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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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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1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44g | 135*200*20mm
ISBN13 9791164454594
ISBN10 1164454595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개인의 자유는 인간다운 삶, 행복한 삶을 위한 기본적 전제 조건,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거론되는 인문 고전인 『자유론』은 질적 공리주의를 주창한 19세기 정치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대표작으로 그는 『논리학 체계』를 제외하면 자기 저작 중 『자유론』의 생명력이 가장 항구적일 것이라고 믿었다. 『자유론』은 19세기 근대 유럽 시민을 대상으로 쓰였지만, 밀의 혜안대로 마치 우리를 위해 쓰인 듯 시공을 초월해 21세기 대한민국에 적용해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유는 두 사람만 있어도 거론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두 사람 이상만 모여도 사회가 형성되고 각자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다 보면 결국 상대의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둘 다 자유를 최대한 누리기 위한 실천적 담론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자유는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쟁해온 주제다.

밀은 『자유론』에서 ‘시민으로서 개인이 보장받아야 할 자유’와 그 자유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정당하게 제한할 수 있는 한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데 집중한다. 밀의 대원칙은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적 원칙에는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는 동시에, 국가나 사회가 법의 물리적 처벌 또는 여론의 도덕적 비난을 빌려 그 자유를 강제할 수 있는 경우를 엄격하게 제한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자유론》을 읽기 전에

제 1 장 ─ 들어가는 말
제 2 장 ─ 사상과 토론의 자유
제 3 장 ─ 행복의 요소로서 꼭 필요한 개성에 관한 고찰
제 4 장 ─ 사회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
제 5 장 ─ 적용

《자유론》에 대하여 _ 윌리엄 레너드 코트니의 《자유론》 해설
존 스튜어트 밀 연보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밀이 진단하기에 여전히 개인의 자유는 완전하게 보장받지 못했다. 왕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의 폭정에서는 벗어난 듯 보이나, 시민은 국가와 사회라는 또 다른 형태의 통제 속에서 주류 다수의 관습에 순응하도록 압박받고 있었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토대이자 인간다운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 ‘개별성’까지 빼앗는 것으로, 《자유론》에서 별개의 장(章)으로 따로 구별하여 중요하게 다룬다.
개인의 개별성은 “진보하는 존재로서 인간이 추구하는 항구적 이익”으로서의 질적 공리주의 효용(utility), 즉 사회적 공공선에도 기여한다. 개인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토론하고 단결할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가 반드시 붙게 되는 이유다. 타인의 자유에 간섭하여 그의 개별성을 해치는 자유는 인정받지 못한다. 밀은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을 강력하게 옹호하지만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잊지 않았다.
---pp.12,13

밀은 가장 높은 지위부터 가장 낮은 지위까지 모든 사람이 적대적인 시선과 위협적인 검열 속에 살아가는 사회라고 당대를 진단했다.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의 성격과 기질에 맞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타고난 고유의 자질을 어떻게 발휘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내 위치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나와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경제적 수준으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은 주로 무엇을 하는지, 아니면 나보다 높은 위치에서 더 높은 경제적 수준으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즐겨 하는지 궁금해할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진정한 자유가 부재하고 개별성이 사라지며 다양성은 발붙일 곳을 잃게 된다.
밀의 걱정과 고민은 우리 시대에도 생생하게 적용된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해왔는가? 전자인가, 후자인가? 《자유론》에 담긴 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크나큰 울림이 있다.
---pp.19,20

