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경제학 이론에 대중 내러티브의 전염을 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매우 실제적이고 명백한,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경제 변화의 메커니즘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경제 예측에 필요한 결정적 요인에 대해서도 무지해질 것이다. 의학계에는 전염병 예측과 관련된 수많은 논문들이 있다. 이런 연구들은 전염의 성격과 전염인자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단순히 통계적 방법을 사용할 때보다 질병 예측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P.8, 서문
이야기의 전염성은 사람들이 특정한 이야기 또는 이야기 속 인물에게 개인적인 동질감을 느낄 때 가장 강력해진다. 가공된 인물이든 실존하는 유명 인사든 상관없다. 이를테면 도널드 J. 트럼프Donald J. Trump가 터프하고 뛰어난 협상가이며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라는 이야기는 2016년에 그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이끈 경제 내러티브의 핵심이었다.
--- P.10, 서문
‘경제 내러티브’란 사람들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바꿀 수 있는 전염성 강한 이야기를 가리킨다. 가령 직원을 고용할지 아니면 더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지, 위험을 무릅쓸 것인지 아니면 신중하게 굴 것인지, 또는 벤처 사업을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불안정한 투기성 자산에 투자할 것인지와 같은 결정들 말이다. 경제 내러티브 그 자체는 가장 중요하거나 두드러진 이야기가 아니며, 이를 구분하려면 내러티브가 사람들의 경제적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얼마나 큰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 P.27, 1장 비트코인 내러티브
칼 융Karl Jung의 ‘원형原型, archetype’과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환상幻想, phantasies’ 같은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은 문학이론가들은 이야기 속 이름과 상황은 변화하더라도 특정한 기본 구조는 거의 유사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인간의 뇌가 특정 이야기 구조를 선천적으로 더 쉽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암시한다.
--- P.47, 2장 통섭이라는 모험
경제 내러티브의 유행에도 같은 모형을 적용할 수 있다. 내러티브의 전염은 개인에서 개인으로, 만남이나 전화 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뤄진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보면서 언론 매체나 토크쇼를 통해 다른 매체로 전염되기도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유행의 궁극적 원인이 불분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대부분의 경제 내러티브에서는 전염병과 달리 죽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만, 확산의 기본 과정은 유사하다.
--- P.55, 3장 전염, 군집, 융합
냅킨에 그림을 그렸다는 대목이 이 이야기를 바이럴로 만든 핵심 요소라고 말한다면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독특한 시각 보조 매체가 기억력을 보조하고, 따라서 내러티브를 상징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는 충분하다. 모두 가 이 이야기에 나온 냅킨을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냅킨에 그래프를 그렸다는 사소한 세부 사항은 전염 초기에 내러티브의 전염률을 망각률보다 높일 수 있다. 또한 래퍼곡선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제 효율이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 P.92, 5장 래퍼곡선과 루빅스 큐브
대공황이 발발하기 2주일 전인 1929년 10월 15일에 저명한 예일대 교수 어빙 피셔Irving Fisher가 뉴욕의 구매관리자협회 앞에서 연설을 했을 때처럼 말이다. 그는 “미국 증시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안정적인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고, 신문들은 그 뒤로 며칠 동안 이 화려하고 참신한 어구를 무수히 써먹었다.6 절묘할 정도로 잘못된 타이밍에 나온 이 아이러니한 표현은 유행처럼 퍼져나갔고, 시장 붕괴가 길어진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기억되고 있다. 사실 이 짧은 문구는 지금까지 피셔가 쓴 어떤 저서보다도 유명하다.
--- P.137, 7장 인과성과 군집
섬광기억이 저장되는 경험은 노출값이 부족한 영화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비슷하다. 내내 어두컴컴한 화면만 나오다가 플래시가 터지는 장면에서만 순간적으로 밝아지는 것을 경험할 때처럼 말이다. 섬광 이미지는 사건의 이유와 배경, 분위기 등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 P.144, 7장 인과성과 군집
경제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사람들의 입에 얼마나 오랫동안 오르내리는지가 기준이 되면 안 된다. 중요한 전염성 내러티브라도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사람들은 항상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내러티브든 언제나 전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 P.158, 8장 내러티브 경제학의 7가지 기본 명제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미국 대선에 출마했다. 그의 맞수인 현직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경제 회복을 위해 적자지출 정책을 시도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반면 루스벨트는 당시 대중들 사이에서 이미 인기가 있었던 과소소비에 대해 연설했다. 그 연설은 루이스 캐럴의 유명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이야기의 형태였다는 점이 절묘했다.
--- P.307, 13장 노동절약 기계
2007~2009년 대침체로 이어진 주택 붐을 이해하기 위해 금리와 세율, 개인 소득 같은 관련 요인들을 살펴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는 사람들이 집을 투기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투기 내러티브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는 대출기관들이 반겼던 내러티브다.
--- P.358, 15장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불황
경제 사건을 예측하다 보면 내러티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정확한 학문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다만 정확한 연구방법론은 존재할 수 있다. 소설이나 교향곡을 평가하는 엄정한 학문은 없으나 관련된 사람들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할 만한 정밀한 방법론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 P.429, 15장 19장 미래의 내러티브와 미래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