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SF 전성시대, 우리 아이들의 오늘이자 미래를 그리는 SF 동화,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그 어떤 해보다 ‘SF적’이었던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누구나 마스크를 써야 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며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잠시 미뤄야 했던 한 해였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눈앞의 현실로 펼쳐졌고, SF 작품에서나 볼 법했던 상황들이 바로 내가 지금 겪는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문학계에서 꾸준히 비중을 키워 온 SF는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올 한 해 큰 성장세를 보였다. “SF 작품집이 소설 출판 시장 전체에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고, 우리나라 SF 작가들의 작품이 해외에서 줄줄이 번역, 출판될 예정이며, 영화계에서도 국산 SF 영화들이 여러 편 제작되고, 공중파 TV 방송에서는 본격 SF 드라마 시리즈를 만들기도”(박상준_ 서울SF아카이브 대표) 한다. 바야흐로 SF가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점점 그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날을 예상이나 했듯, 고 한낙원 선생(1924~2007)은 일찍이 1950년대부터 SF를 집필하고 아동?청소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발표하며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 왔다. 가히 우리나라 SF 분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한낙원 선생의 뜻을 기린 한낙원과학소설상은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2014년 처음 제정되었고, 어느덧 아동?청소년을 위한 대표 SF문학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과학과 스토리텔링이 결합한 SF를 꾸준히 세상에 내놓는 것만이 우리 어린이들이 장차 더 나은 세상을 누리고 상상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 여긴 한낙원 선생의 뜻과 그 뜻을 이어받은 유가족들의 후원으로 운영되어 온 한낙원과학소설상. 그 어느 때보다 SF적이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한낙원과학소설상의 제6회 수상작과 우수 응모작을 한데 모은 작품집 『고조를 찾아서』(사계절 아동문고 98)를 세상에 선보인다.고조할아버지가 친일파라면? 마스크 하나로 내 얼굴이 아이돌처럼 변할 수 있다면?흔히 SF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설정과 과학적 원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수상작이자 표제작 「고조를 찾아서」는 ‘시간 여행’을 다룬다. 시간 여행은 현재로서는 매우 요원한 일로 보이지만 다양한 작품에서 많이 이용하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이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에 「고조를 찾아서」는 ‘역사’를 가미한다. 자신의 고조할아버지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이용하여 고조할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일제강점기로 떠나는 것이다. 정말 시간 여행이 가능해서 나의 고조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고 상상해 본다면, 이 상상은 비단 시간 여행에 관한 상상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나의 조상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곧 나의 삶과 연결되며, 그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고조를 찾아서」의 주인공은 기술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바꿔 결과적으로 현재의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반전은 역사는 결국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게 전달한다. 「고조를 찾아서」로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한 이지은 작가는 우수 응모작 「아아마」의 작가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아이돌 마스크’의 준말인 「아아마」는 얼굴에 쓰기만 하면 원하는 아이돌의 얼굴로 변할 수 있는 디포머블 마스크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해도 연예인의 외모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현대 사회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지나친 외모지상주의를 과연 과학 기술이 해결할 수 있을지, 혹은 더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중간에 놓인 상업주의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주인공 여린이의 선택을 지켜보며 다양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하는 작품이다. 과학 기술에 발맞추어 달라질 삶의 방식, 우리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우수 응모작으로 소개된 「구름 사이로 비치는」, 「우주의 우편배달부 지모도」, 「시험은 어려워」 모두 과학 기술에 발맞추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상상하게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시대,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와서 살게 된다면 그 생명체와 우리는 어떤 관계로 지낼 수 있을까. 「구름 사이로 비치는」을 통해 지구가 고향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꿈꿔 볼 수 있다. 우주 행성 간 우편배달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우주에 있는 어느 곳이라도 쉽게 갈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아마 우리는 토성에 있는 공립학교를 다니며 명왕성으로 대기권 봉사활동을 떠날지도 모른다. 「우주의 우편배달부 지모도」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시험은 어려워」 속 세계에서는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도덕 시험을 치른다.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우리는 도덕적 판단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상에서 늘 도덕적인 선택을 요구받는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해도, 우리는 우리와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갈 것이고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도덕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결국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 역시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한낙원과학소설상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SF를 통해 상상하고, 그 상상을 바탕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나가는 것. 기술에 지배당하지 않고 우리가 능동적으로 기술을 이용하여 삶을 더 풍부하게 하는 것. 다섯 작품을 통해 만나 본 『고조를 찾아서』의 주인공들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나갈 미래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