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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여섯 번의 강의

리뷰 총점9.3 리뷰 16건 | 판매지수 7,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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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3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436g | 140*210*20mm
ISBN13 9791189336325
ISBN10 1189336324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세계적인 문학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친근하면서도 지적인 글쓰기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문학가로, 세계 3대 문학상 중의 하나로 꼽히는 부커상을 2회 수상했으며, 소설 『시녀 이야기』로 수십 년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왔다. 이 책 『글쓰기에 대하여』는 시, 소설, 논픽션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저자가 40년의 작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을 펼쳐내는 책이다. 여섯 번의 대중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한 것으로,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친근하고 솔직한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애트우드는 숱한 작법서와는 다른 각도에서 글쓰기를 둘러싼 심원한 질문들을 던진다.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작가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쓰는가?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갈등들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글쓰기 앞에 가로놓인 난제에 비틀거리지 않도록 지적인 다독임을 건넨다. 그 과정에서 단테와 셰익스피어는 물론, 에밀리 디킨슨과 에이드리언 리치, 뒤라스와 앨리스 먼로, 톨킨과 스티븐 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들의 성좌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빛나는 사유를 길어낸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론: 미로 속으로

1장 길 찾기: 넌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2장 이중성: 지킬의 손, 하이드의 손, 그리고 모호한 이중성
3장 헌신: 위대한 펜의 신
4장 유혹: 푸로스퍼로, 오즈의 마법사, 메피스토와 그 무리들
5장 성찬식: 무명인에서 무명인으로
6장 하강: 죽은 자와 협상하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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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누군가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누군가는 남자나 여자를 꼬드기려고 그곳에 오는 게 틀림없었거든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문을 통과해 시인들이 우글거리는 개미총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보증받은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 보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일까?
--- p.56

대부분의 사람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본인 머릿속에 책이 한 권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생각은 어느 정도는 진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책 한 권은 품고 있거든요. 즉, 사람들이 읽고 싶어할 만한 경험을 하고 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작가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인 건 아닙니다.
--- p.58

“작품이 좋아서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것은 파테가 좋아서 오리를 만나고 싶다는 것과 같다.” 유명인사(심지어 적당히 유명한 사람)를 실제로 만났을 때 느끼는 실망감(그들은 항상 기대한 것보다 키도 작고 나이도 많고 평범하다)을 가볍게 표현한 말이지요. 하지만 좀 더 사악하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파테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는 먼저 오리를 죽여야 한다는 의미로요.
--- p.69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을 깨친 사람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읽기는 희귀한 기술이었으며,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건, 즉 이상하게 생긴 표식을 쳐다보면서 멀리 있는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술술 풀어내는 건 경외의 대상이었어요. 대중의 상상 속에서 책과 마법이 한통속이고 이런 마법이 사악하다고 여겨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지요. 과거 사람들은 악마가 변호사처럼 계약서를 들고 돌아다니며 항상 그 커다란 까만 책에 피로 서명하라고 종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p.83

글쓰기는 마음에 부담을 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록된 말은 증거와 흡사해요. 나중에 나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으니까요.
--- p.84

작가들은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던 규모로 빠르게 인기를 끌고 엄청난 유명세를 얻게 되었어요. 즉, 실제보다 훨씬 거대하고 훨씬 훌륭한 존재로 비춰지게 된 거지요.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책은 메가폰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목소리는 확대시키지만 그 목소리를 낸 개인은 지우는 거예요. 자연스레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에 의해 가려져버리지요.
--- p.89

바이런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면서 자신의 시처럼 비장하고 낭만적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지만, 몸무게가 늘자마자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릴까봐 대중의 시야로부터 벗어났지요. 비장하고 낭만적인 바이런적 영웅이 되는 것은 심지어 바이런에게조차 젊은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었던 겁니다.
--- p.89

작가가 먹는 음식뿐 아니라 그들이 쓰는 글에도 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아요. 그 전형적인 사례가 가여운 월터 스콧이지요. 그는 동업자를 위해 약속어음에 서명을 했다가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빚을 떠안았습니다. 이런 불운을 겪게 되면 자는 순간은 고사하고 깨어 있을 때도 악몽에 시달리게 되지요. 그리고 꼼짝없이 책상에 매여서 취향도, 작품의 질도 무시하고 활자를 쏟아내야 합니다. 펜의 노예가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인가요.
--- p.104

