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히도 잘못된 자기주도학습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자기주도적이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었다.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은 치열한 입시 환경에서 무엇인가 뒤처지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자기주도학습과 관련한 몇몇 성공담은 아직 자기주도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나는 안 되는구나’라는 불필요한 패배감을 남길 수 있다. 당장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에게, 혼자 공부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폭력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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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자기주도학습역량은 인간의 발달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기가 온다. 많은 것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그 결과가 혹여 잘못되더라도 누구를 탓할 수 없다.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해서, 혹은 하지 않아서 크고 작은 실패를 맞이하게 되고, 그에 대한 책임을 혹독하게 져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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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도학습이 유행처럼 번져나가면서 너도나도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자기주도학습을 시도했다. 학원 강사와 교사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청소년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수많은 예산을 투입해 각종 연구와 수업 모형을 개발하고, 학교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대부분 실패했다. 여전히 ‘자기주도학습’을 성취했다는 학생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고, 아이들은 여전히 자기주도학습이 어렵고, 학부모는 자기주도학습을 생각하면 내 아이만 안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코로나19로 학습 환경이 바뀌고 학습 격차에 대한 위기감이 커져가는 만큼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도 커지는 것 같은데, 실상은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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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 따라서 내신 관리와 수능 준비가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 자기주도학습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기주도학습’ 열풍이 급격하게 번져나간 것이 아쉽다. 특히 2010년 전후로 사교육 억제를 위해 고입과 대입에서 자기주도학습 역량을 입시에 적용하면서 국내 교육에 자기주도학습 열풍이 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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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기주도학습의 진정한 의미와 이를 학생들의 교육 현장에 끌어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근본적으로 자기주도학습의 이상과 우리의 교육 현실은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다가오는 새 시대에 맞는 인재에게 필요한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큰 고민과 함께, 당장 점수를 올려 성적을 잘 받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진짜 공부법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이 자기조절학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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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자기주도학습은 진짜 자기주도학습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공부에는, 특히 최상위권을 제외한 평범한 학생들 또는 하위권 학생들에게는 자기주도학습만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교육학 석사를 마치고, 인지과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효과적인 학습의 원리를 연구하고, 관련된 세계적인 석학들의 논문을 읽고 이론을 공부한 끝에 얻은 결론이다. 더불어 대치동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직접 지도하고, 수학 학원을 운영하면서 1만 명이 넘는 대치동 학생들의 학습 패턴을 분석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적용해본 경험을 더해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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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자기주도적인 학습자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학교 교육에 자기조절학습 도입을 시도한다는 것은 학습에 대한 부담감을 낮추는 동시에 학생들에게 도달 가능한 가시적인 목표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가장 익숙한 방법에서 시작해야 자신이 어떤 학습자가 되어야 하는지 눈으로 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성공한 사람도 자신의 큰 목표를 실천 가능한, 눈에 보이는 단기 목표들로 나누고 하나씩 이뤄나가면서 결국 큰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따라서 ‘자기주도학습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조절학습 역량을 갖춰야 한다.
--- p.136
자기조절학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단, 이전에 별다른 생각 없이 했던 공부와는 다르게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이다. 즉,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계획을 하고, 본격적인 공부를 한 뒤 스스로 공부한 결과를 평가해보면서 공부를 마무리한다. 이때 각 단계마다 적절한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나의 공부에 의도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이 자기조절학습이다. 따라서 자기조절학습을 시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동안 내가 해오던 공부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단계를 나누고, 각 단계마다 해야 할 것을 구분하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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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학자들이 시험 효과를 반복 검증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연구에서 시험 효과는 다른 학습법에 비해 높은 학습 효과를 보여 준다. 인출 연습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게 하려면 생각 없이 되뇌거나 반복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노력’을 들여 반복해서 기억을 인출해야 한다. 인출을 반복하면 기억이 단단한 개념으로 뇌에 통합되기 쉬우며, 나중에 그 지식이 인출되는 신경 회로가 강화되며 크게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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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빙하우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학습 후 10분이 지나면 망각이 시작되고, 20분이 지나면 처음 학습한 내용의 38퍼센트를 까먹는다고 한다. 1일이 지나게 되면 67퍼센트, 한 달 뒤에는 79퍼센트를 잊어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망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복습의 주기가 중요하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활용하면 효과적인 복습을 위한 최적의 복습 주기를 찾을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누적복습 주기를 만들어주는 공식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식은 내가 만든 스터디 플래너와 온라인 수학 교육 시스템에 적용되어, 누구나 편리하게 누적복습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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