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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향찰, 한글, 한문 … 그 사이 어딘가의 한국사 한국사를 다르게 상상하다 언어가 사라진다면 언어가 담고 있는 ‘실재’는 어떻게 될까 2021년 호드리구 카마한리어 스위스 취리히대 생물학자 등은 미국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전통 약초와 관련된 의학 지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약용으로 쓰이는 토착 식물 중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것은 5퍼센트가 안 된다. 그렇다면 호드리구 카마한리어 등은 무슨 근거로 위기를 말한 것일까? 식물 자체보다는 그 식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인간이 위기를 겪으면서 관련 지식이 사라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경고였다. 약초에 대한 지식 대부분은 특정 언어로만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언어를 쓰는 부족들이 위기에 처하면서 해당 지식 역시 사라질 위험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한겨레》 2021년 6월 14일).
[도서] 바다에서 발굴한 고려사
고려, 바다를 달리다 우리가 몰랐던 고려 시대 바다 이야기 주꾸미가 찾아낸 고려 보물선 2007년 5월 14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주꾸미를 낚던 어부가 청자 대접에 빨판을 붙인 주꾸미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어부의 신고를 받고 조사에 나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발굴팀은 해당 지점에서 청자 8,000점을 비롯하여 선체, 목간, 선상 생활용품 등 총 2만 4,887점이나 되는 유물을 건져 올렸다. 2009년에는 태안 마도 1호선이 8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연이어 태안 마도 2호선과 3호선도 출수되었다. 불과 5~6년 사이에 고려 시대 선박 4척이 700~80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선박 안에는 화물표에 해당하는 각종 목간을 비롯하여 도자기, 곡물과 같은 적재물, 그리고 숟가락, 젓가락, 빗, 장기알 등 선원들의 일상용품 등이 적재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고려 시대의 타임캡슐은 그렇게 예고 없이 한꺼번에 열렸다.
[도서] 시간이 놓친 역사, 공간으로 읽는다
공간, 역사를 담다 시간의 역사학에서 공간의 역사학으로 공간으로 역사 읽기 최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시간과 공간을 두 축으로 삼아 전개되어왔음을 감안하면, 인류가 공간을 무대로 삶을 꾸리고 역사를 일구어왔음을 생각하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근대 역사학에서 공간은 상당히 오랫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심지어 ‘지리결정론’이라 하여 역사 연구에서 ‘지리’나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터부시하기도 했다. 근대사회로의 전환과 더불어 형성된 시간 우위의 역사관 때문이다. 인류의 어떠한 행위도 공간을 떠나 이루어질 수 없다. 인류는 공간을 무대로 삼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를 전개했다.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었다”라고 시작하는 고조선의 단군신화, “고조선 유민들이 산골짜기에 흩어져 6촌을 이루었다”로 시작하는 신라의 건국설화를 보라.
[도서] 암각화, 바위에 새긴 역사
글바위 그림바위 옛 사람들의 암각문과 암각화를 찾아 너무나 멀고 낯선 옛 사람들의 바위그림 이야기 근현대와 달리 고대 및 선사시대 예술과 문화, 역사는 잃어버린 고리가 많아 제대로 복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점에서 바위그림, 즉 암각화는 고대 및 선사시대 인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고리이다. 인간이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문양을 새겨온 것이 후기 구석기시대부터이기 때문이다. 암각화는 우리나라에도 제법 많다. 국보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울산의 두 암각화 유적,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외에도 검파문 암각화로 불리는 유적이 11곳, 그 외 동심원문이나 성기문 같은 것이 새겨진 암각화 유적이 14곳, 모두 37곳에서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거나 벽석, 숫돌 등이 보고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암각화는 너무나 멀고 낯설다. 연구의 첫걸음을 뗀 지 겨우 50년 남짓인데다 대중의 관심도 부족하고 연구자도 몇 안 되기 때문이다.
[도서] 15세기 조선 사람과 만나다 : 미아보호소부터 코끼리 유배까지
조선 생활 실록 [실록]에 담긴 15세기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 ‘어머니하고 처하고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까?’ ‘어머니하고 처하고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까?’ 단순하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밸런스 게임’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조선 사람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답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성현(현 경상도 산청군 단성면)에 공노비 천년이 살고 있었다. 천년은 물가에 살고 있었는데, 6월 홍수로 물이 넘쳤다. 집이 물에 모두 잠길 위험에 처하자, 천년은 처자를 두고 어머니를 업고 탈출했다. 예조는 경상도 관찰사의 보고에 의거해 천년의 효심을 포상하자고 했고, 성종은 이를 수락했다. 성종은 천년의 포상을 수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통 사람의 인정은 처가 먼저이고 어미가 나중인데, 천년의 일은 진실로 가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