열여섯에 작가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내게 돈은 후순위였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일순위가 되었지요.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이 되고 현실을 알게 될수록 불안이 커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지?
--- p.106

체호프는 다른 이유가 아닌 오직 돈을 위해서,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그렇다고 그를 상스럽다 할 수 있을까요?
--- p.110

재능은 무게를 재서 측정할 수도, 돈을 주고 살 수도 없습니다. 기대하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재능은 주어지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식으론 얻지 못합니다. 소설을 창작할 땐 1할의 영감과 9할의 노력이 필요하다지만, 작품이 예술로서 살아남으려면 그 1할의 영감이 무조건 있어야 합니다.
--- p.110

여성 시인이 그렇게 묘사되는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솔직히 처음 얇은 책 두 권을 출판하고 난 뒤 내게 자살을 할 거냐 말 거냐가 아니라, 언제 할 거냐고 묻는 이들까지 있었답니다. 목숨을 걸고 할 생각이 없으면, 아니 목숨을 끊을 생각이 없으면 여성 시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 p.136

누구도 작가만큼 작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개인으로든 직업군으로든 가장 악랄하고 경멸스러운 작가의 초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작가들이 직접 쓴 책이지요. 하지만 누구도 작가만큼 작가를 사랑하지도 않아요. 과대망상증과 편집증은 작가와 한 거울을 공유하지요.
--- p.147

사실 ‘천재’라는 단어와 ‘여성’이라는 단어는 영어에서 보통 어울려 다니지 않아요. 남성 ‘천재’들이 하는 기이한 행동을 여성이 하면 보통 ‘미쳤다’는 꼬리표가 붙거든요. 심지어 ‘재능 있는’ ‘대단한’ 같은 단어들도 마찬가지예요.
--- p.151

작가의 이모가 조카의 신간 소설에 등장하는 방탕한 매춘부가 자기인 것 같다며, 자기는 그런 짓을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감히 자신에게 그럴 수가 있냐며 대화를 차단하는 일 같은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모의 물결 같은 머리 모양과 1945년 스타일의 허리 잘록한 정장을 훔쳐다가 완전히 다른 허구의 인물에 갖다 붙인 것에 대한 앙갚음인 거지요. 하지만 이모의 옷장을 훔치는 게 정말 작가로서의 당연한 권리일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남의 대화를 엿듣고 몰래 재구성해서 자신의 문장에 집어넣어도 괜찮을까요?
--- p.154

여러분이 여성이고 작가라고 칩시다. 그 두 가지 사실이 합쳐지면 자동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되는 걸까요? 그리고 그게 정확히 의미하는 게 뭘까요? 실생활에서 가까스로 괜찮은 남자 한둘을 찾아냈더라도 책에는 집어넣으면 안 된다는 뜻일까요?
--- p.159

“작가가 되려면 고생을 해야 하나요” 작가 지망생들은 습관처럼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고생은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합니다. “좋든 싫든 고생은 절로 하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수차례 이렇게 덧붙이지요. 고생은 글쓰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고. 왜 그럴까요? 고생도 않고 벼락출세를 해서 잘나가게 되면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늘어나거든요.
--- p.161

‘예술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예술적 성과를 이루는 것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해서 예술가로서 낙제점인 것을 구제할 수는 없지요. 3옥타브 도에 닿지 못하는 것을 강아지에게 잘해주는 것으로 만회할 수는 없어요.
--- p.166

성공을 거둔 작가들 중에 이런 의심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전작을 반복하면서 ‘그들’을 만족시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그들’을 실망시킬 것인가. 더 최악은, ‘그들’을 만족시키려고 자기 복제를 했는데 오히려 복제라며 비난받는 경우입니다.
--- p.193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바로 ‘독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아닌, ‘당신’인 독자를 위해. ‘친애하는 독자’를 위해. ‘갈색 올빼미’와 ‘신’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독자를 위해. 그리고 어쨌거나 이런 이상적인 독자는 누군가, 어떤 ‘한 사람’이지요. 독서라는 행위도 글을 쓰는 행위처럼 언제나 단수로 이루어지니까요.
--- p.214

이야기는 암흑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을 섬광에 비유하는 것이지요. 내러티브 속으로, 내러티브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건 어두운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요.
--- p.244

모든 작가는 ‘지금’에서 ‘옛날 옛적’으로 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 p.246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작가 애트우드,
글쓰기에 대해 말하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애트우드가 쓴 글쓰기 책이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첫 시집으로 단박에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캐나다연방총독상을 받았다. 그 후 오륙십 년 동안 시집 18종, 장편소설 18종, 단편소설집 9종 등 문학 분야에서 풍성한 소출을 내왔다. 『눈먼 암살자』(2000)와 『증언들』(2019)로 두 차례나 세계적인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았으며, 매해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또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시녀 이야기』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시위 현장에서 주인공 복장이 코스튬될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글쓰기 경력이다.

