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장 가방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이미 아버지였고 당연히 어른이었고, 바쁜 목수였습니다. 아버지는 일하느라 늘 밖으로 돌았습니다. 깜깜한 새벽에 나가서 해가 지고 어둑해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오자마자 연장 가방부터 풀어 정리했습니다. 아버지의 연장 가방에서는 고된 작업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목수의 연장들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목수가 되기 이전과 아버지가 되기 전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몇 년 전부터 집에만 있습니다. 주름진 얼굴, 허옇게 센 머리, 앙상한 팔다리, 구부정한 몸, 세월이 흘러 어느덧 노쇠한 할아버지로 변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아버지의 지난날이 궁금해집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버지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날 마법 빗자루가
마법 빗자루가 언제까지고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영원할 것 같던 빗자루도 하루하루 낡아 가고, 아무리 좋은 마법 빗자루라도 언젠가는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된답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주 가끔은 빗자루가 갑자기 힘을 잃어버리기도 해요. 오래전 어느 쌀쌀한 가을밤,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엄마야 누나야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아버지는 언제 오실까?
저 멀리서 나무꾼이 돌아옵니다. 지게 위 진달래꽃 따라 노랑나비도 오는데, 강줄기 따라 황포돛배도 들어오는데, 아버지는 오늘도 못 오나 봅니다. 국궁 국궁, 국궁새 우는 소리가 구슬프게 울리는 강변 마을, 정식이는 이곳에서 엄마와 누나와 셋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느 날 중절모를 쓰고 흰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결연히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고는 여태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정식이는 이제나저제나 아버지가 올까, 매일 배가 들어오는 강가에 나가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아버지가 그립기는 누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 수를 놓다가도 아버지가 언제 오나 엄마에게 묻곤 합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말없이 먼 산만 바라봅니다. 엄마는 매일 찬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갓 지은 밥을 담은 아버지 밥주발은 식을세라 겹겹이 쌓은 이불 틈에 끼워 둡니다. 한밤중에 깨어보면 장독대에 올린 정화수 앞에 고개 숙여 간절히 두 손을 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없어도 삶은 계속됩니다. 어두운 밤이 오면 지등에 불을 밝히고, 명절이 되면 송편도 빚습니다. 학교도 가고 썰매도 탑니다. 아버지가 도맡던 빗자루 매는 일은 엄마가 하고, 아버지 대신 정식이가 제주가 되어 제사도 지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울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일요일 어느 멋진 날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클레망틴은 엄마 아빠와 함께 할머니 댁에 갑니다. 손녀를 반갑게 끌어안는 할머니와 달리 할머니에 대한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이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클레망틴. 언제나 몸에 자잘한 나뭇가지들을 매단 채 껴안는 할머니도 싫고, 같이 먹는 식사, 엄마 아빠의 여름휴가 이야기도 재미가 없습니다. 예의를 강조하는 부모 앞에서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도 없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에는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클레망틴은 그 자리를 벗어나 정원으로 나갑니다. 그러다 정원 울타리 구석에서 작은 구멍을 발견하고는 구멍 속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갑니다.
구멍 속으로 들어간 길의 끝에서 클레망틴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낯선 소년을 만납니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소년은 경계심없이 클레망틴에게 말을 건넵니다. 클레망틴도 소년을 피하거나 멀리하지 않습니다. 어느새 함께 놀고, 마음껏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두 아이가 함께하는 순간을 마치 한낮의 기분 좋은 꿈처럼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리고 가볍게 펼쳐 보인 작가의 그림은 오히려 글보다 더 깊고 진하게 와닿습니다. 그저 같은 시공간 속에서 같은 감정을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두 아이들처럼, 독자들도 어느새 작가가 생생하게 그려낸 신비롭고 아름다운 숲에서 함께 걷고 함께 날고 함께 웃으며, 누구와도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고, 위로 받으며,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꼬리 여덟 개 잘린 구미호가 다녀갔어
어스름한 밤, 평범한 여우 한 마리가 산꼭대기에서 보름달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서서히 도시로 내려오는데,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해 있습니다. 여우는 자신이 구미호라고 말합니다. 백 년에 꼬리가 하나씩 생기는 구미호인데, 밀렵꾼이 놓은 덫에 걸려 꼬리가 여덟 개나 잘렸다는 것입니다. 꼬리가 아홉 개가 되면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아홉 번째 꼬리가 생긴 날 험한 꼴을 당하고 말았답니다. 다행히 꼬리가 하나 남아서 겨우 목숨을 건진 구미호는 자신의 꼬리를 되찾기로 다짐합니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밀렵꾼도 혼쭐을 내 줄 작정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도시로 내려온 것이지요. 하지만 꼬리 하나로는 딱 하루만 변신할 수 있어서 서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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