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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생각들

걷는 생각들

: 오롯이 나를 돌보는 아침 산책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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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284g | 120*188*14mm
ISBN13 9791164842230
ISBN10 116484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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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손을 잡지 않고 걸어가는 커플을 보며,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보다 더 진한 연결을 보았다. 어쩌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연결이 더 간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나 손을 잡아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청춘의 사랑, 젊음의 사랑이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의존이라면, 언제 먼저 떠나 더 이상 손을 잡아주지 못할 노년의 사랑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독립일지도 모르겠다. 존중하기 위한 ‘손 놓음’이었을지도.
그러고 보면 손을 잡고 있는 동안에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손을 놓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은, 육체에 메인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는 존재에게는 더 노력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 p.48, 「손을 잡지 않는다는 것」 중에서

새벽녘 아침 산책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산티아고 어른이 유치원에 등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점에서 퇴원하는 유치원 생활을 시작해본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인생을 꼭꼭 씹으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국은 가장 기본적인 일부터 쫀쫀하게 잘해야 한다. 무용해 보이고 비생산적인 아침 산책을 시작한 덕분이다. 그것이 내가 아침 산책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p.69, 「어른이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 중에서

양치식물. 꽃이 피지 않고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 뿌리, 줄기, 잎을 가진 식물 중 지구상에 가장 먼저 나타난 식물.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양치식물은 ‘혼자’였다. 암수가 만나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의지하여 끈끈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아닌, 그저 음지에서 조용히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역사를 찬찬히 기록해갔다. 올리버 색스가 왜 양치식물을 사랑했는지 아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높은 삼나무처럼 눈에 띄는 주인공 같이 보이기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라도 최선의 적응을 다해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양치식물은 분명 또박또박 혼자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을 닮았다.
--- p.81~82, 「혼자가 좋다」 중에서

우리는 친구를 통해 다른 삶을 살아본다. 한 번뿐인 삶인지라 내가 택한, 또는 내게 주어진 삶에 열중하느라 살아보지 못한 다른 삶을 내 친구가 나를 대신해 살아간다. 그것이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그 삶은 어쩌면 내가 약간의 지분을 가진 또 다른 나의 삶인지도 모른다.
--- p.88~89, 「한여름 밤의 꿈」 중에서

우리 엄마의 명언대로 “마음은 나이 먹는 법이 없다”는데 나이 먹지 않은 내 마음을 들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 구질구질하고 자라지 못한 마음, 서글프지만 아직은 빛나는 나의 마음을 들어줄 이는 나뿐이다. 그래서 산책길에서는 내 소리만 들어야 한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인터넷도 켜지 말고, 회사 이메일도 체크하지 않고, 사회적인 ‘나’라는 존재의 어떤 오지랖이 개입하기 전에, 물 한 잔을 마시고,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신 뒤 가장 자연스러운 나라는 인간으로 산책길에 나서야 한다.
최대한 문명의 방해를 받지 않는 것. 이것이 가상의 순례길을 걷는 당연한 약속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나의 소리를 들어주는 것. 이것이 산책길의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물론 간간히 음악을 들어주는 것은 좋다.
--- p.134, 「불쌍한 라떼들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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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글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봄이기도 하겠거니와 ‘The Show Must Go On’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남았다. 머릿속도 몸도 무겁기만 했던 겨울을 이제는 날려보낼 때가 되었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삶 속에 다시 뛰어들어야겠다. 나처럼 무기력해진 사람이 각오 없이도 슬쩍 넘겨볼 수 있는, 페이지 페이지마다 꽃향기가 느껴지는 예쁜 책이다.
-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오원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상상하며 800km를 걸었다. 매일 반복되면서 산책은 단순히 걷는 일에서 일상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 된다. 이 시간은 걸으면서 생각을 긷는 시간이다. 생각을 길으면서 깊어지는 시간이다. 무엇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나의 소리를 들어주는”, 스스로에게 다가가는 시간이다. 혼자를 긍정하는 시간이다. 사계절의 산책이 다 다르듯, 조금씩 나아지고 싶은 이에게 매일의 산책은 새롭기만 하다. 나아지고자 하는 바람은 나아가는 발걸음으로 수놓아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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