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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아주 편안한 죽음

[ 양장 ] 을유세계문학전집-11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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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358g | 135*196*17mm
ISBN13 9788932405049
ISBN10 893240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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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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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 거기에서 생명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관성적인 상태로만 연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 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실 만큼 연세를 잡순 거라고 말했을 때, 그건 내가 했던 다른 수많은 말처럼 빈말에 불과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산송장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 p.26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신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야”라고 동생에게 말했었다. 이날 밤 이전까지 내가 느꼈던 슬픔은 모두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슬픔에 잠겨 있을 때조차도 정신을 차린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에 느낀 절망감만큼은 나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듯했다. 나는 사르트르에게 엄마의 입에 대해, 아침에 본 모습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 입에서 내가 읽어 낸 그 모든 것에 대해 들려주었다. 받아들여지지 못한 탐욕, 비굴함에 가까운 고분고분함, 희망, 비참함, 죽음과 대면해서뿐만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내내 느껴 왔을, 하지만 털어놓지 못했던 고독함에 대해서. 사르트르에 따르면 내가 더 이상 입을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내 얼굴에 엄마의 입을 포개어 놓고 나도 모르게 그 입 모양을 따라 했던 모양이다. 내 입은 엄마라고 하는 사람 전부를, 엄마의 삶 전체를 구현하고 있었다. 엄마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나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 pp.41~42

랑콤, 우비강, 에르메스, 랑방 등 고급 상점이 즐비해 있는 그 동네를 지나는 길 구석구석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신호에 걸려 피에르 카르댕 상점 앞에 자주 멈춰 서게 되었다. 펠트 모자, 속옷, 스카프, 구두, 앵클부츠 등 그다지 우아해 보이지 않는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연한 색깔을 한 폭신해 보이는 실내 가운이 가게 안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장밋빛 잠옷을 대신할 잠옷 한 벌을 엄마에게 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향수, 모피, 속옷, 보석. 죽음에게 내어 줄 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뿜어내는 호화로운 거만함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의 이면에 죽음이 숨겨져 있었다. 개인병원, 종합 병원, 그리고 닫힌 병실이 간직하고 있는 침울한 비밀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진실이었다.
--- pp.110~111

영성체를 위한 기도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영성체를 했다. 신부는 다시 한 번 짤막하게 설교했다. 그의 입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이름이 불려 나왔을 때 나와 동생은 둘 다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이름은 엄마를 되살아나게 했다. 그 이름은 엄마의 생애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 생활을 하던 시절을 비롯해 과부였던 시절과 관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마지막 시기마저도 포함하는 생애 전체 말이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 pp.145~146

사람이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도, 살 만큼 살았기 때문도, 또 늙었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로 인해 죽는다. (중략) 암, 혈전, 폐울혈과 같은 것들은 공중에서 비행기 엔진이 멈추는 것만큼이나 급작스럽고 예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꼼짝 못 하는 상태로 죽어 가면서 매 순간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확인한 그때, 어머니는 희망을 품고 기운을 냈다.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의 헛된 노력은 일상의 평범함이 만들어 낸, 불안을 달래 주는 장막을 찢어 버리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 pp.152~153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나’는 어느 날 엄마가 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욕실에서 넘어져 대퇴골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날로 병원에 입원하고 나와 동생은 그날부터 돌아가며 엄마 곁을 지킨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받던 중 엄마의 정확한 병명이 밝혀진다. 엄마가 암에 걸린 것이다. 나와 동생은 그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엄마에게는 그저 복막염에 걸린 것뿐이라고 거짓말한다. 하루아침에 엄마의 보호자가 된 나에게 의사들은 수술을 권한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순순히 그들의 결정을 따르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엄마의 삶을 연장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엄마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한편 나는 서서히 죽어 가는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
그동안 나는 엄마와 소원한 관계를 유지한 채 지내 왔다. 젊은 시절 가부장적인 결혼 생활 속에서 엄마가 매달린 출구는 바로 나와 동생이었고, 때때로 그녀의 채워지지 못한 욕망은 비뚤어진 방식으로 우리에게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엄마는 최대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로 변해 갔다.
그런 엄마가 이제 곧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 한다. 나는 병실에서 엄마를 보살피고 돌보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엄마의 지난 시간을 이해해보려 애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 책은 보부아르가 쓴 최고의 작품이다.”
- 장폴 사르트르 (프랑스 실존주의 사상가, 작가)
“아마도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적은 분량의 책 안에서 그녀 자신의 최고의 성과를,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가장 비밀스러운 것을 주었을 것이다.”
- 피에르앙리 시몽 (아카데미 프랑세즈, 「르몽드(Le Monde)」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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