이 책 『글쓰기에 대하여』는 애트우드가 등단한 지 40년 정도 되는 때에 집필한 것으로, 2002년에 영미권에서 초판이 간행되었다. 첫 번째 부커상을 받은 2000년에 케임브리지대학이 ‘엠프슨 강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애트우드에게 강연을 요청하여, 2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뒤 대면 강의가 여섯 차례 이루어졌다. 엠프슨 강의는 저명한 작가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학자들을 초청해 다양한 문학적, 문화적 주제를 쉽게 탐구하는 독특한 장으로서,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와 영문학부가 공동으로 후원하는 강연 시리즈이다. 해당 6회 강의를 원형으로 하여 단행본 형식에 걸맞게 완성도를 높여 『Negotiating with the Dead: A Writer on Writing』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원제인 ‘죽은 자와 협상하기’는 제6장의 부제에서 가져온 것으로, 해당 장은 “이야기를 찾아나는 여정과 그 어둡고도 복잡한 길”에 대해 다룬다. 한국어판에서는 이 책이 작가가 마주하는 전반적인 갈등을 다루고 있는 만큼, 원제의 부제에 좀 더 강조점을 두어 ‘글쓰기에 대하여’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 책은 제목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또는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애트우드는 해당 주제에 접근할 때, 일반적인 작법서나 작가로서의 자서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보다는 글쓰기를 둘러싼 심원한 질문에 답해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왜 글을 쓰는가? 작가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애트우드는 이를 통해 ‘글쓰기’, 그리고 ‘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밝히려 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작가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한 글”이라고 애트우드 자신은 표현한다.

“박식하면서도 허물없고,
위트 있으면서도 견실하다.”


서론에서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하는 한편,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해 간략히 다룬다. 이 질문, 즉 글쓰기의 동기를 짧게 다루는 까닭은 작가들 개개인의 동기가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애트우드가 조사한 각종 동기의 목록만 빼곡하게 2페이지 반에 가깝다. 애트우드는 ‘왜 글을 쓰는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질문,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물음에 집중할 것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를 제6장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제1장과 제2장은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룬다. 그중 제1장은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 작가가 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제2장은 보다 일반적인 논의로 방향을 트는데, 특히 ‘닮은꼴’이라는 개념으로 해당 주제에 접근하는 것이 독특하다. 즉 작가에게는 ‘생활인’으로서의 자아와 ‘예술가’로서의 자아라는 이중성이 있는데, 이러한 ‘닮은꼴’의 자아가 오늘날 작가라는 것의 의미이자 갈등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제3~5장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각도로 답해 나간다. 제3장은 예술과 돈의 대립 속에서 이를 논한다. 작가는 생활인이도 하고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롯이 작품만을 바라볼 수도, 순전히 돈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이른바 “아폴론과 마몬”의 구도 속에서 작가는 “어떤 제단을 숭배”해야 할까? 이런 대립과 유사하게 제4장은 예술과 사회적 책임 간의 모순, 제5장은 예술과 독자 간의 딜레마를 다룬다. 이렇게 다양한 방향에서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라는 물음에 입체적으로 접근한다.

제6장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논의한다. 이는 서론에서 살펴봤듯 ‘왜 글을 쓰는가’라는 글쓰기의 동기와 관련된 질문을 지혜롭게 굴절시킨 것이다. 글쓰기란 곧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는 욕망 혹은 충동”이라고 보는 애트우드는 제6장에서 이러한 관점을 ‘삶과 죽음’의 맥락에 위치시키는 통찰을 보여준다. 만약 어둠 중의 어둠이 죽음이라면, 글쓰기는 인간의 실존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행위일 것이다.

