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비스마르크가 사절단을 위해 베푼 연회에서- “이제 이 험난한 국제 무대에 데뷔하는 일본 친구분들을 위해 작은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약육강식의 사바나입니다!!! 만국공법이라는것은 그저 그럴듯한 명분과 겉치레일 뿐. 그 조목이 자신에게 유리하면 이용할 뿐이고, 만국공법의 조목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아무 거리낌 없이 씹고 대포 찜질로 일을 해결코자 하는 것이 열강의 본성입니다. …… 그러니 일본 여러분도 진정 국제사회에서 대등한 존중을 얻고 싶으시다면 일단 힘을 키우십시오. 그리 힘을 갖춘다면 당연히 조약도 개정되고, 진정 열강과 어깨를 겨루며 천하를 논할 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아름답고 잔혹한 세계에서 통하는 언어는 오로지 피와 강철뿐! 헤모글로빈을 위해 항상 철분 섭취에 신경 쓰십시오!!”
--- p.44~46, 「제2장 유럽에서 배우다」 중에서
대원군 축출 후, 고종은 서계 문제에서 열린 자세로 교섭을 진행토록 명한다. …… “싫어도 만나줘라. 국서 접수는 좀 곤란해도, 유화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해. 연회를 열고 초대해서 일본인들을 잘 달래보도록.” 1875년 4월, 동래부사가 연회에 모리야마를 초대. “조촐하게 막걸리 파티라도 열어볼 테니, 그때 보도록 합시다." “올ㅋ 감사합니다~" “아, 근데 드레스 코드가 있거든요? 그 흉물스러운 양복은 ㄴㄴ~ 깔끔한 전통 복장만 입장 가능!" "으읭?! 아니, 이제 우리 공식 정장은 양복입니다!! 그걸 무시하면 안 되죠!" 드레스 코드 문제로 외교 연회 파투. 뺀찌 먹은 모리야마는 빡쳐서 본국으로 귀환하며 연성 교섭 중지와 강경책을 주문하는 보고서를 제출. "약간의 완력을 동원해 조속히 조선을 굴복시키고 깎인 체면을 복구하도록 한다!"
--- p.222~227, 「제12장 Suit It Up」 중에서
운요호 사건을 보고받은 조정은 발칵 뒤집히고. …… “크읔;; 아무리 서구화된 군대라고 해도, 작은 배 1척과 병력 20명에 이리 심하게 털린단 말인가;;" 귀국한 이노우에 함장은 열심히 이빨을 털었고. “아 글쎄, 우리가 국기 걸고 평화롭게 물 좀 떠 갈라는데 조선 미개인들이 다짜고자 포격을 갈기지 뭐요!" …… “아이고~ 서양 형님들!! 저 미개한 조선 놈들이 늘상 문명사회 선박의 항해를 방해하고 위급 구난을 거부하며 원시적인 대포 쏴대는 꼴을 어찌 계속 보겠습니까!" …… 이어서 1875년 10월에는 부산 쪽에서 도발을 이어간다. 10월 12일, 왜관에서 일본인 수십 명 무단 난출. 10월 26일에는 일본군 수십 명이 부산 좌일리 포구에 상륙했다가 돌아간다.
--- p.245~248, 「제13장 운요호 사건」 중에서
1월 29~30일, 오경석 일행은 화성 남양 앞바다의 일본 함선과 접촉, 문정을 위해 승선한다. 공식적으로는 문정관으로서 모리야마 시게루를 만나 일본인들의 목적을 묻고 조정의 입장을 전달. “강화도 진입은 불허한다는 것이 우리 조정의 입장입니다." 비공식적으로는 오프 더 레코드 사담이 이어진다. …… “그리 알을 깨고 나오는 데 내부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외부에서 포탄을 좀 갈겨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보오. …그러니 강화도 가면 막 포도 쏴대고 해서- 조정 꼰대들 정신 차리게- 으어; 조선을 살…"
--- p.276~279, 「제15장 강화도 회담」 중에서
서계 문제와 운요호 사건을 가지고 조선을 압박하던 구로다는- “서계 문제 사과 & 운요호 사건 사과와 책임자 처벌!!" “친교를 회복하자는 회담에서 그런 시빗거리가 무슨 소용이오이까?!" 거기서 조약 문제로 태세 전환. “ㅇㅇ, 역시 친교를 회복해야죠~ 친교 회복만 된다면야 서계니, 운요호니, 다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죠~" “어… 그쵸…." “이를 위해 저희 측에서 근대식 수호조규 모델을 준비해왔답니다~" …… “아니; 지난 250년 전통의 친교를 그대로 회복하면 될 일인데, 어찌 조약 어쩌고 하는 낯선 이야기를;;" “이 외에 다른 친교의 방법은 없습니다. 이거 안 받으면 우리 군을 받아야 함." “으어;"
--- p.290~291, 「제16장 조일수호조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