혹은 그들과 거리를 둔 이들과 함께 바라보게 한다. 이런 이야기를 보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 봐달라고 소설로 나왔을 테다.

처연해지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이들이 여전히 지금도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모른척하기도 두 팔 걷고 도움을 주려 나서기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해도 내가 책을 읽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고전이나 사회 분야의 책을 읽을 때는 꼭 드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읽는 것은 이야기로 계속 이어져야 하는, 우리가 외면하지는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고 난 뒤에야 우리는 그들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완벽한 이해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지금은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 친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그것을 쉬쉬하며 살아온 한 여인의 이야기를 읽었다. 물론 소설이었다. 그 여성 역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지만 딸의 성조숙증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불편한 감정을 삭히는 것을 그려냈다. 큰 창으로 내보여지는 모습과 안에서 밖을 향해 바라보는 시선에 얽힌 그 불편한 감정에 씁쓸한 뒷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어두운 이야기는 모두 피하고 싶었던 심정이었을 것이다. 좋은 것만 보기에도 너무 짧은 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읽은 후에 들 '책임감'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불편함과 책임감, 연민과 이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못나 보였다. 여전히 지금도 나는 모든 것의 앞에 서서 부르짖지는 못할 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이야기 듣기를 피하지는 않으려 한다. 나의 용기는 이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피해 왔던 수많은 이야기들, 죽음이나 병, 사회, 윤리적인 이슈들을 이야기로 만나고 전하는 것에서 용기를 내어보자고 생각하는 것이 이전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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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m******5 | 2021.05.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 참 쉽다. 선과 악,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라면 얼마나 모든 것이 명료할까? 하지만 밝음과 어둠, 그 두 가지가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이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그러데이션을 배워가는 게 삶이 아닐까 싶다.     아주 명료하게 분리가 가능한 세상은 있긴 하다. 이진법의 세계. 컴퓨터의 세계는 모든 것이 1 또;
리뷰제목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 참 쉽다. 선과 악,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라면 얼마나 모든 것이 명료할까? 하지만 밝음과 어둠, 그 두 가지가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이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그러데이션을 배워가는 게 삶이 아닐까 싶다.

 

 

아주 명료하게 분리가 가능한 세상은 있긴 하다. 이진법의 세계. 컴퓨터의 세계는 모든 것이 1 또는 0이다. 0과 1로 이 많은 것을 해내는 그 세계가 놀랍다. 하지만 그 컴퓨터로 만들어진 세상이 이진법일까? 이상하게도 아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잣대가 필요하다.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잣대가 있어야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도덕, 윤리, 종교, 법 등 다양한 장치들이 그 잣대가 되어 지탱한다.

 

 

세상이 변하고 기술이 진보하면서 그 잣대들이 옮겨져야 할 때가 있다. 여태까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건 고통스럽다. 변화를 싫어하는 뇌 입장에서도, 여태까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서. 여러 가지 이유로 변화는 어렵다. 한 인간이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범위의 스팩트럼은 넓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뉴스 등을 통해 알게 되는 사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긴 쉬워도 정작 내 일이 되면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작가들은 그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불편함을 조금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게 끔 만들어준다. 가상의 이야기로 현실을 비춰보고 깨달음을 준다. 문학의 힘에 대해 (소설을 가끔 읽어서...) 가끔 놀란다.

 

 

<<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저, 자음과 모음, 2021)

 

 

이 책이 말하는 주제에 대해 처음엔 알지 못했다. '당신'이라 부르며 존댓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의사다. 주인공은 선배의 초대로 낙태법에 대해 반대하는 모임에서 칼럼을 쓰게 된다.

 

"언니가 오랜만에 연락해 온 이유는 낙태죄 헌법소원을 계기로 재생산권 이슈가 뜨거워지자 저명한 진보 시사지에서 언니에게 필진을 모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어요. (p.33)"

 

 

그러던 와중 동생은 갑자기 혼전 임신을 한다.

 

 

"당신을 알게 된 것은 작년 11월이 어느 일요일로, 그 성탄절 새벽으로부터 몇 해가 지나서였어요. (p.32)"

 

"어쩜 좋냐? 해수 임신했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맥이 풀린 나는 큰 소리로 웃어버렸지요. 처음부터 당신의 존재는 그러했습니다. 내게 웃음부터 나오게 만들었지요. (p.38)"

 

 

동생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주인공의 엄마는 주인공에게 동생에게 준비가 된 다음에 아이를 갖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전하라고 한다.

 

이야기 속에서 낙태법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지우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고 한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 있거나, 범죄 등으로 인해 임신한 사람들에게는 아이와 여성의 삶을 위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낙태 관련 약(미페프리스톤은 WHO에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약물적 임신중지법의 주요 약제 p.32)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낙태를 찬성하고 소파 수술도 진행했지만 정작 자신의 소파 수술 시에는 죄책감을 느꼈던 의사의 이야기도 나온다.

 

추상적인 논리로 이야기하면 둘 다 맞다. 반대에는 반대할 이유가 찬성에는 찬성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저 서로 간의 다른 의견을 논의하는 자리라면 모를까? 이 문제가 법이 되면 좀 다른 양상을 띄게 된다. 한쪽을 택하면 다른 한쪽이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면을 감싸안는 그런 완벽한 법은 없기에 불법이 되는 쪽은 항상 억울한 일이 생긴다.