개인이든 집단이든 타인의 자유로운 행위에 정당하게 개입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자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명사회 구성원의 의지에 반하는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정당성을 획득하는 경우도 타인에 대한 위해를 막고자 하는 경우뿐이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당사자인 타인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명목일지라도 그것이 타인에게 개입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개입하는 것이 그를 더 행복하게 만들므로 그에게도 더 낫다고,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비추어 그렇게 개입하는 것이 더 현명할뿐더러 심지어 옳다고 그의 의사에 반하여 어떤 행동을 강제할 정당한 권한은 없는 것이다. 그에게 항의하거나, 합당한 이유를 들어 논증하거나, 설득하거나, 간청할 사유는 충분히 되지만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강제하거나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가 타인에게 틀림없이 해를 끼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그의 행동을 막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p.38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할까?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강제로 제한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존 스튜어트 밀이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개인의 자유는 그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밀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이라고 전제한다. 즉 타인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일 없이 본인에게만 관계되는 일일 경우에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당연히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이때 타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간접적이 아닌 직접적 영향이 그 기준이어야 하되,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이어도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강제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그의 행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 그의 행동이 당장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리라는, 혹은 그 자신에게도 해가 되리라는 근거가 분명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과 그 자신의 보호를 위해 개인의 자유에 대해 국가와 사회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해지는 지점이다.
밀은 개인이 누려야 할 자유의 기본 영역으로 세 가지를 든다. 먼저 종교든 도덕이든 과학이든 모든 주제에 대해 개인은 내면적으로 양심의 자유·생각과 감정의 자유·의견과 주장과 토론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개성과 취향대로 자기 삶을 설계하고 꾸려갈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아야 하며,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즉 타인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누리려는 그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어떤 목적이든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결사의 자유도 보장받아야 한다. 밀은 이 같은 자유를 완전하게 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자유로운 사회라고 말한다.

하버드대·옥스퍼드대·서울대·연세대·고려대 선정 필독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가?

이렇게까지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유는 ‘개별성’을 평준화하려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밀은 인간은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기 내면의 힘에 따라 스스로 자라고 발전하려는 나무와 같으므로 개별성은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토대이자 인간다운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대중의 등장과 여론의 지배는 국가의 물리적 권력보다 더 적대적인 시선으로 개개인을 검열하여 다수의 관습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개별성을 억누르고 사회성으로 획일화한다. 이 관습의 전제專制, 즉 ‘다수의 횡포’는 밀이 가장 우려하던 것이었다.
밀 당대의 사회상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인터넷과 SNS의 발전으로 우리는 누구나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며 마음껏 주장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소수의 목소리는 다수의 목소리에 묻히거나 다수가 일방적으로 조성해가는 분위기에서 비난당하고 혐오 대상이 되기 일쑤다. 소수의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다수의 자기 확신은 ‘자신만 옳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밀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의견은 진리의 일부분만을 담고 있을 뿐이라고, 다양한 의견에 토대할수록 진리의 더 많은 부분이 드러나는 법이라고, 어떤 문제에 대해 가장 정확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소수의 의견인 데다가 설령 그 의견이 틀릴지라도 일단 들어봐야 한다고, 무엇보다 모든 인간 중에서 딱 한 명이 달리 생각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가 같은 이유로 나머지 전부에게 침묵하라고 요구하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밀의 시대에서 그다지 멀리 나아가지 못한 듯하다. 《자유론》은 그런 우리에게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사회성과 개별성,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통제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현명하게 모색하도록 도와준다.

회원리뷰 (5건) 리뷰 총점9.2

혜택 및 유의사항?
자유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a*****7 | 2021.05.03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자유'라는 말이 요즘처럼 많이 언급된 적도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이후로 국가의 통제 범위가 넓고 깊어지면서 부터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흘이 멀다하고 자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설 기사들이 많이 보인다. 자유 민주주의가 먼저 싹튼 곳이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의 보건 정책을 사생활 간섭으로 여기는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밀이 지금 이 코로나 시;
리뷰제목

 '자유'라는 말이 요즘처럼 많이 언급된 적도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이후로 국가의 통제 범위가 넓고 깊어지면서 부터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흘이 멀다하고 자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설 기사들이 많이 보인다. 자유 민주주의가 먼저 싹튼 곳이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의 보건 정책을 사생활 간섭으로 여기는 집회가 끊이지 않는다. 밀이 지금 이 코로나 시국을 보면 뭐라고 논평을 냈을지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도 작년에 집회 관련하여 몇몇 논객이 밀의 <자유론>을 언급하면서 새삼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번 읽어봐야 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한동안 잊고 있던 명저를, 며칠 전 예스24 리뷰어클럽이 제공하는 서평 이벤트에 응모하여 당첨자가 되어 이제야 읽게 되었다. 

