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바로 말더듬증 때문이었다. 워낙 증세가 심했다. 무조건 무슨 말이든 그 첫음절은 서너 번 반복하고 나서야 나오기 시작했고 또 중간에 서너 번 더듬거렸다. 심할 경우에는 ‘따따따따’ 따발총 소리와 유사했다.
가령, “형씨, 담배 한대 빌릴 수 있습니까?”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혀혀혀형씨, 다다다담배 한대 비비비빌릴수 있습니까?”
또한, “아가씨, 차 한잔 하시겠습니까?”의 경우에는 이런 식이다.
“아아아아가씨, 차차차차한잔 하시겠습니까?”(이때, 상대 여성은 차 한잔을 차차차 댄스로 착각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심각한 증상을 보일 때가 있다. “너 죽을래!”라는 말을 할라치면 이런 식이 되곤 했다. 두 가지 유형이다.
첫 번째 유형은 “...”(턱에 심한 진동이 생겨서 한마디도 못함)
두 번째 유형은 “너너너너너너...”(첫음절만 죽어라 내뱉음)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인관계 &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다. 따라서 그는 취업 면접을 보는 족족 탈락의 고배를 삼켜야했다. 하지만 장은 자신이 취업을 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을 현사회의 구조적인 면에서 찾는 고집을 부렸다. 자신과 같은 혈기 왕성한 청춘들이 대다수 취업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아, 어쩌다 우리의 장은 몹쓸 말더듬증에 걸렸을까?
--- 「1. 한강변 살인」 중에서
육년 전부터 장은 청부살인을 해오고 있었다. 그즈음 번역 수입이 워낙 적은데다가 말더듬증으로 인해 속앓이를 하던 그에게 사회 지도층과 사회 구조에 대한 터질 듯한 분노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왜, 저따위 인간이 금배지 차고 다니며 행세 하냐고!’
‘저런 쳐 죽일 회장이 있나. 직원을 개돼지 다루듯 하면 되냐구.’
‘대학 나와도 취직 안 되면 이건 나라 책임이 아닌가?’
‘말더듬는 사람에게도 먹고 살아갈 일자리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이렇게 속에서 연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시만 해도 소주병, 맥주병을 벽에 던지는 것으로 화를 삭였다. 그랬던 그에게 깨달음이 생겨났다. 어느 가을의 새벽, 원룸에서 혼자 소주 다섯 병을 안주 없이 다 마셨을 때다. 밖에서 청소차가 세워지는 소리가 들렸고, 쓰레기 더미가 그 안으로 처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른 새벽에 아무도 몰래 쓰레기가 처리되고 있었다!
그건 참으로 후련하고도 통쾌한 일로 느껴졌다. 더럽고 냄새나고 추악한 것을 착착 체계적인 방식으로 수거되고 있었다. 그 쓰레기들은 일부 재활용되는 것을 제외하고 는 소각장에서 태워질 터였다. 그러고 나면 이 동네는 쓰레기 한톨 없이 깨끗 발랄한 환경이 되는 것이다.
장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조금 비틀거리면서. 그러곤 생각했다.
‘그래, 쓰레기 같은 놈들을 환경미화원처럼 처리하는 일을 해볼 만하다. 단, 수고비를 받는 조건으로 말이야.’
이런 계기로 인간쓰레기 처리 곧 청부 살인을 시작했다. 육년이 지난 현재, 장은 프로 면모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작업을 했으며, 머리 한 가닥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특히나 그가 작업한 살인 사건은 원인 미상의 사고사 & 자살로 처리되었다. 완벽함의 극치였기에 의뢰인과 중간 소개업자 흥신소 사장의 만족도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 「2. 비밀을 공유한 아여린」 중에서
순식간에 노랑머리는 앞으로 고꾸라졌고, 라이딩자켓은 팔이 꺾인 채로 낑낑거렸다. 장은 인상을 팍 쓰면서 용필이를 노려봤다. 그걸 본 용필이는 움찔하다가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성격 급하시긴... 선수끼리 실력을 체크해본 건데. 제법이네요.”
이로부터 장과 용필이는 진지하게 비즈니스 논의를 이어 갔다. 용필이는 장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위법 행위가 가능하냐? 그리고 위법 행위의 경우 최저 의뢰비가 얼마냐? 라고 물어보았다. 장이 메모지를 꺼내 글을 적어 건넸다.
건당 최소 1억이면 무엇이든 가능. 착수금은 의뢰비 20%
그걸 본 용필이가 의미심장하게, 피를 보면서 최하 25년에서 최고 사형이나 무기징역의 형량이 주어지는 일(살인)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알겠노라했다. 그러면서 경력이 있냐고 묻자, 장은 실패하면 받은 돈의 두 배를 배상한다고 글을 써서 보여줬다. 그 다음 메모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단, 대상은 인간 쓰레기여야함!
