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를 쓰고 조선 시대 최고의 문학가로 불리는 박지원의 이야기 『껄껄 선생 여행기』. 참된 학문을 하기 위해 탐구하고, 그것을 백성을 위해 실천하고자 했던 박지원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열하일기》의 굵직한 여정을 따라가며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책입니다. 평범한 길을 거부한 자유로운 영혼, 끝없는 호기심, 백성의 편에 선 지식인 등 박지원에게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면모를 담았습니다. 호기심 많고 익살스럽고 유머를 좋아하는 박지원과 함께 200년 전 중국으로 떠납니다.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박지원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는지 또 무엇을 고민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옳지 않음을 쉽게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사랑한 한 지식인의 유쾌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저자 김기정은 1969년 충북 옥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려서 책도 좋아하고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는데도, 글 하나 제대로 쓸 줄 몰라 10여 년을 쩔쩔매었습니다. 여기 연암 박지원 선생을 만나 비로소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된 건 만 권의 책 속에서 헤맨 뒤였습니다. 지은 책으로 《금두껍의 첫 수업》, 《박뛰엄이 노는 법》, 《명탐정 두덕 씨》 들이 있습니다.
그린이 최미란은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낯선 풍경에 우왕좌왕, 즐거움 반 고생 반 남는 건 사진뿐. 오래 가지 못할 추억이지요. 전 박지원처럼 여행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공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한다고 해도 제 성격상 항상 구멍이 날 테니까요. 하지만 제 자신을 좀 더 비우고 채울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담에는 좀 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린 책으로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돌로 지은 절 석굴암》, 《우리는 집지킴이야!》, 《출동! 마을은 내가 지킨다》, 《칠머리당 영등굿》 들이 있습니다.
시장 모퉁이의 양반 쏜살같이 달리는 배 보는 것과 보이는 것 밤마다 돌아다니기 세상에서 가장 큰 책방 거리 하룻밤에 아홉 강을 건너기 열하 공부를 하는 진짜 이유 배운 대로 세상을 다스리다
‘열하일기의 재미와 감동을 어린이책으로 오롯이 살려 내다!’ 조선 시대 최고의 문학가인 실학자 박지원 이야기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 것일까요? 껄껄, 무릇 공부란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조선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박지원의 고군분투 껄껄 여행기 200년 동안 빛나는 고전 《열하일기》 속의 껄껄 선생 박지원을 찾아라! 책을 펼치면 키가 후리후리하고 어깨가 딱 벌어지고 눈이 부리부리한 박지원의 캐릭터가 한눈에 독자와 눈맞춤을 한다. 호기심 많고 익살스럽고 유머를 좋아하는 박지원이다. 이 박지원과 함께 200년 전 중국으로 떠나보자. 사나운 물살, 끊임없이 내리는 폭우, 맹수들의 울음소리 등을 겪어 내면서 겨우 북경에 도착했는데, 황제는 열하로 떠나고 없다. 사신 일행은 밤에도 잠을 못 자고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는 등 미친 듯이 열하로 달려간다. 험난한 여행길에 겪어 내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고생만 한다면 여행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중국이라는 딴 세상에서 만난 화려한 결혼식 행렬,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성과 북적북적한 시장, 신기한 코끼리와 낙타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큰 책방 거리 등 새로운 이국적 문물을 보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열하일기》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한바탕 여행을 잘했다는 느낌이 든다. 《열하일기》는 재미있고 생기발랄하다. 박지원의 생각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뛰어난 문장으로 가득하여 지금까지도 빛나는 고전으로 사랑 받고 있다. 《껄껄 선생 여행기》는 참된 학문을 하기 위해 탐구하고, 그것을 백성을 위해 실천하고자 했던 박지원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열하일기》의 굵직한 여정을 따라가며 입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여행 내내 박지원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고민했는지 엿볼 수 있으며, 옳지 않음에 쉽게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사랑한 한 지식인의 유쾌한 모습을 만나 볼 수 있다. 《양반전》, 《허생전》, 《호질》을 쓴 소설가, 《열하일기》를 쓴 여행기 작가, 북학을 이끈 실학자, 박지원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배꼽 빠지게 우스워- 유머 넘치는 거인 박지원은 스스로를 껄껄 선생이라 칭하였고, 사소한 일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이었다. ‘내 성미가 본디 웃음을 참지 못하므로, 사흘 동안 허리가 시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열하일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이 나오자 보는 이들마다 서로 베껴 가고 밤새 밑줄 그으며 읽었고, 글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은 온통 이 책 얘기만 해 댔다고 한다. 