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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08일
이용안내 ?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
파일/용량 EPUB(DRM) | 50.5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9.7만자, 약 6.2만 단어, A4 약 124쪽?
ISBN13 979119023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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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눈을 파고든다.
--- p.12

“이제 와서 할 이야기라니?”
참았던 울분이 터지려 했다. 퇴직이 결정되자마자 이혼신청서가 날아왔다. 퇴직은 그가 일으킨 사건 때문이었다. 아내는 사건 다음 날 집을 나갔다. 딸 가나코를 데리고 친정으로. 몇 번이나 전화하고 찾아가 이야기 좀 하자고 얼마나 하소연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한 번도 만나 주지 않았다.
--- p.23

가나코를 생각해 본다. 작은 얼굴과 가녀린 몸 그리고 색깔이 엷은 커다란 눈동자. 어머니를 닮아 얇은 입술에 가느다란 콧날. 고집 세 보이는 얼굴. 아버지의 눈에는 참 아름다운 소녀였다. 대화만 잘 통했더라면 가슴을 펴고 멋진 딸이라며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 p.25

그의 팔 안에서 그녀는 점점 저항할 힘을 잃어 갔다. 견디지 못한다. 그가 한마디씩 던질 때마다 수많은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며 떠올랐을 것이다. 관사에 살던 시절, 그녀는 일찍이 경찰의 아내라는 처지에 넌더리를 냈고, 결국 그 사회에서 도드라진 존재가 되었다. 경찰 사회에 순순히 녹아들려 하지 않았고 가나코에게도 그런 자세를 강요했다. 딸 교육에 심혈을 기울여서 딸이 사립 중학교에 진학하면 비로소 자기 신분에 어울리는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만들려고 했다.
--- p.45

사진은 둘 사이를 추량하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연인 사이였을 것이다. 어느 사진보다도 가나코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후지시마는 한참이나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오가타라는 소년에 대해 어이없는 질투심 같은 것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 p.64~65

가나코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바라본다. 인화지를 한 손에 든 채 몽롱해져 가는 그의 몸에 여름 이불 한 장이 올려졌다. 긴 하루였다. 그리고 오늘만큼 딸을 직시한 적도 없었다. 이 세상에 그 아이가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통의 부모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로서 그 성장의 중요한 시기를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도저히 오늘 하루에는 이르지 못한다.
--- p.103

창으로 비쳐 드는 햇살이 따갑다. 화가 치밀 정도로 강렬한 햇살이었다. 커튼을 다시 쳤다.
그녀는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가슴 저 안쪽에서 영문도 모를 자신감이 솟구쳐 올랐다. 반드시 찾을 거야. 후지시마는 스스로를 향해 되뇌면서 그녀의 가슴을 거머쥐었다.
--- p.112

그렇지만 나는 필사적이다.
어느 날 옥상에서 그녀에게 구원받은 다음부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그녀가 죽은 오가타에게 내민 그런 손길과 그런 미소를 나에게도 던져 줄까 하고. 집에 와서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쉬는 날에도.
오가타에게 있지만 나에게는 없는 것. 오가타에게 있고 내게도 있는 것.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했지만 다시는 그녀에게 구원받아야 할 사태를 만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 p.161~162

눈을 감았다. 눈꺼풀 위로 온갖 영상이 떠오른다. 모든 영상에서 그는 쓰러지고 짓밟히고 머리가 깨진다. 기리코와의 섹스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사타구니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둘이서 각성제를 들이켜는 장면을 상상했다. 삶과 죽음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가운데 겨우 잠으로 이어지는 어둠의 꼬리를 부여잡을 수 있었다.
--- p.189

……딸을 지켜 주고 싶었다. 사방이 짙은 어둠에 덮일수록, 그 비명이 처절하면 처절할수록 더욱더. 살아 숨 쉬는 딸 앞에서 무릎을 꿇어 사죄하고 싶었다. 이해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자들을 대신하여 때려 주고 싶었다.
--- p.218

“사실은 그 반대야. 우리는 뭔가가 부족한 존재들이야. 그것도 아주 많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어딘가에 내팽개치고 온 놈들뿐이지. 아포칼립스란 건 이런 거야. 멍청하고 약한 놈들끼리 모여 서로 상처를 핥아 주는 데 지나지 않아. 잘 보면 알 수 있잖아?”
--- p.234

“나는……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아냐,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누구든 사람을 죽여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지. 숨기고 싶은 것이 있고. 가족이나 자기 자신. 자존심과 어둠에 감싸인 비밀. 당신도 그렇잖아?”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사키야마의 멍한 눈길이 자신의 혼 저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 p.311

그녀는 얼굴을 가까이 댔다. 긴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덮고 두 사람만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 마비된 내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젖어들고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미소 지으려 했다. 나는 충족되었다. 시야가 어두워질 때까지 그냥 바라만 보았다.
그녀가 피에 젖은 내 입을 그 입술로 덮었다.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어. 모든 감각이 엷어지고 어둠에 감싸이는 가운데 나는 영원히 그 부드러운 팔에 안겨 있었다.
--- p.397

“……너희한테는 아무 짓도 할 생각이 없다고. 이미 없는 거나 다름없다고…… 돌아볼 것도 없다고…… 그게 너희한테 가장 큰 고통이 될 거라고.”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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