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1년 04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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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296g | 133*200*15mm |
ISBN13 | 9788954678674 |
ISBN10 | 895467867X |
마우스패드, B4 포스터 증정 (포인트 차감)
출간일 | 2021년 04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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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296g | 133*200*15mm |
ISBN13 | 9788954678674 |
ISBN10 | 895467867X |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하는 시간의 춤 결국, 서로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경이로운 산책길 박솔뫼 소설의 좋음을 알기에 가장 좋을 신작-로 『미래 산책 연습』은 박솔뫼의 일곱번째 장편소설이자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된 작품으로, 지난겨울 갈무리한 원고를 더욱 가다듬어 출간하였다. 2009년 장편소설 『을』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솔뫼는 전혀 새로운 서사 감각과 문체를 선보이며, 등장 자체를 한국문학계의 한 ‘사건’으로 만들었다. 올해로 데뷔 13년, 4권의 소설집과 6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사실이 때로는 무색하고 때로는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매번 자신의 소설세계를 갱신하는 박솔뫼를 ‘젊은 작가의 미래’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낯섦, 전위, 구어체와 비문, 문체와 사유의 리듬감, 일상과 생활. 이는 그간 박솔뫼의 소설을 수식해온 단어이자 그의 소설을 읽어내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이 키워드가 하나로 관통하는 바가 있다면, 이 수식들의 요체가 지시하는 곳을 따라간다면, 그 끝엔 ‘자연스러움’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존재할 것이다. 기승전결이 불분명하거나 없는 서사 전개, 어디로 도약할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보폭, 논리가 아닌 사유의 흐름-리듬을 따라가는 문장은 작가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성법이자, 생각과 삶의 흐름을 가장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이었으리라는 것.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가장 삶을 닮은 방식으로, 가장 호흡에 가까운 리듬으로, 가장 인간적인 보폭으로, 삶의 복잡성과 인간의 깊이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박솔뫼는 써왔다. 『미래 산책 연습』은 이러한 박솔뫼 소설의 자연스러움을, 그 자연스러움의 좋음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다. 물론 자연스러움이 ‘쉬움’이나 ‘말끔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간 박솔뫼의 소설을 사랑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이에게는 그간의 작품보다 한층 친숙하게 쓰인 이 소설로 시작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또한 박솔뫼의 소설을 사랑해온 독자라면 친숙해서 낯선 새로운 기쁨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이 소설의 제목에서 ‘산책’과 ‘연습’에 주목해주시기를 바란다. 전력 질주가 아닌 바로 ‘산책’, 우리는 이 책을 산책의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도 좋겠다. 또한 실전이나 단 한 번이 아닌, ‘연습(練習/演習)’,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고 멈추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지금 뻗는 이 가벼운 한 발짝이 시간의 춤으로 이어지는 첫 스텝이 되는 것을, 누군가의 마음으로 가닿는 첫걸음이 되는 것을 함께 목도해주시기를 바란다. |
먼 곳의 친구들에게 _007 코코아 _019 개와 사랑 _041 새로운 것이 시작될 거야 _063 도넛 _083 다음에 쓸 것들 _105 부산의 눈 _127 따뜻한 물 _141 목욕탕 계획 _159 열아홉 시간을 달린 열차 _191 타워에서 _205 개는 연기를 잘한다 _227 작가의 말 _242 추천의 말 | 사이토 마리코(번역가·시인) _244 |
책을 다 읽고 나서 지나온 역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가 꿈꾸는 나의 삶에 대해서도 ‘정해진 미래’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번 반복하여 익히고 걸치고 입어버리면 어느 순간 겪어버릴지 모를, 그렇게 익숙해진 미래를 손에 만져본 적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오늘을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스스로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며 걷던 수미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던 윤미 언니 그리고 절대로 모욕당한 게 아니라고 믿으며 버텼던 최명환이 내가 힘들 때마다 기억 저 언저리에서 떠올라 나를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빗나갈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정해진 미래라고 우리는 미래에 마주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고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익히고 걸치고 입어버리면 나는 그 순간을 어느 순간 겪어버릴지 모른다. 미래에 익숙해지고 미래를 손에 만져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문을 열고 나가 하던 일을 가던 길을 이어나갈 것이다. (17p)
