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영화 언어를 추구하는 한 감독,
그를 따라가고자 하는 비평의 언어
봉준호에게 영화 인생의 변곡점이라 할 영화 동아리 ‘노란 문’은 사무실 출입문이 노란색임에 착안,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는 동아리를 만들자’는 작정에서 이름을 따왔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 바, 『봉준호의 영화 언어』 역시 “하나의 영화 언어를 추구하는 한 감독을 따라가고자 하는 비평의 언어다”. 본문에서 자크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를 빌려 편지(letter)를 문자(letter), 곧 언어(letter)와 권력의 관계로 풀어내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닐 터다. 책의 제목 『봉준호의 영화 언어』 그대로, 독자는 봉준호라는 하나의 독자적인 언어로 들어서는 ‘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문을 통해 존 포드와 히치콕의 영화는 물론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미셸 푸코의 철학, 보르헤스, 보카치오,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활용되고 인용되는 언어의 세계가 펼쳐진다.
저자는 봉준호의 영화에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닮아 있음에 주목했다. 20년 넘게 그의 영화를 집요하게 추격해온 비평가 역시 봉준호의 방식을 글 속에 끌어들인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가 하나의 언어로서 봉준호를 다룰 때, 이를 읽고 듣고 이해하는 청자는 곧 봉준호의 언어를 구사하는 화자인 셈이다. 다채로운 인용과 이를 한 방향으로 그러모으는 구조의 탁월함에서 우리는 ‘봉준호의 언어로 쓰인 봉준호’를 본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언어 봉준호’에 입문하는 사전이자 가이드북, 실용회화집이다.
괴물과 살인마와 폭주하는 기관차 아래
숨어 있는 세계의 비밀
책을 여는 1장 「짧은 연대기」에서는 영화를 꿈꾸고 영화로 꿈꿔온 ‘어린 준호’부터 꿈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영화감독 봉준호’가 되기까지, 봉준호의 계획이 시작되고 완성으로 나아온 자취를 담았다. 한 영화의 시놉시스라 할 만한 스케치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봉준호, 알아나갈 봉준호의 밑그림을 그려본다.
〈기생충〉 속 기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2장 「부치지 않은 편지」는 자크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를 빌려 봉준호가 “필름 위에 눌러쓴” 편지, 주소 없는 봉투가 향하는 곳을 따라가본다. 영화라는 편지의 수신인이 관객이라면 비평집의 수신인은 작가와 예술가가 될 것이다. 이에 더불어 또다른 수신자를 평론가 자신, 또하나의 독자라 밝힐 때, 이 책 역시 ‘부치지 않은 편지’임을 짐작게 한다. 영화 속 세계로 관객을 이끄는 초대장, 영화 전체의 방향을 암시하는 첫머리가 ‘오프닝’이듯, 저자가 개봉하는 편지 봉투를 통해 봉준호라는 언어를 듣는 귀, 말하는 입을 터본다.
이 책은 봉준호가 쓴 영화라는 편지를 상세히 읽는 작업이다. 때로는 편지의 전체 양식을, 때로는 인용되는 편지의 내용들을, 때로는 문장 하나를, 때로는 잉크의 종류를 판별해가면서 필름 위에 눌러쓴 봉준호의 언어를 읽고자 한다. 가능하다면 독자들과 함께 새로운 편지를 쓰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하는 계획이 있다. 그리고 또다른 수신자가 있다. 평론가의 글을 두고 작가와 예술가에게 보내는 하나의 편지라고들 하지만, 이 책의 독자 중 하나는 글을 쓰고 있는 평론가 자신이기도 하다. 운이 좋게도 1990년대 후반부터 평론을 쓰기 시작하여 한국의 주요한 감독들의 영화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 돌아다니던 행위를 멈추고, 그동안 본 것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기생충〉의 기우처럼 근본적인 계획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기초적인 계획이 되기를 바라면서 편지 봉투를 개봉한다.
―「부치지 않은 편지」 중에서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 역시 서로 다른 장면들을 교차시키며 종내 하나의 주제로 모여드는 방식을 택했다. 3장 「추격하는 세계」는 추격전이라는 장르 관습으로 출발해 관객의 예상을 비껴 엉뚱한 종착역으로 이끄는 힘에 주목한다. 어느새 쫓기는 자를 닮아가는 쫓는 자의 아이러니, 순환하는 폭력의 굴레를 짚으며, 영화 속 한낮의 폭력이 극장을 나선 관객의 현실로 확장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4장 「괴물의 시학」이 다루는 ‘괴물’은 영화 〈괴물〉(2006)에 국한되지 않는다. 봉준호가 골몰해온 ‘인간의 얼굴을 한 괴물’ 혹은 ‘현실이라는 괴물’로 논의를 확장하며 그 중층, 폭넓은 외연을 언어학의 방식으로 접근해본다.
「보는 것의 변증법」을 다룬 5장에서는 ‘응시’와 ‘직시’ ‘훔쳐보기’ 등 다양한 시선이 집중되고 엇갈리는 방식을 분석했다. 봉준호의 안을 들여다봄은 물론 히치콕의 〈이창〉(1954),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를 경유하며 봉준호의 밖, ‘영화 속 보기’와 ‘영화를 보기’의 문제까지 시야를 확장시킨다.