 자유론의 핵심은 '개인은 자기 행동이 자신을 제외한 타인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에는 사회에 대해 책임지지 않지만, 타인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가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 존재하는게 원칙이지만 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에 저해되는 자유는 용인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저히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 대해서만 자유는 적용된다. 또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고 하여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권한도 없다'고 못박는다. 왜냐면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며 저마다 개별성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론, 관습, 통념이라는 잣대로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내 생각이 절대 옳다는 무오류의 자만에 빠지는 순간 권력자라는 이유로 또 부모라는 이유로 우리는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성향이 있다.

 그럼 불완전한 인간이 개인의 자유를 지키면서 동시에 공동체 이익을 위해 가장 중시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밀은 '자유로운 토론'이라고 설파한다. 토론에서 오가는 반대 의견들이 서로 수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서로 동화하는 오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밀은 이 주장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토크빌의 사상을 차용한다. 왕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의 폭정에서 벗어난 듯 보이나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시민은 국가와 사회라는 또 다른 통제 속에서 주류 다수의 관습에 순응하며 서로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 다양성은 사라지며 욕망 결핍과 내적 검열이란 보이지 않는 기준으로 인해 개인의 기호, 성향, 개성이 죽어가는 대중이 지배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따라서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사회에서 개인이 해야 할 책무는 자신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자기 수정 능력을 토론이라는 공론화된 장소에서 함양하는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사유하는 내적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다수의 의견이니 암묵적으로 추종하는 '만족한 돼지'보다는 타인이 듣기 싫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기를 촉구한다. 

 여론, 관습,통념이 지배한 사회는 나다운 삶이 파괴된다. 위협적인 검열이 여전히 존재하는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은 내 위치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이며 비슷한 경제 수준으로 살아가는 타인이 무엇을 하는지 나보다 높은 위치에서 더 높은 경제적 수준으로 살아가는 타인이 즐겨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성격과 기질에 맞는 것을 고민하고 타고난 자질을 어떻게 발휘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책 맨 마지막에 소개된 밀의 명언을 음미해보자. "인간은 그 본성상 어떤 모델을 따라 만들어져 미리 정해진 일을 하도록 설계된 기계가 아니다. 일종의 나무와 같아서 내면의 힘이 지닌 성향에 따라 온 사방으로 자라나면서 발전할 필요가 있다." 타인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길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을 찾아가고 있는지 밀은 묻고있다. 자신이 주권자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가? 