작가들의 성좌에서 길어낸
글쓰기에 대한 빛나는 사유

이 책은 섬세한 접근이 돋보인다. 애트우드는 결론을 딱 부러지게 내기보다는 행간을 넉넉히 남겨놓는다. 또한 수많은 작가, 수많은 작품으로부터 화려한 인용의 태피스트리를 짠다. 단테와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 작가부터 에밀리 디킨슨과 에이드리언 리치 등의 시인, 그리고 뒤라스와 앨리스 먼로 등의 뛰어난 소설가가 나오는가 하면, 톨킨과 스티븐 킹 같은 장르작가들도 페이지를 수놓는다. 글쓰기에 대한 애트우드 특유의 관점이 이들을 아우르며 지적인 통찰로 독자들을 이끈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작가의 일과 삶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는 투명한 시선.”
- [워싱턴포스트 북 월드]

“매력적인 책. 박식하면서도 허물없고, 위트 있으면서도 견실하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나는 이 책보다 더 우아하게 글쓰기 기술의 핵심으로 다가가는 책을 마주친 적이 없다. 영리하고, 깊은 인간미가 있으며, 용감한 책이다.”
- [볼티모어 선]

회원리뷰 (16건) 리뷰 총점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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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글쓰기에 대하여(마거릿 애트우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더*드 | 2021.03.10 | 추천33 | 댓글40 리뷰제목
"대부분의 사람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본인 머릿속에 책이 한 권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글쓰는 이의 자아상에 대해, 이만큼 예리한 통찰이 또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이며, 시인, 에세이스트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가 부커상;
리뷰제목

"대부분의 사람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본인 머릿속에 책이 한 권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글쓰는 이의 자아상에 대해, 이만큼 예리한 통찰이 또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이며, 시인, 에세이스트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가 부커상을 두 차례를 수상한 것만 봐도, 그만큼 문제적이며 시의성있는 작품을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글쓰기에 관한 강연을 요청받았고, 이 책은 그간의 강의 내용들을 6개의 단락으로 묶어 정리한 것이다.


 

이 책에선 그녀의 작품을, 혹은 글쓰는 스킬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이 책은 마치 작가 Writer 라는 (개념) 것을 가운데 놓고 그 주위를 계속해 돌면서 그것이 대체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지를 탐색하며 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본문에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등장하고, 다채롭게 인용된다. 이는 내가 가지고 있던 책과 작가,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처럼 다가왔다.

 

문자를 쓰고 읽을 줄 아는 이는 흰 여백에 연필만 주어지면 무엇이든 적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쓴다하면 다 작가라고 볼 수 있을까?

 

1장

<"물론 작가가 되는 것과 쓰는 것 자체는 (...) 구분할 필요가 있겠지요."

"아, 거 봐요!" 니키가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겁니다. 아무리 글을 써도 만약 작가가 될 수 없다면, 딱히 써야 할 필요도 없어요!" p31,32>

 

분명 '쓰는 것'과 '작가가 되는 것'은 구별된다. 그렇다면 이토록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도 사람들은 왜 그토록 자기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걸까? (독립출판이 하나의 출판 트렌드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동기에 대한 것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에 걸맞는 세가지 질문이 서론에 등장한다.

 

  •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 -왜 글을 쓰는가?
  •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저자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왜 작가가 되었는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과정이 (신기하게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경험한 것과 흡사했다. 어쩌면 작가가 되겠다는 것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된 걸까요? 작가는 사람들이 변호사나 치과의사가 되겠다고 선택하는 것처럼 내가 택한 일도, 내가 택할 법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1956년, 축구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던 중에 그냥 갑자기 그렇게 된 거였어요.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내가 쓴 시가 훌륭한지 어떤지도 몰랐지요. 하지만 알았대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으니까요. p43>

 

내가 쓴 시가 등단이 되어서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심상을 글로 옮겼을 뿐이고 이것을 계속 해 나가겠다고 결정했기에 그녀는 작가가 되었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그러한 경험이었다. 

 

<작가는 그러니까 신문 기사를 쓰거나 판에 박힌 소설을 찍어내는 달인이 아닌 예술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작가는, 정말 특별한 사람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걸까요? p60>

 

2장

여기에 대한 답을 두번째 장에서 찾는다.

그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작가가 가진 이중성이 크게 작용한다,

 

<우리가 '작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버리는 두 개의 독립체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개별적인 작가 말입니다. 여기서 두 독립체라는 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의 존재,(중략)...