6장 「헤테로토피아에서」는 미셸 푸코의 개념을 빌려 봉준호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가 보르헤스의 소설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속 ‘어느 중국 백과사전’을 언급하는 지점은 의미심장하다. 사전의 예시를 통해 언어와 통사법의 관계 맺음을 공간으로 확장한다. 봉준호의 영화와 이 글을 나란히 읽음으로써 독자는 우리의 현실, 일상적 공간의 이면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7장의 표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따왔다. 현실이 끊임없이 진실을 은폐하고 삭제하는 방식을 폭로한다. 어떤 진실은 영화라는 비현실, ‘(현실) 세계의 끝’이자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속에 있다. 우리 앞을 가리고 있던 거짓 언어를 꿰뚫는 눈을 되찾게 한다.
‘봉테일’이라는 별명마저 얻게 한 봉준호의 정교한 장치들은 8장 「사물들, 기호들」에서 만날 수 있다. 산수경석, 대만 카스텔라, 골뱅이와 황금 돼지, 극중 인물의 이름들, 배우들. 봉준호의 영화 속에서 순환하는 사물은 곧 순환하는 언어, ‘기호’이기도 하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촘촘한 봉준호의 설계 도면을 쉬이 스치지 않고 세밀히 들여다본다. ‘많은’ 기호를 살피고 있지만 저자가 우리를 이끄는 종착역은 ‘모든’ 언어를 풀어쓰는 대신 언어를 포착게 하는 눈, ‘말하는 법’이다. 영화에 관해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 해도 끝내 충분할 수 없는 탓이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가 봉준호라는 한 언어의 사전이자 언어학적 탐구이기도 한 이유다.
특기할 점으로 「〈기생충〉 이후」 역시 빠뜨리지 않았다. 다만 저자에게 ‘이후’는 〈기생충〉의 ‘뒷이야기’가 아니다. 도리어 〈마더〉(2009) 〈살인의 추억〉(2003) 〈흔들리는 도쿄〉(2008) 등 봉준호의 자취를 되짚어본다. 돌아봄으로써 나아갈 길을 가늠하는 시도다.
흔들리는 집의 위기 속에 목적을 향하는 빛이 있고, 찾는 자의 클로즈업이 있으며, 허망하게 부서지는 이미지와 죽음이 있다. 봉준호의 영화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흔들리는 이미지를 이어간다. 이미지의 불꽃놀이가 끝날 때 관객들은 〈흔들리는 도쿄〉의 마지막 대사처럼 비로소 말하게 될 것이다. “흔들린다.” 그것이 봉준호의 영화가 도착하려는 최종 목적지다.
―「〈기생충〉 이후」 중에서
뒤편에는 「작품 리스트」를 수록했다. 연대순으로 12개의 개별 작품을 모두 다루었다. 이제 막 ‘봉월드’로 들어서는 관객에겐 봉준호의 언어에 입문하는 개론이고, 봉준호를 읽어온 이들에겐 맞춤한 총론일 것이다. 「참고 문헌」 역시 출처를 밝힘에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세계, 번지고 퍼져나갈 이야기의 주소지로 채웠다. 본문을 더욱 단단히 하는 아교가 될 보론을 담았다.
그리하여 ‘근본적인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쓴다
현장은 영화 제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평의 현장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쉼없이 달려온 저자 이상용은 『봉준호의 영화 언어』를 통해 “이제 돌아다니던 행위를 멈추고, 그동안 본 것들을 정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질주하는 봉준호의 영화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르는 이 정류장에서, 저자는 여전히 멈춰 앉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을 봉준호라는, 영화라는 ‘버스’에 탑승하도록 이끈다. “감독들이 다음 영화를 만들듯이, 다음 책으로, 다음 작가로, 다음 이론으로 넘어가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언제나 미래의 영화를 기다리는 비평가의 태도다.
저자가 ‘봉준호의 영화 언어’를 정리하며 평했듯, “많은 작가와 감독이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가 남겨지는 경우는 꽤나 예외적이고 드물다”. 영화라는 ‘단 하나의 언어’ 속에도 작가 저마다의 언어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이 언어가 사어(死語)가 되지 않는 길 역시 단 하나다. 우리는 이제 더 말해야 한다. 영화를 지켜나가는 데 ‘충분한’ 사랑은 없으므로.
이 책은 하나의 영화 언어를 추구하는 한 감독을 따라가고자 하는 비평의 언어다.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많은 이를 매혹하는 영화와 이론의 숲을 경유하면서, 한국의 유수한 평론가들의 글과 독자들의 해석을 오가면서 이를 언어화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비평의 언어가 으레 그러하듯이 오독도 있고, 상투성에 휘말리기도 할 것이다. 다만, 영화비평이나 영화에 관한 책이 여전히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우리의 감성과 언어가 하나의 언어로 집약되기를 희망하였다. 이 작업은 감독들이 다음 영화를 만들듯이, 다음 책으로, 다음 작가로, 다음 이론으로 넘어가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