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지만 건방진 로봇과 함께 서기 802,701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스릴 넘치는 소설을 읽다 보니 과학 지식이 저절로!!
[타임머신과 과학 좀 하는 로봇]은 공상 과학 소설의 대부인 허버트 조지 웰스의 19세기 문제작 [타임머신]에 담겨진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청소년 과학 소설이다. 과학 전문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이한음이 원작의 스토리와 문제 의식을 그대로 살리면서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미래 인류와 지구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라는 깊이 있는 과학적 주제를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쉽고도 경쾌하게 다루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인공 지능 로봇이 시간 여행자와 동행하며 웰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끄집어내어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고전도 읽고 과학 상식도 넓히는 일석이조의 기회를 한 손에 잡아 보자!
내 몸이 늑대와 섞일 수가 있다고? 할아버지 역설은 또 뭐래?
런던의 실험실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간 시간 여행자가 갑작스레 정지 레버를 움켜쥐자 로봇과 시간 여행자는 총알처럼 공중으로 튀어나가게 된다. 로봇은 시간 여행자의 무모함을 탓하며, 만약 타임머신이 세워진 자리에 늑대가 있었다면 원자들이 겹치는 화학 반응이 일어나게 되어 기계와 늑대가 섞인 인간이 될 수도 있었다고 경고한다. 타임머신이 고속으로 빠르게 돌면서 진공 상태를 만드는 바람에 무언가 있었다고 해도 날아가 버린 게 다행이라는 걸 덧붙이면서.
이때 계기판의 시간은 서기 802,701년. 멀어도 너무 먼 미래로 와 버렸는데 로봇은 차라리 과거로 가지 않아서 나은 거라고 말한다. 만약 시간 여행자가 과거로 가서 어떤 아이가 타임머신에 부딪혀 죽었는데, 그 아이가 시간 여행자의 할아버지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시간 여행자의 아버지가 태어나지 못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시간 여행자도 태어나지 못하게 된다. 로봇은 이처럼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가서 행한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것을 ‘할아버지의 역설’이라고 설명해 준다.
할아버지 역설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평행 우주 이론에 의하면 할아버지가 죽는 시점에 우주는 갈라진다. 할아버지가 죽은 우주와 할아버지가 살아 있는 우주로. 그러니까 시간 여행자가 살아 있는 우주와 아예 없는 우주가 있게 되는 거고, 물론 시간 여행자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은 우주도 있게 되는 거다. 그런데 이처럼 사건이 생길 때마다 우주가 갈라지게 되면 무수히 많은 우주가 생기게 되는데 그 많은 우주가 들어갈 공간이 있기는 하는 건가? 시간 여행자의 질문에 똑 소리 나는 로봇은 빅뱅 이론으로 답해 준다. 약 138억 년 전 우주는 한 점에서 뻥 터져서 팽창하게 되는데 빅뱅으로 우주가 팽창하면서 비로소 시공간도 생겨난다. 즉 우주 자체가 공간이므로 평행 우주가 들어갈 공간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편안함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현대 인간에 대한 경고
인류와 지구 문명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당연하게 진화해 나갈까? 시간 여행자와 로봇이 미래로 가서 만난 인류의 조상은 아주 다른 두 부류인 일로이와 멀록으로 분화되어 있다. 자본가의 후손인 일로이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빈둥대며 걱정 없는 삶을 사는 지상의 존재들로 얼핏 보기엔 마침내 인류가 유토피아를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는 대로 먹으면서 누가 자신들을 먹이는지, 위험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지 않는 일로이는 변화도 발전도 하지 못하는 퇴화된 인간일 뿐이다. 지하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추악한 괴물로 변해 버린 노동자의 후손인 멀록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진화한 인간형으로 보기 힘들다. 소통이 단절된 지상과 지하의 두 종족, 그들이 보여 주는 인류의 미래를 통해 웰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만약 시간 여행을 한다면?
『타임머신』이 나온 지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우리는 웰스가 책을 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갖추고 있고 스마트폰 같은 놀라운 장치를 매일 접하면서 살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도 전에 시간 여행을 이론적으로 생각해 낸 웰스는 뛰어난 과학적 사고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지만, 눈부신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당연히 웰스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향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 이한음 작가는 생각하는 로봇을 등장시켜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지만, 이 책을 보는 청소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로봇이라니, 이크종의 유머러스한 40여 컷 일러스트
연세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의 일러스트레이터 임익종. 이크종이라는 만화가로 더 알려져 있다. 이한음 작가의 글에서 한번 쉬워진 과학 이론이 공학을 전공한 이크종의 그림을 만나 아주 만만해져 버렸다. 평행 우주, 빅뱅, 다윈의 성 선택, 붉은 여왕 가설 등을 익살스러운 만화 풍 그림으로 재미있게 시각화했다. 소설은 좋아하지만 과학에는 영 흥미가 없는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