과거의 사람들이 가져오려 애쓰던 미래는 여전히 미래로 여겨지고 내가 그리는 미래도 미래에는 다시 되살리고 싶은 미래가 될 것이다.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8p)
이 부분을 읽다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 와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지금에서 그것을 지치지 않고 찾아내는 사람들은 이미 미래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어떤 시간들은 뭉쳐지고 합해지고 늘어나고 누워 있고 미래는 꼭 다음에 일어날 것이 아니고 과거는 꼭 지난 시간은 아니에요. 나는 이 책의 번역자와 그와 함께 미문화원을 방화했던 이들은 광주라는 사건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그 이후 시간의 의미를 묻고 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80년 5월에 그들 자신이 광주에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음을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반복한 것은 그때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면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미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미래를 연습하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어땠을지는 알 수 없지만 끝을 내고 매듭을 지어버리는 일,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왜인지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믿고 살아내어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겨 반복하여왔을 것이라는 짐작은 계속되었다. (91~92p)
그들이 손으로 만지고 반복한 미래는 어떤 것이었을지 다시 생각하다가 그것을 묻고 되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다면 끌어온 미래도 이미 일어난 과거로 혹은 지금 살아가는 현재로 믿을 수 있는가. (96p)
나를 둘러싼 어른들이 올바르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어른들이기를 바랐다. 이제는 스스로 그러한 어른이 되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0p)
길을 건너면 다가오는 바다는 나를 휘감고 어쩐지 너는 이렇게 걷다가 사라지게 될 거야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것처럼 잠이 들게 될 거야 말하는 것 같았다. 잠이 들면요? 눈을 뜨면 다음날이 되고 다시 걷고 너는 그 일을 반복하게 된다. 대체 어디서요? 나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111p)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며 걸었다. 그렇게 나와 비슷하지만 내가 아닌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곧 사라질 사람들이 된 것처럼 스스로를 여기며 걸었고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생각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늘 때로는 그것만이 생생했다. (124p)
내가 알게 될 뻔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일들을 입안에 머금은 채 가끔 침을 모아 삼켰다. 삼켜지지 않으면 괴로운 표정으로 걷다 물을 마셨다. 그러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124p)
지금도 나는 누군가 죽어도 좋다는 이야기/ 어떤 사람들은 나라에서 쓸어버려도 좋다는 이야기/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은 흐름에서 탈락되어 죽어버려도 좋다는 이야기/ 그런 사람들은 폐를 끼치지 말고 얼른 죽어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어쩌면 매일 내가 듣는 것은 보는 것은 얼른 그것을 행하라는 사인일지 모르겠고 우리가 공평하고 공정하게 두 손에 각각 빵 하나씩을 쥐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누구도 빵을 세 개 쥐어서는 안 되고 손이 없는 자는 손을 내밀 수 없으므로 그것을 위해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것은 낭비이고 새로운 방법을 만드는 동안 실수가 생길지 모르므로 손이 없는 자가 빵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고 세상 모든 곳에서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149p)
티보가의 사람들에게 자크에게 앙투안느에게 의지하고 싶었고 실제로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자크를 보고 있었고 자크도 나를 믿을 것이다.