 

주인공은 서성이고, 고민한다.

 

 

"희진 언니의 말처럼 우리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선택지가 있음을 해수도 알아야 하지 않나.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거리의 무례한 전도자들과 다를 게 무언지 물어야 했고 그럼에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동생이라면 몰라서 질주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수와 당신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은 아닌지, 만에 하나 그 말이 실수로라도 입 밖에 나온다면 그로 인해 나의 동생과, 다름 아닌 바로 당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지는 않을지, 만약 그리된다면 어찌해야 할지

 

그때의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p.49)"

 

 

그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대부분 비슷하게 고민하지 않을까? 타인의 일이라면, 가족의 일이라면, 내 일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당신을 처음 본 순가부터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사실. 꼬물거리는 손으로 당신이 내 손가락을 잡자마자 나는 당신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게 되겠지요.

하지만 나는 또한,

당신이 없는 지금 이곳을 상상합니다.

(중략)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기를. (p.70)"

 

 

책의 소개에 나온 "가장 동시대적인 윤리를 서성이며 구축하는 질문들"이란 글귀가 깊이 공감된다. 윤리 주변을 서성이며 계속 질문한다.

 

 

나 또한 안타깝게도 답을 낼 수 없다.

이 세상에서는 그렇다.

답을 명확하게 낼 수 있는 그런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

이런 고민이 없는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

그런 다른 세계에서는 좀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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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다른 세계에서도 - 이현석 작가의 묵직한 단편 소설집!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타*****쥐 | 2021.04.1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제목: 다른 세계에서도 글쓴이: 이현석 펴낸 곳: 자음과모음        굉장히 묵직한 단편집을 만났다. 단편 소설은 의례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하며 재치있게 마무리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게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등 다양한 느낌을 주지만 장편 소설보다 깊이 생각할 거리는 적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현석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리뷰제목


 

제목: 다른 세계에서도

글쓴이: 이현석

펴낸 곳: 자음과모음

 

 

 

 굉장히 묵직한 단편집을 만났다. 단편 소설은 의례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하며 재치있게 마무리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게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등 다양한 느낌을 주지만 장편 소설보다 깊이 생각할 거리는 적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현석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굵직한 8개의 단편이 실린 『다른 세계에서도』. 마지막 마침표를 눈에 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차례를 살펴본다.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 다른 세계에서도, 라이파이, 부태복, 컨프론테이션, 눈빛이 없어, 너를 따라가면, 참'. 제목을 보니 각 작품에서 만났던 등장인물과 사연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이 여운... 아무래도 며칠은 꼼짝없이 이 책을 떠올릴 것만 같다.

 

 

 

 8편 모두 수작이라, 어떤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이 글에 담을까 고민하다가 딱 3편만 골라보았다. '유나 씨가 정원에 내려가 산책을 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버지인 이시진 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아침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 연명치료 포기라는 힘든 결정보다는 환자가 쓰러지기 전에 겪은 사연과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딸 유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거기에 의사인 주인공 '나'의 소설 속 소설, 비정한 동기의 불편한 글 등 고작 17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인데도 상당히 탄탄하고 긴 여운을 남긴 작품이었다. '그해 성탄절 새벽을 나는 기억합니다'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다른 세계에서도>는 낙태죄 헌법 소원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 집단과 산부인과 전공의이자 곧 조카를 갖게 될 정지수라는 여성의 한 시절이 담겨 있다. 임신한 상태에서 십 대 환자의 8주 된 태아를 중절하고 자신의 아이와 그 아이가 겹쳐 보여 괴로웠다는 한 의사의 고백이 메아리처럼 울려 심장에 파고들었던 소설이었다. '한쪽 문이 닫혀야 반대쪽 문이 열린다'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참>은 이현석 작가의 공모전 첫 당선작이라 읽기 전부터 기대했던 작품이다. 아동 성폭행범이었던 죄수의 미심쩍은 옥사. 이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좇던 이진영 교수는 그 죄수를 억울한 일을 당한 인간으로 봐야 할지, 아동 성폭행범으로 봐야 할지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무너져내린다.

 

 

 


 

 

 

'애증'은 함정과도 같아서 관계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애초부터 필요 없던 감정임을 알게 된다.

<그들을 정원에 남겨두었다> p15 중에서...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고"

<다른 세계에서도> p57 중에서...

 

 

 

 쉽지 않은 책이었다.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은 어려운 소설은 아니었으나, 그 깊이가 남달라 읽으면서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수없이 물음표가 떠올랐던 책. 이 책은 현실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와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은 뉴스에서 봤을 사회적 문제를 냉철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읽은 이로 하여금 생각하고 고민하며 괴로워하게 만든다.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옳다는 답을 쥐여주지 않고 스스로 고민하며 길을 찾으라 독촉한다. 아니, 물끄러미 바라보며 방치한다. 이현석 작가의 글을 견뎌내기엔 더없이 미약했던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치며 그 선택을 미루고 또 미뤘던 것 같다. 한 번만 읽고 끝내기엔 아쉽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다른 세계에서도』... 언젠가 반드시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될 거란 예감에 순간 가슴이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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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 | 2021.02.27
평점5점
이현석 작가의 첫 소설집 기대됩니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h*****8 | 202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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