중국을 여행하던 박지원은 어느 점방에 걸린 깨알 같은 글을 열심히 베껴 적었다. 주인이 왜 베껴 적느냐고 묻자 그 이야기가 배꼽 빠지게 재밌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자기 배꼽을 줍느라고 난리일 거라고 하면서. 이 이야기가 바로 그 유명한, 교과서에도 실린 ‘호질’이다. 박지원이 워낙 유쾌한 사람이었기에 동일한 상황에서도 훨씬 재미있게 느끼고, 재미있게 표현하여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다. 껄껄 웃은 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큰 사발에다 술을 가득 부었다. 그리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한 모금 삼키는 순간, 여태까지 마셔 본 적이 없는 독한 술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곁눈질로 주위를 살폈다. 사람들이 다 토끼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멈춘다면 아주 우스운 꼴이 될 것 같았다. 술잔을 비우니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값을 치르고 나서는데 이게 웬걸, 사람들이 붙잡는 것이었다. “아이고, 대단합니다. 자, 한 잔 더!” - 본문 55~56쪽어찌 잠이 온단 말인가! - 끝없는 호기심 북경으로 가는 길고 급하고 고된 여행길에서 다른 사람들은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박지원은 밤중에도 밖으로 나갔다.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들로 가득한데, 어찌 잠이 온단 말인가 하면서. 불이 켜져 있는 점방으로 들어가 중국인들과 필담을 나누었다. 벽돌 만드는 법, 성벽 쌓는 법, 똥 사용법 등을 묻고 듣고 하면서 공책에 꼼꼼히 적었다. 우리 백성들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니 낮에 길을 갈 때는 말 위에서 졸기 일쑤였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가진 박지원은 신기한 구경거리도 좋아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 박지원이 보는 것은 달랐다. 남들이 폭죽과 예쁜 신부에 눈이 팔릴 때, 박지원은 수레바퀴와 길에 눈길이 갔다. 남들이 요술쟁이와 코끼리와 만리장성과 어마어마한 시장과 성들에 감탄할 때 박지원은 중국 학자들과의 만남에 뜻을 두었다. 박지원은 여행 중에도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한 공부에 열중했던 것이다. 똥 지게꾼한테 배워 봐! - 백성의 편에 선 지식인 당시 양반들은 거들먹거리면서 신분이 낮은 이들하고는 함부로 말도 않던 시대였다. 그러나 박지원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시장에 나가 똥 지게꾼, 말 장수, 다리 밑 거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이들과 친해지면 질수록 양반들의 무능과 위선, 타락이 명확하게 보였다. 박지원은 18세 때 마음이 따뜻한 거지 이야기 ‘광문자전’을 썼고, 20대 초반에 양반들의 위선과 타락을 폭로한 ‘양반전’, 똥 지게꾼의 훌륭한 삶을 다룬 ‘예덕 선생전’ 등 여러 소설을 썼다. 30대 초반에 백탑 근처로 이사하여 홍대용, 정철조, 이서구,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과 우정을 나누면서 백성들이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박지원은 북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이끌며 선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저런 하찮은 똥 지게꾼이랑 뭔 얘기를 하누?” 그러자 선생이 껄껄 웃었다. “모르는 소리 말게. 저이는 아침마다 마을 뒷간에 가서 똥을 치워 나르지. 말똥, 소똥, 닭똥, 개똥까지 똥이란 똥은 가리지 않고 귀하게 여긴다네. 똥을 밭에 뿌리면 채소의 때깔이 달라지지. 덕분에 채소는 시장에서 아주 잘 팔린다네. 큰돈을 버는 데도 저이는 밥 한 그릇에 옷 한 벌로 살고 온종일 똥을 퍼 나른다네.” - 본문 8쪽과거는 절대 안 볼 거야! - 평범한 길을 거부한 자유로운 영혼 박지원은 한양의 이름난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그 시대 양반들은 어려서부터 과거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자리를 얻는 것이 당연한 코스였다. 그러나 박지원은 그 길을 거부하였다.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위의 강권에 못 이겨 억지로 시험장에 나가서도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지루한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공부가 백성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즈음 과거는 온갖 비리가 난무하는 난장판이어서 그런 곳에 발을 담그는 것은 뜻이 높은 선비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글이란 자유롭고 재미있어야 해! - 조선 시대 최고의 문학가 《열하일기》는 재미있고, 생기발랄하다. 박지원의 생각과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뛰어난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엄숙하고 심각한 문장을 좋다고 생각했던 양반들은 박지원의 독특한 글쓰기를 참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정조 임금까지 나서서 《열하일기》 때문에 선비들의 문장이 망가졌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래서 20세기가 될 때까지 책으로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붓으로 베낀 필사본을 읽으며 재미있어 했고, 손에 꼽는 훌륭한 책이 되었다. 자유를 꿈꾸고, 유머를 사랑한 박지원은 조선 시대 최고의 문학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