아무도 안 볼 때 그 몸을 넘겨받아 글쓰기에 사용하는, 같은 육체를 공유하지만 좀 더 희미하고 애매모호한 또 다른 존재를 의미합니다. p68,69>

 

저자는 일상의 존재와 글쓰는 존재의 두 가지가 독립되어 한 작가에게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 책의 세계는 픽션이며, 간접적인 경험과 상상력이 더해져 구현된 세계이다. 우리가 모두 경험한 것만 글로 써야한다면, 에세이, 르포르타주, 자전적인 전기소설 밖(논픽션)에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에게는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운 자아(for 글쓰기)가 따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작가가 글을 쓰는 시점과, 독자가 그 글을 읽는 시점은 늘 시간차가 존재한다. 그러한 연유로 작가는 부득이하게 이중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도 덧붙인다.

<모든 작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방금 전에 읽었던 그 책의 작가를 절대 실제로 만날 수 없으니까요. 글을 쓰고 출간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립니다. 출간할 때가 되면 책을 썼던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고 없지요. 또는 그렇다고 알리바이를 둘러댑니다. p71>

 

3장

좀 더 현실적인 문제가 등장한다. 아무리 유명하고, 많이 팔리는 작가라도, 그래서 얼마나 버는가?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등장하는 돈과 예술에 관한 것이다.

<이번엔 예술과 돈이라는 양 갈래에 대해 알아볼 차례입니다. 영어식 표현으로는 도로가 바퀴와 부딪치는 지점, 그러니까 작가가 예술적 기교라는 돌바닥과 월세라는 단단한 바퀴 사이에 꽉 끼게 되는 지점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작가는 돈을 위해 글을 써야 할까요? 돈이 아니면 무엇을 목적으로 삼아야 할까요? 어떤 의도나 동기가 있어야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p102>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명성일까? 부일까? 둘 다면 더 좋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책도 많이 팔리고, 부도 많이 쌓을 수 있기를 소망할 것이다. 

 

<작가에게 이런 돈 문제는 선택입니다. 오직 선택의 문제일 뿐이에요 p104>

 

<글을 쓰고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 

살아남아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않을 것" 이라는 금기아닌 금기가 존재한다. 우리는 왜 작가가 '부'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공고하게 만들어지 신화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가난하면서 진실한 예술가, 또는 부유하면서 영혼을 팔아넘기 예술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거든요. 이렇게 신화가 굳어져가는 거지요. p109>

 

저자가 파리에서 만난 한 지식인의 질문 (당신이 베스트셀러를 쓴다는 게 사실인가요?)에 답을 하면서도 느꼈던 모멸감(혹은 당혹감일 것이다)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부러 쓰는 건 아니에요."

 

<문학적 가치와 돈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돈이 되는 좋은 책, 돈이 되는 나쁜 책, 돈이 안 되는 좋은 책, 돈이 안 되는 나쁜 책. 조합은 이렇게 네 가지뿐입니다. p111>

 

4장

다음 4장에 이어지는 내용은 작가가 마주하게 되는 '도덕 및 사회적 책임'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이 예술 활동을 통제하며 예술가에게 간섭하는 지점은 '돈과 힘'이라고, 예술가가 예술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간섭하는 지점은 '도덕 및 사회적 책임'이라 이름 붙일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에 대한 질문은 아주 짧게 압축 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 영혼을 팔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얼마에 팔았고, 누가 샀는가? 영혼을 팔지 않았다면 누가 예술가를 껍질 무른 게처럼 짓밝는가? 영혼을 판 대가로 예술가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p152>

 

그렇다면 작가는 글을 쓸 때 도덕적 판단이 없는 중립적인 글을 써야할까?

 

<도덕적 함의가 전혀 없는 글을 쓰는 게 가능할까요? "아뇨." 

"도덕적 함의가 담기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나와야 하고, 그 결과물의 옳고 그름에 대해선 독자가 판단할 거예요. 작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말이에요." p163>

 

<등장인물이나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은 작가가 하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 해선 안 되지요. (중략)

하지만 독자들은 작품 속 인물을 해석하고, 고로 판단합니다. p163>

 

<언어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아요. p164>

 

조지 오웰은 글쓰기 자체가 정치와는 무관할 수 없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작가는 글 속에서 가치 판단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소설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김지영씨의 삶을 보여주며, 그와 함께 1960-2016년까지의 통계자료가 각주로 달린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책은 향후 2년간 스테디셀러가 되면서 많은 독자가 읽으며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소설이 되었고, 평론가들로부터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평을 받는다. 