 코로나로 신음하는 세계를 보며 밀은 어떤 조언을 할까? '논쟁이 되는 주제에 대해 시민이 결론을 찾을 때 편견을 주입하려는 국가의 모든 시도는 해악'이라고 본 자유론의 저자는 아마도 이럴 때 일수록 거짓이냐 진실이냐를 놓고 다수가 다투기보다는 한 명의 바이러스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에 따르며 합당한 의견과 근거를 가진 자유로운 토론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할 지 모르겠다. 전대미문의 사태에서 큰 국가가 등장한 것은 시민의 일시적인 양보일 뿐 사태가 안정되면 작은 국가로 돌아가고, 개인은 인격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더 힘써야 한다. 개인이 자신에게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향후 자유가 침해받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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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어떻게 누릴 수 있는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異**********나 | 2021.05.02 | 추천5 | 댓글1 리뷰제목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 자유로운가? 이런 식상한 질문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물론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한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리뷰제목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 자유로운가? 이런 식상한 질문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물론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한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공리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구호가 쉽게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다수의 의견이 '절대적인 진리'일까? 다수의 주장에 따르는 것이 '최선'일까? 우리는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진리에 더 가까우며 모두의 행복을 위한 최선이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주장'일지라도 따르지 않아야 할 때가 있고, '소수의 의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상식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한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의 핵심이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어야 하지만 사회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제한을 둘 수도 있으며, 국가를 위한다는 이유로, 또는 그 어떤 이유로도 개인의 자유를 함부로 희생하라고 강요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거기다 밀은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를 '적대적인 시선과 위협적인 검열이 가득한 사회'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자유론>은 이런 곱지 않은 시선과 검열로 자유를 해치는 것이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 내용이 담겼다. <자유론>이 쓰여진 지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어떤가? 우리는 과연 진정 자유로운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대한민국은 사상과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다. '국론통일'이란 허울 좋은 명분으로 허구헌날 다른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려 들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온 나라 사람들이 '한 가지' 사상을 가져야만 한단 말인가. 달리 말해서, 어떤 사상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강성한 우익집단은 '자유대한민국'이란 말에 목숨이라도 걸 자세인데, 그들이 말하는 '자유'에는 결코 자유가 없다. 그 대척점에 선 부류들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반공이니, 애국이니, 떠드는 반대쪽에선 친일이니, 적폐니, 하면서 '대결적인 자세'만 취할 뿐, 진정한 대화와 화합을 모색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타협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찌 자유를 논할 수 있느냔 말이다.

 

  또한, 대한민국은 신분과 계급의 차별을 허용하지 않는 모두가 평등한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 비록 양반과 상놈의 구별은 없어지고, 남녀간의 심한 차별도 심하지 않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경제적인 부의 차이'가 새롭게 신분을 만들고 계급을 창출하고 말았다.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를 이르는 말이다. 이런 부의 불평등이 과거의 계급적 갈등을 재창출하는 사회현상이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만큼 빠르게 갈등의 골이 깊어진 나라도 드물지 않다는데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려는 의지가 매우 미약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자유'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결코 '국론통일'이나 '부의 평등'을 위한 좁은 의미의 자유가 아님도 함께 깨달아야 한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생각해야 할 때란 말이다.

 

  먼저, 남의 생각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자세는 곤란하다. 특히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는 핑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다른 이의 생각은 겸허한 자세로 '경청'하면 된다. 그리고 존중해야 한다. 아무리 얼토당토 않은 생각일지라도 끝까지 들어줄 교양을 쌓아야 할 것이다. 끝까지 들어준 뒤에 조목조목 '그와 다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 된다. 내가 남을 존중할 때 남도 나를 존중받는다는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가 진정 자유로운 사회일 것이다.

 

  또한, 경제적인 부를 쌓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거나 유명 인사라는 등의 이유로 '자신들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특히, '대의정치'를 빌미로 지역주민들의 대표 행세를 하며 자기만의 고집스런 생각을 바탕으로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들의 꼴값은 정말 눈 뜨고 못 봐주겠다. 고작 '시의원'이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주민들, 나아가 국민들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고서 특정 정당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꼬락서니는 더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몇몇 대기업 회장들의 모임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시절도 더는 아니라는 말이다. 인기에 부합해서 '자신의 생각'이랍시고 숟가락만 얹으려 하거나, 유명인사의 목소리라면서 부적절한 여론을 형성하려는 '기레기들의 집합소(언론기관)'도 꼴사납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무엇에라도 자유로워야 한다. '나의 생각'으로 인해 위협받거나 억압받아서도 안 된다. 진정한 자유는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보장받을 수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자유'라면 나와 생각이 '같거나 다르거나' 아무런 편견없이 수용하고 날카로운 비판도 아끼지 않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왜냐면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할 수 없듯이 모든 생각에는 '일부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조그마한 일부의 진리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다. 그러기 위해선 '거짓'을 가려내는 혜안도 필요한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자유론>과 같은 인문철학을 교양으로 삼아 읽어야 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댓글 1 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5
포토리뷰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h*******0 | 2021.04.2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제목: 북리뷰-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1. 자유론 주변만 두리번거리다. 고전읽기의 중요성과 가치를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위대한 분들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굳이 내가 더 보탤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다만 내 스스로 고전읽기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지식과 경험이 쌓였고 예전보다는 덜 흔들리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다른 말;
리뷰제목

제목: 북리뷰-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1. 자유론 주변만 두리번거리다.

