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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을 걷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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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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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21년 04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88g | 130*196*15mm
ISBN13 9791189346195
ISBN10 1189346192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몽상과 현실이 뒤섞인 어느 기이하고 아름다운 여행기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영화의 거장
베르너 헤어초크의 심연 속으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1942~)는 1974년 11월,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 온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대학생 때 만난 평생의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영화평론가 로테 아이스너(1896~1983)가 위독하니 어서 그가 입원한 파리의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헤어초크는 최소한의 짐과 돈만 챙긴 채 11월 23일에 뮌헨을 떠나 춥고 습한 중부 유럽의 겨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서 12월 14일에 파리에서 아이스너를 만난다. 이 책은 이 기이한 22일간의 여정 중에 헤어초크가 육필로 남긴 기록을 거의 그대로 담은 것이다. 말 그대로 얼음 속을 걸어 파리로 향했던 이야기를.

『얼음 속을 걷다』는 어디에도 없는 꿈 같은 여행기다. 누군가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라고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헤어초크는 다듬어지지 않은 내면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몽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이 여행기는 기이하고도 아름답다. 독특한 시선을 지닌 예술영화의 거장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를 닮은 책이다.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산꼭대기에 세워진 레이더 관측소는 해 뜨는 쪽을 향하고, 그 방향 저 멀리에서 우르릉거리는 포성이 울려왔다. 비밀리에 영원히 침묵하며 엿듣고 있는 커다란 귀와 같은 관측소는, 그러나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절규를 방사하고 있다, 저 깊은 우주에 이르기까지. 누가 관측소를 건설했는지, 누가 그것을 조작하며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면 전신주 위에 있던 설비 기사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는 어째서 내 뒤를 그렇게 응시한 것일까? 레이더 관측소는 종종 구름에 가려 있다. 그러고 나서 구름이 걷히고 해가 저물며, 나는 여기 서 있는데 하루하루 시간은 지나간다. 관측소는 언제나 꼼짝하지 않고 우주의 마지막 가장자리를 응시하고 있다. 언젠가 전쟁이 끝날 무렵의 일이다. 비행기 한 대가 자흐랑 산악림 위로 금속제 장비를 떨어뜨렸다. 나무 우듬지에 걸린 그 장비는 깃발이 달려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깃발이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고, 그 비밀스러운 장비가 앞으로 움직일 거라고 확신했다. 밤이 되자 몇몇 남자들이 출발했다. 새벽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알려 주려 하지 않았다.
--- p.33~34

오늘은 서쪽에 고독이 감돈다. 시야가 사라져서 그리 멀리 내다볼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밭에서 새들이 비상하는 모습을 보았다. 새는 점점 많아졌으며, 결국은 하늘이 새로 가득 찼다. 그리고 나는 그 새들이 땅의 내부로부터, 중력이 작동하는 깊은 안쪽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저쪽엔 비탈진 감자밭이 있다. 끝도 없이 뻗은 길을 바라보며 나는 불안해졌다. 지난 일주일간 계속 비가 내려서, 태양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마저 불가능해졌다. 내가 브리엔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곧바로 숨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 한 군데만 실수로 아직 열려 있었다. 이내 그 가게 역시 문을 닫았고, 그때부터 마을은 죽은 듯이 황량해졌다. 이 마을 위쪽에는 철의 담장으로 에워싼 성이 거대하고 육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곳은 정신병원이다. 오늘 나는 자주 ‘숲’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진실은 스스로 숲을 통해 지나간다.
--- p.118

아침에 나는 파리 외곽에 도착했다. 샹젤리제까지는 반나절을 더 가야 했다. 거기까지 계속 걸어서 갔다. 발이 너무 피곤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 남자가 숲을 통과하러 들어가서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넓은 해안에서 한 남자가 홀로 커다란 개와 함께 산책을 했다. 그에게 심장마비가 왔는데, 목줄이 손목에 묶여 있어서 계속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개는 달리려 했고, 아주 거칠었기 때문이다. 한 남자는 살아 있는 오리를 장바구니에 넣어 갖고 있었다. 눈먼 걸인이 아코디언을 연주했는데, 그의 두 다리는 무릎부터 얼룩말 무늬 담요에 덮여 있었다. 옆에 있는 아내는 돈을 받을 알루미늄 잔을 들고 있었다. 이들 옆에도 장바구니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병든 강아지 한 마리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병든 강아지는 부부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나의 시선은 종종 창밖 광활한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거기엔 파도가 부서지고 거센 물결이 일었다. 새벽에는 안개만 잔뜩 끼었다. 히아스는 말한다, 자신은 세상의 끝까지 볼 수 있다고. 우리는 위험이라고 부르는 것의 숨결에 아주 가까이 있다고.
--- p.137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신비로운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_ 김연수(소설가)