내가 부산에서 휴일의 며칠을 보내고 있던 사이 자크는 어느새 제네바로 가 있었고 혁명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기사를 쓰며 돈을 버는 자크는 제네바의 여름 한낮을 걷는다. 나는 20세기 초의 내리쬐는 햇빛은 지금과 다를 것인지 분명히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계절의 묘사는 어느 때고 생생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을 하자 내일 아침 창으로 쏟아져내릴 햇살이 미리 손에 쥐여진 것 같았다. 자크가 걷는 여름의 제네바가 한밤의 내가 있는 곳으로 순간적으로 머물다 가고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나는 제네바의 여름 한낮이 예고 없이 다시 또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는 그 순간들과 함께 누워 있었고 생생하게 닥쳐오는 책 속 사람들을 생각했고 그러다보면 그 공기 안에서 잠이 들 수 있었다. (151p)
내가 보았던 사쿠라이 다이조의 연극 중에는 ‘미래 기억’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연극이 있었다. 일본어로 진행되는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그 제목을 가끔 떠올렸다.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살 수 있었다. 미래를 살고 와야 할 것을 살아낸다면 미래를 기억이 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을 미래를 기억이 되도록 살아가고 있을 때 어느 날 그것이 보인다면 그럼에도 그것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미래로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153p)
책벌레 멘델이 나오는 츠바이크의 단편을 읽었다. 책벌레 멘델은 보통의 독서가의 수준으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책을 읽고 알고 있었다. 그는 늘 카페 글루크에 앉아 자신의 세계에서 책을 만나고 그 세계는 정말로 견고하여 테이블을 두드리는 정도로는 타인의 존재를 알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얼마나 다정하고 예의를 갖추었던가, 전쟁이 그들에게서 그러한 덕목을 앗아가기 전까지 말이다. 나는 멘델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스포르쉴 부인의 손을 내 두 손으로 잡고 거기에 이마를 대고 잠들고 싶었다. 그러면 그 옆에는 앙투안느가 앉아 모두의 인생을 걱정하고 앞으로 모두들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알려줄 것이다. 어쩐지 그 세계는 나를 사랑하던 개 두 마리가 살던 곳과 멀지 않을 것 같다. (164~165p)
그가 해주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그가 감추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동시에 그것을 감추고 있을 것이다. (167p)
80년 5월 27일 이후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물을 뿌리고 청소를 하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빗자루를 들고 나서면 피가 거리에 흐를 것이다. 그 냄새와 공기와 광경을 모르고 모르고 모른다. 사람들은 청소를 하고 또 하고 거리는 서서히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은 학교로 돌아가고 회사로 돌아가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80년 6월은 80년 4월과 같은 곳인가 가망 없고 백치 같은 생각을 하고 사람들은 시체를 찾으러 다니고 조사를 받고 끌려가고 빈 옆자리를 보고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은 제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것들을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떠오르고 시간은 흐를 리 없고 흐르지 않는 시간은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흐르고 80년 6월이 80년 7월이 8월이 81년이 82년이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81년의 82년의 시간이 광주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80년 5월 이후에도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부산 미문화원에 불을 붙인 이들을 참을 수 없게 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동시에 이 역시 착각일 수 있음을 생각하면서 창밖을 보면 열차는 목적지가 없고 열차는 끝없이 달릴 것 같고 끝없이가 과장이라면 열아홉 시간쯤 달릴 것 같다.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달릴 것 같다. (192~193p)
나는 이전에 광주 전남 지역의 미술인들이 80년 겨울, ‘2000년을 위한 파티’를 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2000년은 미래이고 무엇보다 뚜렷한 미래여야 하고 80년 겨울, 2000년의 미래를 스스로 익히고 삼켜내지 않으면 살아갈 힘이 없을지 모른다. 2000년은 광주의 진실이 알려진 미래이며 민주적인 미래이다. 서울의 부산의 대구의 대전의 제주도의 사람들은 80년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누가 그 일을 지시했는지 알고 있고 그들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2000년은 그러한 미래이며 우리는 파티를 여는 동안 그러한 미래를 살고 있다. (193~194p)
당연히도 지금 옥상에 올라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강렬하고 선명한 주황색의 하늘이 이건 마치 끝이에요 지구는 이걸로 끝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하늘이 어두워지고 모두에게 익숙한 어둠이 찾아오면 우리는 또 이런 식으로 하루를 접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끝을 보게 되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여러 번 연습한 끝을 익숙하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211p)
