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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을 걷다

얼음 속을 걷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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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에세이 top20 6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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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88g | 130*196*15mm
ISBN13 9791189346195
ISBN10 1189346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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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세워진 레이더 관측소는 해 뜨는 쪽을 향하고, 그 방향 저 멀리에서 우르릉거리는 포성이 울려왔다. 비밀리에 영원히 침묵하며 엿듣고 있는 커다란 귀와 같은 관측소는, 그러나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절규를 방사하고 있다, 저 깊은 우주에 이르기까지. 누가 관측소를 건설했는지, 누가 그것을 조작하며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면 전신주 위에 있던 설비 기사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는 어째서 내 뒤를 그렇게 응시한 것일까? 레이더 관측소는 종종 구름에 가려 있다. 그러고 나서 구름이 걷히고 해가 저물며, 나는 여기 서 있는데 하루하루 시간은 지나간다. 관측소는 언제나 꼼짝하지 않고 우주의 마지막 가장자리를 응시하고 있다. 언젠가 전쟁이 끝날 무렵의 일이다. 비행기 한 대가 자흐랑 산악림 위로 금속제 장비를 떨어뜨렸다. 나무 우듬지에 걸린 그 장비는 깃발이 달려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깃발이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고, 그 비밀스러운 장비가 앞으로 움직일 거라고 확신했다. 밤이 되자 몇몇 남자들이 출발했다. 새벽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알려 주려 하지 않았다.
--- p.33~34

오늘은 서쪽에 고독이 감돈다. 시야가 사라져서 그리 멀리 내다볼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밭에서 새들이 비상하는 모습을 보았다. 새는 점점 많아졌으며, 결국은 하늘이 새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나는 그 새들이 땅의 내부로부터, 중력이 작동하는 깊은 안쪽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저쪽엔 비탈진 감자밭이 있다. 끝도 없이 뻗은 길을 바라보며 나는 불안해졌다. 지난 일주일간 계속 비가 내려서, 태양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마저 불가능해졌다. 내가 브리엔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곧바로 숨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 한 군데만 실수로 아직 열려 있었다. 이내 그 가게 역시 문을 닫았고, 그때부터 마을은 죽은 듯이 황량해졌다. 이 마을 위쪽에는 철의 담장으로 에워싼 성이 거대하고 육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정신병원이다. 오늘 나는 자주 ‘숲’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진실은 스스로 숲을 통해 지나간다.
--- p.118

아침에 나는 파리 외곽에 도착했다. 샹젤리제까지는 반나절을 더 가야 했다. 거기까지 계속 걸어서 갔다. 발이 너무 피곤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 남자가 숲을 통과하러 들어가서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넓은 해안에서 한 남자가 홀로 커다란 개와 함께 산책을 했다. 그에게 심장마비가 왔는데, 목줄이 손목에 묶여 있어서 계속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개는 달리려 했고, 아주 거칠었기 때문이다. 한 남자는 살아 있는 오리를 장바구니에 넣어 갖고 있었다. 눈먼 걸인이 아코디언을 연주했는데, 그의 두 다리는 무릎부터 얼룩말 무늬 담요에 덮여 있었다. 옆에 있는 아내는 돈을 받을 알루미늄 잔을 들고 있었다. 이들 옆에도 장바구니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병든 강아지 한 마리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병든 강아지는 부부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나의 시선은 종종 창밖 광활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거기엔 파도가 부서지고 거센 물결이 일었다. 새벽에는 안개만 잔뜩 끼었다. 히아스는 말한다, 자신은 세상의 끝까지 볼 수 있다고. 우리는 위험이라고 부르는 것의 숨결에 아주 가까이 있다고.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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