 

<작품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걸 정하는 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예요. p177>

 

5장

5장은 독자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독자와 관련한 세가지 질문이 등장한다.

  • -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 -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책의 기능, 그러니까 의무는 무엇인가?
  • -독자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작가는 어디에 있는가?

 

<대상이 없는데 글을 쓰는 소설가는 드뭅니다. 보통은 가상의 일기를 쓰는 소설가들조차 독자를 상정하지요. p184>

 

<작가들의 공통적인 딜레마는 지금이든 나중이든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읽을까 하는 것입니다. p185>

 

<독자가 작가와 시공간상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오직 작가와 독자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닙니다." 

"시는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에요." (영화 <일 포스티노> 중에서) >

 

작가가 글을 쓰는데 꼭 필요한 것은 도구적으로는 언어(문자)이며, 최종적으로는 독자이다. 작품을 읽고 해석하며, 사유하는 독자로 인해 작가의 작품은 완성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역시 글을 쓰고자 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쓰여졌고, 저자가 보낸 메세지는 나를 통해서 재해석된다. 저자가 6강의 강좌를 정리했지만, 나에게는 유의미한 하나의 강의만 남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작가와 독자는 별도로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지만 책을 통해서 만나는 하나의 가상의 유기체와 다름 없다는 생각도 든다.

 

6장

마지막 6장은 다소, 은유적이다.

다루고 있는 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고, 그에 대한 서사시와 소설 작품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어둠 속 지하세상, 죽음이 아니라 이야기가 존재하는 곳.

고로 '이야기 story'는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읽혔다.

 

<이번 장의 제목은 "죽은 자와 협상하기"로, 모든 서술적 글쓰기, 아니 어쩌면 모든 글쓰기는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가설을 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사후세계로 들어가, 죽은 자로부터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데려오고자 하는 욕망에서 글쓰기가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p220>

 

<이야기가 있는 곳? 이야기는 암흑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을 섬광에 비유하는 것이지요. 내러티브 속으로, 내러티브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건 어두운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요. 시인들도 이 사실을 압니다. 역시나 컴컴한 길을 지나가니까요. 영감의 우물은 저 아래로 이어지는 굴입니다. p244>

 

책 속에 인용된 소설들은 내가 읽었던 것보다 그렇지 않은 작품이 더 많았다. 풍부한 인용은 각주 페이지가 252쪽에서 265쪽까지 정리된 걸로만 봐도 얼마나한 양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자기 글을 쓰고 싶어하는 지금, 이 책이 매력적인 글쓰기,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처럼 실제적인 예시와 가이드를 전하진 않지만, 왜 글을 쓰고자 하는 걸까? 하는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어떤 지점에서 글쓰기가 시작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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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글쓰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s****e | 2021.12.1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 구입했습니다. 생각정리에 도움이 되고 접근방법을 달리 해보는 등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습니다. - 이것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글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나의 저술 활동에 대한 책도, 특정한 사람, 시대, 국가의 글에 대한 책도 아니다- 글을 쓰고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 살아남아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다- 펜은 칼보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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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 구입했습니다. 생각정리에 도움이 되고 접근방법을 달리 해보는 등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습니다.

- 이것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글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나의 저술 활동에 대한 책도, 특정한 사람, 시대, 국가의 글에 대한 책도 아니다

- 글을 쓰고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 살아남아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다

- 펜은 칼보다 강하다, 시인은 세상의 공인되지 않은 입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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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글쓰기에 대하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g***y | 2021.11.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의 <글쓰기에 대하여>입니다.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작가가 쓴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를 좋아하는 터라 구매했습니다. SNS에서 이 책에서 발췌한 위트있는 문장을 본 기억도 있어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 예상했습니다. 책에서는 글이 좋다고 작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건 파테가 좋아 오리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라는 인용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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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의 <글쓰기에 대하여>입니다.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작가가 쓴 글쓰기에 관한 에세이를 좋아하는 터라 구매했습니다. SNS에서 이 책에서 발췌한 위트있는 문장을 본 기억도 있어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 예상했습니다. 책에서는 글이 좋다고 작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건 파테가 좋아 오리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라는 인용이 있었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마거릿 애트우드 작가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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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21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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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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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 | 2021.11.16
구매 평점5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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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 | 2021.11.16
구매 평점4점
글쓰기 자체보다는 인생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i*****t |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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