고전읽기의 중요성과 가치를 너무도 많은 사람들과 위대한 분들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굳이 내가 더 보탤 필요는 없을 거 같다. 다만 내 스스로 고전읽기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지식과 경험이 쌓였고 예전보다는 덜 흔들리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고정되고 화석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나의 지식은 가족과 주변 지인들보다 아주 조금 더 많이 알고 용어만 들어봤음을 의미할 뿐이지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만한 처지가 못 된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대학원 수업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사상과 인물에 대해 듣게 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다. 나의 경험도 어떠한 일의 한 방향만을 의미하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방향에 대해선 무지하고 편견에 가득할 때가 더 많다. 나의 경험이 전부이고 옳다는 생각으로, 다른 경험과 의견에 대해서 닫혀 있을 때가 내 젊은 시절보다 더 많다. 반성적으로 나를 평가하자면 우아한 꼰대로 향하여 가는 흐르지 않는 고인 물이 될 거 같다.

요즘 공부하는 게 힘들지만 재미있다. 그리고 지금 공부할 수 있는 내 삶에 감사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머물면 안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요즘 한다. 대학원 공부는 학부의 공부와는 조금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분야로 세분화되어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공부라는 차원에서 학문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하고, 나 자신의 지적 만족에서 현시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문제 제기와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학이 문학이라는 그릇에서만 머물고 흘러넘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생각했다. 나 자신의 개똥철학에서 머물지 않고 아직도 여전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나름의 해답이 없다는 결론에서 고전읽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 처음 시작인데 이유가 너무 거창해서 스스로에게 웃음이 나왔다.

 

처음 고전읽기의 책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선택한 것은 그냥 북 리뷰를 써야할 일이 생겨서 읽기 시작했고 이것저것 업무와 과제로 밀리다보니 이글을 쓰고 있는 현재 40페이지정도 읽은 상태이다. 나는 책 내용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책표지, 저자의 생애, 직업, 가족 등 그 주변에 더 관심을 빼앗길 때가 더 많은 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주창한 19세기 영국 사상가이다. 벤담과 함께 양적 공리주의자인 아버지 제임스 밀에게서 엄격한 영재교육을 받았고 후에 밀은 쾌락 자체의 질에 따라 저급한 쾌락(만족content)과 고급한 쾌락(행복happiness)으로 나누어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라고 표현했다.

밀의 질적 공리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타고난 사회적 감정으로 행위 당사자의 행복뿐만 아니라 모든 관련 당사자의 행복까지 고려하는 존재로 인류 전제의 행복을 자기 행복을 동일시할 수 있다.(p14)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론에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개념과 사회가 그 개인의 자유를 어느 선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한없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자유론의 책표지는 점묘법의 화가로 유명한 조르주 쉬라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그림으로 되어 있다. 이 그림을 책표지를 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존 스튜어트 밀은 영국 사람이고 쉬라는 프랑스 사람이고 그림도 밀의 사망이후의 작품이다. 굳이 연결점을 찾자면 측면이나 정면을 보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계급, 성별, 나이를 떠나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조화롭게 실현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랑 어울려서 선정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철학적 지식이나 사상이 부재한 상태에서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일차 목표이고 거기에 아주 작은 무언가를 건져낼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할 일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다.

아무튼 끝까지 가봐야 많이 쌓여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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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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