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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 양장,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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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486g | 135*195*22mm
ISBN13 9791170400417
ISBN10 11704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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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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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지금 나에게 그 삼십 초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그런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면, 그래 민아야,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때의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 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너는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내 키만큼 천장에 다다를 만큼 널 높이 치켜올리고 졸음이 온 너의 눈, 상기된 너의 뺨 위에 굿나잇 키스를 하는 거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 p.23

아버지들은 딸을 구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딸이 아버지를 구하는 일이 더 많다.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것처럼 말이다. 얼마나 많은 딸이 인당수에 빠져 목숨을 잃어야 눈먼 아버지들이 눈을 뜨게 될까. 그걸 알면 아버지들은 절대로 전쟁 같은 것, 남의 생명을 빼앗는 폭력 같은 것, 숲을 사막으로 만들며 환경을 파괴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p.51

그런데 너를 낳고 아버지가 된 순간 나는 글 쓰는 사람도, 교수도, 언론인도 아닌 한 아버지로 너와 함께 태어난 거야. 그때부터 아버지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 그래, 나는 앞으로 태어날 내 아이들을 추운 겨울날 방 안에서 떨게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단다. 나에게 가족이 없었더라면, 네가 없었더라면 내가 쓴 모든 글은 아마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너로 인하여 나의 꿈은 항상 땅을 향해 있었어. 마치 그 전설의 새처럼 말이다. 눈은 땅을 보고, 꽁지는 하늘을 향해서 날아다닌다는 메롭스란 새, 하늘을 보며 나는 게 아니라 항상 땅을 보면서 거꾸로 비상하는 그 이상한 새처럼 말이야. 젊은 시절 그토록 경멸했던 ‘속물’을 자처하며 땅만 보고 달리는 소시민, 그게 너희들에게 주는 내 사랑, 온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p.90

너를 가슴에 안고 내려다본 바다, 우리의 바다. 하얀 백사장과 초록빛으로 출렁이는 바다는 내가 여드름이 잔뜩 난 얼굴로 처음 보았던 그 바다보다 더 큰 파도 소리를 내며 출렁거렸지. 왜인지 아니? 널 가슴에 품고 동시에 바다를 품고 파도를 보았기 때문이야. 너의 작은 심장이 뛰는 그 생명의 소리가 파도의 진동으로 울리면서 바다 전체로 퍼져갔던 거야.
그게 바로 생명이라는 거야. 끝이 없는 것, 작은 파도와 큰 파도, 그리고 바람까지도 쉬지 않고 출렁거리는 것. 그 바람을 따라 모세혈관같이 가늘고 섬세한 네 머리카락 한 오라기가 내 볼을 스쳐 갔어. 네 작은 손은 놀라움이 커질수록 내 손을 꼭 붙들었지. 마치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 처음 보는 바다의 경이로움에 조금은 겁을 먹었는지 넌 좀처럼 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어.
--- p.96

그래,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뛰쳐나온 그 여학생의 이야기를 해보자. 몇 년 동안 혼자 살던 그 아이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의절한 아버지에게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냈어.
“아빠 사랑해.”
그랬더니 몇 초도 안 돼서 바로 답장이 온 거야.
“나둥.”
서로 헤어지고 뿌리치고 원망하던 아버지가 딸의 관계 곁에는 그렇게 항상 사랑이 있었던 거야. 미워하고 불신하는 그런 관계 속에서도 사랑은 지속되지.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딸의 메시지가 오자마자 몇 초 만에 “나둥”이라는 답장을 보낼 수 있었던 거란다. 서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 p.221

나는 이제 너의 죽음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아. 그만큼 죽음이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야. 추상명사가 아니라 물건 이름처럼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던지면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같은 아주 구상적인 명사로 죽음은 그렇게 내 앞으로 온 거야.
우선 나 자신부터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어. 내가 나를 스스로 속이는 것에 대한 동정과 위로, 그리고 나의 그 거짓말을 덮어주고 사랑하는 관대함을 배웠지. 나는 나를 미워한 적이 참 많아.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 똑같은 방법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길에서 만난다면 보기 좋게 뺨을 후려칠 것이라고 언젠가 앙케이트에서 답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의 약점까지도 사랑하게 되었어. 딱해서 그런 거지. 불완전하고 깨지기 쉬운 인간, 그 생명에 대해서 우려와 동정과 끌어안는 사랑의 방법을 조금 터득한 까닭이야.
--- p.254

나는 단지 정서진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건 바로 정동진에 뜨는 아침 해의 노을인 거야. 너는 정동진에 있고 나는 정서진에 있는 그 차이밖에는 없어. 같은 노을이다. 나는 너를 위해서 울거나 또 너는 나를 위해 가슴 아파할 이유가 없다.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어. 나는 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의 노을을 아침의 노을로 바꾸어버리는 재생과 부활의 힘을 믿는 것이라고. 남들이 다 놀리더라도, 나는 그 힘이 네가 말하는 믿음의 힘이고 희망이고 빛이라고 생각해.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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