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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384g | 130*205*20mm
ISBN13 9791160262261
ISBN10 1160262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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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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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덟 살 때였지. 너는 책가방을 싸고, 나는 그사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어. 주방으로 들어오는 발소리에 돌아보니까 그 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네가 물었지. “아빠, 아버지가 뭐야?”
나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물었어. “달걀 먹을래?” 네가 기다리는 그 간단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몰라서. 그 해답은 너에게 보내는 나의 미소 속에, 나의 눈빛 속에,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속에 있었는데.
--- p.9

토마가 창문 손잡이를 잡을 때였다. 그런 상태로 발코니에 몸을 숙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피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라는 걸 대번에 알았기 때문이다.
--- p.21

“이 방에 가만히 있어요. 그리고 내가 욕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돌아오면 사라져 있는 걸로 해요. 오케이?”
“이런 고집불통이 있나! 나를 다시 보는 게 기쁘지 않니?”
토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힘겹게 일어나서 말한 대로 서재를 나와 문을 살짝 닫았다. 그리고 세수로 얼굴을 식힌 후 거실 소파에 누웠다.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아 눈을 감고 있다 잠들었다.
--- p.27

토마와 라흐마니노프는 이제 일체가 되어 있었다. 마치 옆에 앉은 작곡가의 유령이 피아니스트의 손에 사뿐히 손가락을 얹고 연주하는 것처럼…… 마치…….
토마는 흘깃 객석을 쳐다보다 첫 번째 열에 앉은 아버지를 발견했다. 유령 아버지가 한 젊은 여자의 무릎 위에 떠 있는데 여자는 그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 p.35

“영원한 결합이란 말을 네가 마침 해줘서 하는 말인데…… 그 개념은 아직 모호하지만…… 우리가 영원성을 공유하려면 우리의 재가 합쳐져야 해.”
“뭐라고요?”
“우리의 재, 즉 유골이 섞여야 한다고. 네가 할 일은 내 유골함의 재를 그녀의 유골함에 붓고 잘 흔들어서 섞어주는 거야. 그런 다음 우리의 유골을 뿌려주면 우리는 자유로워지면 서 영원히 합쳐지는 거지.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대우주의 질서와 법칙을 설계한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 p.74

“너의 문제를 발견했어. 아들아, 너는 별로 웃지를 않아.”
“아빠가 무슨 말을 할지 벌써 알겠어요. ‘한 번 사는 인생이야.’”
“아니, 그것도 엄청난 사기야. 진실은 죽는 건 딱 한 번이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거야. 그러니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 마.”
“모레에 내가 해야 할 연기 연습 하는 거니까 불평은 하지 마요.” 토마는 아빠의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대답했다.
--- p.125

“미안해하지 마세요.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내 앞에서 슬픔을 쏟아내지 않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었어요. 나는 어머니를 잃었는데 친구분들은 본인의 슬픔만 얘기하거든요.”
“그 마음 알아요.” 토마는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버지의 비서가 몇 시간 동안 내 어깨에 기대 하염없이 울어서 위로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 가봐야겠어요. 나도 당신을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얼굴이 낯익은 것 같아요.” 그녀가 악수하면서 덧붙였다.
토마는 인사를 하고 나가다 돌아서서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내일은 걱정하지 마요. 당일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니까요. 오히려 그다음이 문제죠. 더 이상 전화벨이 울리지 않고, 빈자리를 실감할 때.”
“위안이 되네요, 고마워요.”
--- p.146

“슬퍼하지 마, 아들아. 함께 노력했잖아. 이 여행은 우리에게 주어진 덤의 시간이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지. 나 때문에 불행해하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아. 나는 멋진 인생을 보냈고, 네 인생은 훨씬 근사할 거야. 너를 기다리는 모든 걸 생각해. 너의 연주회, 사랑, 아름다운 아침, 살아 있는 기쁨, 네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살아볼 만한 멋진 인생이잖아. 네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아? 내 운명에 대해 탄식하는 것으로 이 귀한 시간을 단 한순간도 날려버리면 안 돼. 내 선택이었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나는 열심히 일했어. 그리고 너를 키웠고, 너를 사랑했고, 네가 성장하는 걸, 어엿한 남자가 되는 걸 봤어. 이렇게 멋진 남자가 된 너를! 그러니까 내 말을 믿으렴. 나는 미련 없이 다시 떠나는 거야.”
--- pp.249~250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곧 연주회를 앞두고 있는 파리의 피아니스트 토마는 아버지의 사망 5주기를 맞아 어머니의 집에 방문한다. 고독하고 시니컬한 성격이지만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는 토마. 연주회 리허설을 마친 후 기진맥진한 상태로 앉아 있는데, 아버지의 서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절초풍하는 토마 앞에 나타난 아버지 레몽의 유령은 태연히 아들 토마에게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왔다고 얘기한다. 바로 첫눈에 반해 평생 사랑했던 카미유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서 토마는 유령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고, 결국 이 유령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한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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