예 : 몰염치한 기득권층 인사, 갑질 기업인, 성폭력범, 약자 괴롭히는 자 등
머리 나쁜 용필이는 예시를 통해 인간쓰레기가 뭔지 잘 이해했다. 그는 그렇고말고 “동업자 친구(벌써 친구란다)”라고 하면서, 원래부터 자기는 영등포에서 못돼먹은 인간쓰레기들을 다루는 일을 전문적으로 해왔다고 말했다. 이건 순전히 사실 왜곡이었다. 용필이는 못돼먹은 인간쓰레기로부터 하청 받은 용역을 담당했었다.
--- 「3. 마포흥신소 사장 용필이」 중에서
재빨리 장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서 야구 방망이를 들고 대기하던 다섯 명, 2층에서 도끼와 자전거 체인을 들고 대기하던 세 명, 3층에서 후레쉬를 비추던 도복 입은 격투가 한 명이 차례대로 고이 바닥에 엎어졌다. 장의 간결하고도 악센트 있는 동작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지막 4층이 남았다. 장은 가방에서 삼단봉을 꺼내 폈고, 가방을 계단에 두고 4층으로 올랐다. 그가 4층에 올라서자마자 공기를 가르는 칼날 소리가 들렸다. 장은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피했다. 연속으로 다시 칼날이 들어왔다. 장은 앞으로 떼구르르 굴렀다. 칼잡이와 거리를 확보했다. 테이블 위에 촛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옆에 한 녀석이 포박된 아여린를 지키고 있었다. 쌍칼을 든 상대가 보였다.
그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로 올 줄 알고 대비하고 있었지. 솜씨가 보통이 아....”
말을 끊고 다시 공격해왔다. 이번에는 두 칼을 휘저으면서 달려왔다. 장이 옆에 있는 의자를 그에게 던졌다. 그가 슬쩍 피했다. 이때 장이 그에게 달려들어 삼단봉으로 그의 머리를 힘껏 내려쳤다. 그가 잽싸게 피한 후, 조심스럽게 다가 왔다. 쌍칼이 장의 얼굴을 찌를 듯이 칼을 들이미는 척하다가 이내 장의 다리를 공격했다. 상대의 취약한 하체 찌르기였다. 살짝 바지에 칼끝이 스쳤지만 장은 펄쩍 점프를 한 채로 오른발 킥으로 쌍칼의 목젖을 가격했다. 컥 소리를 내는 것과 함께 쓰러진 쌍칼은 전의를 상실한 듯 소리 없이 자빠졌다.
--- 「6. 신사동 쌍칼 사무실 급습」 중에서
토크쇼가 마무리될 때가 되자, 강력계 출신 여총경님께서 시민 안전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렵다보니 흉악 범죄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특히나 심부름센터, 흥신소에서 돈을 받고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법의 질서를 파괴하는 불법 행위를 대신 해주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현재, 우리 경찰 강력계에서는 대대적으로 단속 강화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이들 심부름센터, 흥신소에 절대 불법적인 일을 의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장의 머리가 깜깜해졌다. 하지만 벌써 수차례 생방송을 진행해 오면서 순발력을 익히고 방송용 강심장을 단련해온 터, 장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러곤 실수를 범하지 않고 토크쇼를 잘 마무리했다. 생방송이 끝나자, 관찰력 깊으신 총경님께서 친히 장에게 다가와 악수를 권했다.
그러면서 예리한 촉으로 장의 식은땀과 떨리는 손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혹시...”
장의 가슴이 벌렁거렸다.
“네에?”
“화장실이 급하셨나보네요. 생방송 진행하다보면 별 일 다 생기겠죠. 저도 잠복근무할 때 볼일 때문에 고충을 많이 겪어봤습니다. 그럼 어서 볼일 보세요. 저는 그럼 이 만. 오늘 현장에 가볼 데가 있습니다.”
장의 목구멍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
그날 역시 생방송 시청률이 높았으며 네티즌의 반응이 뜨거웠다. 역시나 동영상 조회수가 수백만 건에 이르렀으며 수많은 곳으로 퍼 날라졌다. 동영상 하단에는 “게스트를 너무나 편하게 한다”,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간간이 들리는 장 진행자의 바리톤 중저음 목소리가 넘 섹시하다”, “역시, 대화의 신!” 등의 댓글이 무수하게 올라왔다.
--- 「12. 대화의 신」 중에서
순간적으로 진하나의 얼굴 위로 충격을 받은 엄마의 얼굴이 겹쳤다. 장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장은 재빨리 몸을 돌리고 변희태에게 다가갔다. 등 뒤에서 진하나의 음성이 들렸다. 장은 그를 끌어안은 채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허공에 떠있는 찰나의 순간, 우리의 프로페셔널 장은 그녀의 음성을 똑똑하게 기억했다.
“장 엠시님, 제발.”
그 음성은 흡사 엄마의 목소리와 같았다.
“아들, 나쁜 짓하면 못써요.”
몇 초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잠깐 사이에, 장의 눈가에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번역을 위해 자주 보았던 영문판 「노인과 바다」의 한 구절이 희미하게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났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희망이 없다는 건 죄악이야.
죄악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
죄악 말고도 골치 아픈 문제들이 많아.
게다가 나는 죄악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해.
--- 「14. 허공에 떨어진 희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