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내용
까칠한 강아지 올드독이 영화를 말한다. 올드독은 약간 소심하지만 남다른 생각과 철학적인 대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만화 캐릭터다. 작가 정우열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음악, 미술, 만화, TV, 영화 등 다채로운 문화 이야기를 일상 생활에 엮은 웹툰 <올드독>으로로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었다. 영화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올드독의 영화노트>는 몇몇 사이트에서 연재하면서 영화 읽기의 즐거움을 전한 작품이다. 영화 애호가인 작가는 작품으로서의 영화는 물론 감독과 배우 등 다양한 주변부 인물까지 만화에 끌어들인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가리지 않고 예술 영화와 블록버스터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다양한 영화에 관한 시시콜콜한 잡상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화로 영화를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64 편의 영화를 모두 섭렵한 독자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이미 봤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신나게 웃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답답하지 않을까? 정답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만화를 즐길 수 있다. 올드독은 스포일러를 적절히 피하면서도 만화 자체로 완결성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독자들은 이 속에서 즐거움을 얻고, 어느새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해낼 것이다.
까칠한 올드독은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이단 헌트가 유능한 요원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또 <괴물>이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영화의 내적인 부분에 집중하게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는 된장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피력하고 <해변의 여인>을 보며 이름과 실체의 관계를 다룬 인식론을 이야기한다. <매치포인트>와 고장난 세탁기를 비교하며 운명론에 대한 뜻 깊은 고찰을 하면서 유머를 날리기도 한다.
● 작품 미리보기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을 본 사람이라면 주인공 다아시의 매력적인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다아시라는 인물에 영화 외에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듯하다. 예를 든다면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다아시, BBC에서 제작한 다아시가 있겠다. 올드독은 이 다채로운 다아시들을 한 데 모아놓고 성능 비교에 들어간다. 어느 쪽의 외모가 우수한지, 어느 버전의 다아시가 진정 ‘오만’한지, 각 다아시 별 필살기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등등…. 작가의 머릿속에서 술술 흘러넘치는 영화 관련 정보는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를 제공한다. 영화를 본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즐거움을,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 낸다.
매치 포인트 ‘인생은 어차피 운이요, 슬프지만 그 부조리를 직시하라’는 <매치포인트>의 우디 앨런 감독. 올드독은 고장난 세탁기에 그 의미를 투영해 본다. 애초에 고장난 세탁기가 자신의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던 것이다. AS 기사는 매번 똑같은 말만 하고 돌아설 뿐, 딱히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우디 앨런의 이야기처럼 모든 것은 운일 뿐인가? 한 편의 영화 속에 숨은 철학은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거리가 된다. 올드독은 그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고, 독자들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 정우열
네이버 블로그의 인기 스킨 프로바이더인 정우열은 컬러 감각과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만화가다. 만화가로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미 수많은 책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업계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다. 이래저래 참여한 책만 해도 수십 권에 이른다. 올드독 블로그에는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올드독 애니메이션이 몇 편 실려 있어 작가의 영화적 끼와 감각을 가늠하게 한다. 재주가 많다보니 때론 많은 일거리를 떠안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는 작은 이슈 속에 숨은 차별을 지적해내는 데 부지런하다. 약간의 소심함과 조금의 귀차니즘 덕분에 큰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올드독이 유머러스하게 뱉어내는 대사 속에는 사회 속 부조리에 대해 시선이 숨어 있다. 비록 소소한 일상에 집중하는 그의 만화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의 만화를 천천히 탐독하다 보면 웃음 속에 숨은 그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올드독의 팬이 되고서 정우열의 실제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시니컬하지만 너무나 귀여운 올드독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의 정우열은 올드독처럼 귀여워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무뚝뚝한 편이다. 수영으로 다져진 탄탄한 외모와 멋진 패션 감각이 귀염둥이 강아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올드독과 무척 닮았다.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의외라고 생각할 법한 사소한 부분에 집착한다. 아주 가끔 술을 마시고 영화에 대해 말다툼을 벌인 후 후회하기도 한다.
북디자이너인 이지은 씨가 부인인데 이번 <올드독의 영화노트>도 <올드독>, <올드독 다이어리>에 이어 직접 디자인하며 작품의 매력가진 매력을 산뜻하게 이끌어 냈다. 소장하고 싶은 책 <올드독 영화노트>는 만화가, 북디자이너 부부의 합동 작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