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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라도 시작하는 게 훨씬 낫지

늦게라도 시작하는 게 훨씬 낫지

: 80이 넘어 내가 깨달은 것들

리뷰 총점9.4 리뷰 22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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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86g | 135*196*15mm
ISBN13 9791191464061
ISBN10 1191464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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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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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자줏빛 코트를 꿈꿔왔다. 사실 내 경험에 따르면 당신이 어떤 용도의 옷을 찾고 있다면 어느 가게에서건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최근에 뮌헨에 있는 손녀를 방문했는데, 어느 가게의 진열대에 걸려 있는 외투에 우연히 눈길이 갔다. 디자인과 색깔, 그 모든 것이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였다. 엄청 추운 날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초봄의 쌀쌀한 날씨에 입기 안성맞춤인 그런 코트였다. 젊었을 때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코트를 집어서 계산대로 가서 달라는 대로 돈을 지불했을 것이다. 꿈의 코트를 발견한 사람이 응당 해야 할 행동 아닌가? 하지만 요즘에 나는 그런 순간에도 망설인다.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 코트를 입을 수 있는 따스한 봄날이 나에게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나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봄날이 얼마나 되는가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때 나에겐 삶이 끝없는 나날의 연속처럼 보였다.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내 앞에 남아 있는 날들은 이제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의 숫자로 줄어들고 있다.
--- p.18-19

나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내 모습이 좋고 이 세상을 활기차게 살아온 내 얼굴의 주름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침에 거울을 보면서 예전보다 머리를 빗는 데 시간을 더 많이 보낸다는 점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칼이 더 이상 예전처럼 가지런하게 매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나는 단골 헤어디자이너에게 간다. 내가 30년 동안 다른 사람에게 나의 머리를 맡기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다. 그는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준다. 내 머리에 처음으로 흰머리가 생겼을 때도 그는 머리칼을 들여다보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멋진 실버 하이라이트가 생겼네요. 이 스타일로 일부러 염색을 하려면 꽤 비싸답니다! 자연스럽게 생겼으니 운이 좋으시군요.”
어쩌면 유일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의 비결은 당신을 웃게 만드는 사람들에 둘러싸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모든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 p.122

예전의 나는 아주 달랐다. 융통성 있는 성격이었던 나는 모든 상황에 최대한 기꺼이 적응하고자 했다. 대화 테이블의 상대자가 수다쟁이라도, 그 사람이 영화 이야기를 30분 동안 쉬지 않고 한다 해도 나는 웃음을 지으면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상대방에게 더 이상 그런 독백을 참을 수 없으며 그 영화에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아마 상대방은 나를 매너 없는 대화 상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하지 않는다.
--- p.155

삶에 대한 나의 욕망도 나이와 함께 성장한다. 나는 언제나 호기심이 넘치는 타입이었다. 이제 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도시와 세계를 보고 싶다. 또한 일상에서 더 많은 행복을 찾고 싶다. 산책을 할 때 바람이 내 주변을 감쌀 때, 드넓은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질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혹은 음악 연주회에 가서 위대한 음악가들이 오로지 나를 위해 연주하는 듯한 느낌에 빠져 웃음 지을 때 등. 당신이 일상의 삶에서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행복에 취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 p.156

배우자를 찾는 광고는 대개 30세에서 50세 사이의 사람들을 목표로 한다. 물론 이해한다. 그 연령대는 보통 첫 번째 결혼에서 실패하고 두 번째 상대를 찾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연령층이 매우 얇아진다.
내 나이 그룹에는 몇 년 동안 배우자를 찾는 광고가 하나 밖에 없었고 그것도 항상 광고란의 끝부분에 올라 있었다. “76세의 남자에 운동을 좋아하며 비흡연자임.” 그가 ‘기댈 어깨가 되어줌’과 같은 느끼한 표현이나 비슷하게 구차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에게 연락을 하고 싶게 하는 몇 마디의 암호,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가 몇 달 동안이나 광고를 게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광고를 그만둔 까닭이 관에 들어갔기 때문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을 찾았기 때문이길 바란다.
--- p.218-219

그렇다고 속도가 줄어든 나의 삶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노년의 여유 있는 시간을 양심의 가책 없이 즐길 수 있다. 시장을 오가는 데 두 시간이 걸리는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오가는 길에 나는 일상의 작은 것들을 만끽할 수 있다. 공원의 나무와 새들의 지저귐을 기꺼이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 수업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명상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만약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걱정하지 말라.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그것이 이루어진다. 느린 걸음걸이가 당신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순간 속에서 살도록 만든다. 나이는 등록할 필요가 없는 명상 코스이다.
--- p.231

내가 깨달은 몇 가지가 있다.
과거에는 순간을 즐기기보다는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그걸 ‘가정법적 사고’라고 부른다. 저녁 시간에 친구들과의 대화나 한 잔의 와인으로 흥이 오른 나의 기분을 즐기기보다는 그 다음날 얼마나 피곤할지 혹은 늦은 귀갓길이 얼마나 성가실지를 먼저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미리 생각해봤자 도움이 되는 건 없었다. 오히려 순간의 아름다움을 증발시키고 시간이 덧없이 지나가도록 할 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이 같은 가정법 사고에 맞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삶도 점점 나아졌다. 지난 해 북해를 여행하면서 나는 이것이 북해를 마지막으로 보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해변에 서는 순간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나는 내 발바닥 아래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거친 모래알의 감촉에 집중했다. 파도의 일렁거림을 보았고 이따금씩 꽥꽥거리는 갈매기의 소리를 들었다. 북해를 보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라 할지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 p.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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