괜찮은 사람이 되려면 한번 죽지 않으면 안 돼요, 누가 그런 소리를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것을 듣다가 한번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거야? 아니면? 죽은 사람이어야 하는 거야? 살아 있는 사람은 가망이 없다는 거야? 물으며 계단을 올랐다. (215p)
언제나 그렇듯 순간순간 이해했다고 착각한 장면을 무척 좋아하면서 그것을 품은 채 다음 걸음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 아마 이 책의 끝에는 사이토 마리코 선생님이 쓴 추천사가 들어갈 텐데 82년 부산을 산책하는 또다른 이야기가 소설을 다 읽은 분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걷다보면 이미 가보았던 길일 수도 있고 걸어도 걸어도 처음 가본 길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 산책을 여러 번 그려볼 것이다. 그런 것은 정말로 좋다. (243p)
지금이라는 시간이 미래에도 과거에도 통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멋지고 동시에 슬픈 걸까. 그러나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라고 작가는 묻는다. 그 해답을 찾으려 애쓰는 것쯤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란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누군가가 줄기차게 계속하고 있는 연습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박솔뫼의 상상력이 그것을 가시화한다. (245p)
이제 열심히 늙어갈 수밖에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조금밖에 없다. 하지만 “옆으로 뛰는 어린 사람을 응원하고 어딘가로 잘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분명 제대로 도착할 거야 확실하게 말하고”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걸고 싶은 말이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힘이 나에게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게 생각하게 해준 ‘이야기의 힘’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소설 속의 작가가 『티보가의 사람들』의 자크나 앙투안느를 친구처럼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서 도망갈 거야’라고 생각했던 수미나 ‘많은 것을 배우는 어른이 되게 도와달라’라고 기도했던 윤미 언니, 그리고 절대로 모욕당한 게 아니라고 믿으면서 달렸던 최명환을 아끼고 살아갈 것이다.
(...) 한 시대를 절실하게 살았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기억은 어느 시대의 어디에서든 누군가의 연습에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246~247p)
처녀작'을'을 읽은 뒤로 그녀의 모든 작품을 구해 읽었다.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장점이 될 수 도 있는 그녀 소설의 특징은 대부분 작품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게는 그것이 장점이자 큰 매력으로 여겨졌다. 사실 박솔뫼의 소설에서 기승전결의 서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순간에 떠오르는 풍경이나 생각이 의미를 가진다. '춥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비밀을 가지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처럼 말이다.
'미래 산책 연습' 마우스패드와 포스터도 같이 구입했는데 아이패드는 색깔이 책표지와는 다르게 너무 선명했고(책 표지는 제대로 페일 블루인데... 이건...)포스터는 접힌 자국이 너무 선명해 영화 전단지같았다. 문학동네에겐 미안하지만 박솔뫼의 책은 문학과 지성사(머리부터 천천히)나 창비(우리의 사람들)에서 나온 편집이 나았다.
'미래 산책 연습'은 귤을 까 먹는 기분으로 읽었다. 박솔뫼만의 혼잣말을 듣고 있는 듯한 상큼함이 스며든다. 어두운 이야기도 무겁지 않게 조근조근 잘 써내려갔다. 전작에서 이미 읽었던 문장들도 나오지만 중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다시 읽게 되어 반갑다. 박솔뫼를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겠지만 나같은 박솔뫼 덕후라면 더 재미있게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박솔뫼표 낱말이 된 부산, 팥빵, 코모도 호텔, 티보가의 사람들, 온양, 광주, 이덕자, 최명환, 인터네셔널, 오래된 아파트와 골목 등같이 말이다.
박솔뫼 작가는 소설을 쓰는 것이 즐겁다고 했는데 정말 즐겁게 쓴 흔적이 보인다. 다만 후반부에 갑자기 주인공의 남친이 등장하는 것이나 주인공이 지인들을 와르르 만나고 지인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부분은 전반부와 흐름이 끊기면서 동시에 오히려 맥이 빠진다. 광주의 조윤미와 주인공의 사촌언니 조윤미 두 조윤미에 대한 결말이 사라진 것 같다.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했던 글들을 다듬어 펴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장편이라기 보다는 하나 하나가 각각의 단편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소설 후반부를 조금 더 고심해 다듬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디까지나 장편소설이니까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자유롭게 쓰는 것도 좋지만 전체의 흐름을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는 그녀만의 목소리를 낼 줄 안다. 유영하듯 자유롭게 가볍게 천천히.. 이번 소설도 한 편의 긴 시같았다. 박솔뫼 작가가 써낸 책은 앞으로도 계속 읽게 되겠지. 글쓰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또 잘 쓰는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그녀를 깊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