몽상과 현실이 뒤섞인 어느 기이하고 아름다운 여행기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영화의 거장
베르너 헤어초크의 심연 속으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베르너 헤어초크(1942~)는 1974년 11월, 파리에 있는 친구에게 온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대학생 때 만난 평생의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영화평론가 로테 아이스너(1896~1983)가 위독하니 어서 그가 입원한 파리의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헤어초크는 최소한의 짐과 돈만 챙긴 채 11월 23일에 뮌헨을 떠나 춥고 습한 중부 유럽의 겨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가서 12월 14일에 파리에서 아이스너를 만난다. 이 책은 이 기이한 22일간의 여정 중에 헤어초크가 육필로 남긴 기록을 거의 그대로 담은 것이다. 말 그대로 얼음 속을 걸어 파리로 향했던 이야기를.
『얼음 속을 걷다』는 어디에도 없는 꿈 같은 여행기다. 누군가 읽을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라고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헤어초크는 다듬어지지 않은 내면을 거침없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몽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는 이 여행기는 기이하고도 아름답다. 독특한 시선을 지닌 예술영화의 거장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를 닮은 책이다.

“오래전, 꿈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파리에서 죽어가는 한 여자를 살리기 위해 한 남자가
무작정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게 내가 들은 이야기의 전부였다.
그리고 여기 그 남자가 걸어가는 동안 쓴 책이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그녀는 죽으면 안 된다”라고,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죽어서는 안 된다”라고.
그렇게 동어반복의 걸음걸이로 그는 8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었다.
내게도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날이 있었다.
그 이야기 속의 남자처럼 나도 정신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개업을 알리는 고깃집에서 흐르는 음악 소리를 들었고,
화물트럭 기사의 지친 얼굴을 봤다.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전과 다를 바 없는 이 세계가 어찌나 기이하던지.
그러면서도 또 얼마나 다행이던지.
신비로운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 남자는 죽음에 맞서 걸었고, 수많은 삶을 목격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결말은 꿈과 같다. 죽음에서 시작해 꿈으로 끝나는 책이다.“

_ 김연수(소설가)

내가 걸어서 파리에 간다면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그러나 1974년 11월에 독일 뮌헨에서 시작해서 한 달 뒤 파리에서 끝난 이 작은 사건만큼 기이한 일은 드물 것이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당시 독일 영화의 미래로 꼽히던 젊은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는 1974년 11월 23일에 긴급한 전화를 받는다. 대학생 때 만난 평생의 은사이자 전후 독일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로테 아이스너가 위독한 상태이니 어서 그가 입원한 파리의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였다. 서둘러 짐을 싸던 헤어초크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거나 계시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곳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간다면 아이스너가 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최소한의 짐과 돈만 챙긴 채 춥고 습한 중부 유럽의 겨울 한가운데를 뚫고 파리까지 걸어갔다. 이 책은 그가 이 기이한 여정 중에 육필로 남긴 기록을 거의 그대로 담은 것이다. 말 그대로 얼음 속을 걸어 파리로 향했던 이야기를.

몽상과 현실이 뒤섞인
어느 기이하고 아름다운 여행기


극적인 스토리다. 그러나 그저 이 스토리를 길게 늘여 담았다면, 예컨대 아이스너가 자신과 영화계에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영화와 삶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에 관해 썼다면 이 책은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역사상 가장 광인에 가까운 인물을 꼽으라면 한손에 꼽을 수 있는 헤어초크의 일대기만 보더라도 이보다 더 극적이고 괴상한 사건은 여럿 만날 수 있다. 따라서 이 도보 여행의 가장 기이한 점은 다음과 같다. 가장 이상한 일도, 가장 극적인 일도 아닌데 수십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에게서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얼음 속을 걷다』에서 이 극적인 도입부는 방아쇠에 불과하다.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불꽃을 뿜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아직도 이 일화를 잊지 않는 이유는 이 방아쇠를 통해 급격히 타오르기 시작한 ‘광인’ 헤어초크의 내면을 만났기 때문이다.

