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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소개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왜 하필 네가 사랑한다는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와 버렸을까. 나도, 나도 이젠 놓을 수 없는데.
흰 눈이 내리던 크리스마스 이브. 사랑하는 연인과의 하룻밤을 준비했던 채은은 다음 날 상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계속 그의 눈에 들어오던 소녀를 바라보기만 했던 은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형제 사이에서 고민하던 채은은 결국 그 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 사이 새로운 생명이 그녀와 함께하기 시작하는데…….
“난…… 지옥에 떨어지겠죠……?”
채은의 쉬어버린 목소리가 은기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지옥에 간다면…… 기꺼이 함께 가줄게…….”
은기의 떨리는 목소리가 채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밤, 4월답지 않게 거센 비바람이 불던 그 밤, 은기는 울다가 지쳐 잠든 채은을 품에 안고 사나운 바람소리를 들으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채은아, 어쩌면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 중에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2. 작가 소개
심윤서
프란체스카.
글을 쓴다는 것에 스스로 위안을 받으며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쓰고 싶다는
소망을 언제나 기도한다.
▣ 출간작
로스트
메리크리스마스
당신은 가벼운 남자
사랑 그 이름만으로
우애수
허니비 모놀로그
난다의 일기
3. 차례
프롤로그
Merry Christmas! 1.
Merry Christmas! 2.
Merry Christmas! 3.
Merry Christmas! 4.
Merry Christmas! 5.
Merry Christmas! 6.
Merry Christmas! 7.
Merry Christmas! 8.
Merry Christmas! 9.
Merry Christmas! 10.
Merry Christmas! 11.
Merry Christmas! 12.
Merry Christmas! 13.
Merry Christmas! 14.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채은은 누군가의 억눌린 신음소리에 움찔 놀라며 눈꺼풀을 파르르 열었다. 두려운 듯 또르륵,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여 주변을 살피던 채은은 남자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움찔 눈을 꼭 감고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흐흑. 꿈이야. 신채은. 꿈이라고! 악몽이니까 빨리 깨어나!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진 채은은 흐느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다 다시 아프도록 탁탁 머리를 내리쳤다.
몸부림치며 흐느끼는 채은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자는 갑자기 채은의 맨 어깨를 꽉 붙잡아 일으켜 앉혔다. 채은은 갑작스런 남자의 손길에 꺄악, 경기하듯 비명을 지르며 벗어나려고 더욱 버둥거렸다.
“신채은! 너, 신채은 맞아?”
순간, 채은의 움직임 딱 멈추더니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반듯한 이마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젖은 머리카락, 쌍꺼풀 없이 살짝 치켜 올라간 서늘한 눈매, 오만하게 뻗은 콧날, 그리고 가운데가 살짝 들어가 전체적으로 오만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묘하게 관능적으로 보이게 하는 아랫입술.
그 입술을 보자 어젯밤, 자신의 온몸에 키스를 퍼붓던 그 뜨거웠던 입술이 생각났다. 천천히 다시 시선을 올려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서늘한 눈매를 바라보았다. 낯익은 눈매, 그리고 얼음 같은 눈빛.
“은, 은기 오빠?”
채은은 넋이 빠진 듯 멍하니 은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 사람이 준기 오빠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걸까? 다음 달에 온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니, 신채은.
시간이 멈춘 듯 은기와 채은은 서로 말없이 마주보기만 했다. 숨조차 쉬기 힘든 무거운 침묵이 햇살 가득한 방 안을 짓누르고 있었다. 채은의 맨 어깨와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제발……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질식할 거 같은 숨 막힘이 극한에 다다랐다.
똑똑.
터질 듯한 방 안의 공기를 가르는 노크소리에 두 사람은 동시에 움찔 어깨를 떨었다.
“은기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
“도련님?”
대답이 없자 손잡이가 아래로 찰칵 움직였다. 은기는 재빠르게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서려는 이천댁을 가로막았다.
“네. 아주머니.”
“일어나셨네. 잘 주무셨어요?”
탁.
문이 닫히고 두런거리는 이천댁의 목소리와 두 사람의 발소리가 서서히 멀어져 갔다. 채은은 눈을 힘껏 감았다가 다시 번쩍 떴다. 현실이다. 꿈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신채은.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한 거니? 준기 오빠가 아니라는 걸. 아무리 어두웠어도 아무리 긴장했어도. 긴장 때문에 마신 몇 잔의 와인. 더군다나 준기의 침실에 다른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빠, 오늘 뭐 할 거야?’
‘너도 없고, 아버지도 안 계시고 아줌마랑 아저씨랑 고스톱이나 칠까?’
무주에서 건 전화에 준기는 잔뜩 불퉁해져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고스톱? 그건 좀 너무하다. 오빠 친구들이랑 놀지 왜?’
‘오늘 같은 날 시커먼 놈들이랑 무슨 재미로? 그냥 밀린 잠이나 잘래.’
‘내일 일찍 올라갈게.’
‘그래, 내일 보자. Merry Christmas! 신채은.’
‘응. 오빠도 Merry Christmas!’
아니야. 그건 변명거리도 못 돼. 그가 아닌데,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데. 신채은, 너 미쳤니?
그래, 아라미스. 준기가 항상 쓰던 아라미스와 다른 향이 섞여있었다. 솔잎 향기처럼 싸한 느낌의 쌉쌀했던 향기. 그리고 머리카락……. 준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달리 좀 더 뻣뻣하고 억센 느낌이었다. 축축하게 감겨왔던 머리카락의 느낌이 떠오르자 채은은 두 손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준기 오빠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어째서 나를 안았을까? 잠결에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어째서.
링링링.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 속에 빠져 있던 채은은 날카로운 전화 벨소리에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전화! 준기의 전화. 채은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채은이 어제 집에 온 줄 모른다. 이마도 확인하러 2층으로 올라올 것이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앗!
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자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이 밀려오자 채은은 신음을 흘렸다. 입술을 꽉 깨물고 다리에 힘을 주어 바닥에 내려서자 허벅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오는 뜨뜻한 이물감에 채은은 절망하며 눈을 감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운을 걸치고 방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하얀 침대시트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흐윽. 오빠, 준기 오빠! 나 어쩌면 좋아? 어떻게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을까?
후두둑. 눈물이 하얀 시트에 얼룩을 만들며 떨어져 내렸다. 온 마음을 다해 온전히 자신을 모두 주었다고 생각했던 어젯밤의 벅찬 마음이 이렇게 처참하게 나락으로 떨어질 줄 몰랐다. 준기의 방에 들어섰을 때의 그 낯설고 불안한 느낌의 실체가 결국 이것이었나. 쓰라리고 아픈 몸을 움직여 시트를 벗겨내던 채은은 어지럽게 피어 있는 붉은 흔적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