베르너 헤어조크, 수수께끼의 전도사

2차 세계대전 이후 무너져 버린 독일 영화는 1970년대에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재건의 시기로 들어섰다. 바로 프랑스의 누벨 바그와 그들 자신의 ‘할아버지’인 독일 표현주의의 세례를 동시에 받은 젊은이들이 내보인 ‘뉴 저먼 시네마’였다. 이 새로운 물결 속에서 가장 앞서 나간 인물은 빛과 시를 함께 다룰 줄 아는 음유시인 빔 벤더스였다. 그러나 뉴 저먼 시네마를 이끌어 가던 또 한 명의 천재 베르너 헤어초크는 언어와 서사를 다루는 측면에서 빔 벤더스와 상반된 길을 갔다. 헤어초크는 언어적 측면, 즉 대사와 서사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특징이라 할 인과와 언어와 서사가 작동하지 않는 지점을 사랑했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설명할 수 없는 사건과 제어할 수 없는 열망(여기에는 심지어 권태도 포함돼 있다)으로 가득하고, 그렇게 원인 모를 신열에 들뜬 인물들은 애초에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거기에 있었던’ 주위 세계(자연, 빛, 그림자)에 둘러싸여 포위당한다. 격렬한 포효와 침묵으로 얼룩진 그의 초기 극영화들과 다큐멘터리들은 이처럼 인간적인 상식을 무너뜨리고 그 폐허 위에서 새로운 힘을, 이름조차 지을 수 없는 열망을 찾고자 한다. 이 열망은 마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나옴 직한 광적인 구도자를 연상케 한다. 대체 헤어초크의 내면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길래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가? 『얼음 속을 걷다』는 그 내면을 드러내 보이고 독자를 그 폭풍 속으로 초대한다.

몽상과 기억과 풍경을 하나로 녹인 뜨거운 폭풍

『얼음 속을 걷다』는 평범한 도보 여행 일지일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고독 속에서 명명할 수 없는 내면의 열망을 관찰했던 헤어초크는 스스로 부여한 계시에 따라 떠난 이 여정 역시 내면의 열망을 통해 재구성한다. 한겨울 유럽 내륙의 숲과 산등성이를 돌파하는 그와 늘 함께 하는 것들은 세상의 종말을 묘사한 소설을 연상케 한다. 눈보라와 추위, 어디에나 존재하는 까마귀, 죽었거나 늙은 동식물들, 발과 사타구니의 통증…… 언어는 이 우울하고 어두운 존재들을 틈틈이 반복해서 묘사하다가 지쳐 쓰러진다. 그렇게 언어와 인과와 의미가 쓰러진 자리에 계시를 얻은 자들 특유의 비전(vision)이 출현한다.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몽상들이 현실을 점점 잠식하면서 독자는 헤어초크가 실제로 경험한 것과 그가 ‘본’ 것들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비(非)의미의 뜨거운 폭풍 속으로 말려드는 것이다. 그 폭풍 속에 담긴 세계는 기이하게 아름답다. 커다란 개가 목줄에 매달린 주인의 시체를 끌고 산책을 나선다. 어떤 새들은 땅의 내부에서, 중력의 중심에서 솟아나온다. 바짝 붙어 달리는 두 화물차의 운전기사는 때로 서로의 차로 건너간다. 간호사는 바싹 마른 시체에게 수액을 공급한다. 고독하고 가난한 여자는 그에게 죽은 세 아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수조에 온갖 희귀한 생선을 담고 있지만, 그것들을 절대로 팔지 않는 생선 요리 가게가 있다.
『얼음 속을 걷다』는 그렇게 특별한 여행기다. 영화 역사상 가장 독특한 시선을 가진 감독이 실제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모든 감각을 극대화시켜 세상을 녹여냈을 때, 독일의 한 영혼은 모든 즐거움을 유폐하고 스스로 택한 고난 속에서 목격한 환상과 계시로 세상을 재구축했다.
그간 폐허 위에서 다시 피어난 독일 영화 속에 어떤 특별한 피가 흐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이 짧은 여행 일지는 단번에 그 피를 뿜어내는 심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 심장으로 향하는 여정은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괴이하고 피로하며 아름답다. 만약 육체의 고난 속에서 마음을 텅 비워 버리고 그 안에 예기치 못했던 생각과 이미지를 담는 게 도보 여행(혹은 순례)의 목적이라면,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도보 여행기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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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i**********a |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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