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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레코드 ‘Accuracy In Sound’
LP 르네상스
80년대 초 소니와 필립스가 개발한 디지털 포맷 CD는 음반 비즈니스와 시장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단순히 소비자가 구입하는 소스의 형태와 하드웨어가 바뀐 것을 넘어 녹음 방식과 마스터링 등 모든 설비까지 변화시켰다. 변화의 바람은 순풍인 듯 2천 년대까지 이어져왔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CD가 음원으로 대체되고 MP3와 Flac같은 포맷이 대중화되면서 CD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인간은 아날로그적 존재다. CD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자 이를 대체할 피지컬 포맷을 찾았다. 그것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이미 CD 이전에 음악 포맷 시장을 지배했던 LP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시 기지개를 켜게 되었다. 이전에 이미 LP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뒷방에 처박아두었던 LP를 다시 꺼내들었고 전 세계 LP 시장이 들썩였다.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오리지널 LP 가격이 수요의 증가와 함께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한편에선 폐쇄되었던 LP 공장이 스멀스멀 부활의 조짐을 보이더니 이제 전 세계에서 LP를 찍어내고 있다.
턴테이블 세팅의 중요성
하지만 오랜만에 대중적으로 부활한 LP를 처음 접하는 세대는 LP를 구입할 줄은 알지만 제대로 재생하는데 어려움을 겪곤 한다. 애초에 음원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즐긴 세대는 LP라는 피지컬 포맷에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된 음악 감상을 위해서는 턴테이블을 구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턴테이블의 수평은 기본이며 카트리지가 수직으로 받는 압력, 즉 침압을 제조사에서 권장하는 수치에 정확히 맞추어야 한다.
이 외에도 여러 조정이 필요하다. 카트리지를 톤암 헤드셀에 올바르게 장착해야하며 카트리지에 따라 톤암의 높이 조정도 필요하다. 톤암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며 LP 소릿골을 읽어내는 방식은 태생적으로 트래킹 오차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플래터가 회전하면 톤암이 안쪽으로 힘을 받으면서 마치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진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턴테이블엔 ‘안티스케이팅’이라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이런 여러 세팅 과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초심자는 물론 LP를 오랫동안 들어온 사람들마저 턴테이블 세팅은 대충 대충 해놓고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세팅을 해놓고도 그것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확인할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테스트 레코드
이번 발매되는 테스트 레코드 ‘Accuracy In Sound’ 는 바로 턴테이블을 세팅한 이후 얼마나 정교하게 세팅된 상태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 앨범을 발매한 ‘골든노이즈’는 황금빛 잡음이라는 이름처럼 오로지 LP 사운드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국내에 LP 공장을 세운 국내 회사다. 국내 마지막 LP공장 서라벌 레코드의 공장 폐쇄를 마지막으로 지켜봤던 필자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다. 그리고 단지 LP만 제작해 납품하는 것을 넘어 LP를 올바르게 재생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돕는 테스트 레코드를 발매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이 앨범을 녹음한 스튜디오는 미국의 탈루와(Taloowa) 마스터링 스튜디오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저명한 엔지니어 크리스 머스(Chris Muth)가 담당해 턴테이블 세팅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점검할 수 있는 트랙을 담아내고 있다. 참고로 크리스 머스는 수십 년간 엔지니어로서 일 해온 베테랑으로서 특히 마스터 커팅 엔지니어로서 탁월한 실력가 중 한 명이다.
참고로 이 앨범을 제작해 내놓는 골든노이즈의 모든 LP는 그의 손에 의해 커팅 작업 후 제작되며 이번 테스트 LP도 마찬가지다. 마스터 커팅 작업은 오리지널 마스터 테잎이나 음원을 사용해 LP를 찍기 이전 마스터가 되는 동판에 소릿골을 새기는 작업으로 웬만한 실력의 엔지니어가 아니면 좋은 품질을 얻기 힘들다. 현재 실력 있는 커팅 엔지니어는 거의 장인에 가까운 사람들이며 이들의 능력에 따라 LP음질이 많은 부분 좌우된다.
우선 이번 출시되는 테스트 LP는 A, B면에 동일한 트랙을 담고 있다. 대신 A면은 33 1/3RPM이며 B면은 45RPM이다. 턴테이블마다 플래터 회전 속도를 바꿀 수 있으며 각각 정확도를 확인해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다. 또한 각 면에는 총 세 개 부문으로 턴테이블 세팅 상황을 체크해볼 수 있는 트랙을 나누어놓고 있다.
먼저 ‘그룹 #1 Notes’에서는 좌/우 채널 밸런스 및 위상 체크 그리고 더 나아가 각 대역별 주파수 반응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테스트 톤이 담겨있다. 예를 들어 1kHz 테스트 톤을 재생했을 때 좌/우 채널 음량이 동일한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만일 좌/우 채널 음량이 다를 경우 카트리지 세팅을 조정해야한다. 다름 아닌 아지무스(Azimuth) 조정이 필요한데 이는 카트리를 정면에서 봤을 때 좌/우 수평을 의미한다. 톤암에 따라 아지무스 조정이 가능한 경우 레코드 표현과 카트리지가 완벽히 수평이 되어야하며 스타일러스는 직각으로 맞닿게 세팅을 조정해야한다.
더불어 4번 트랙 같은 경우 위상을 체크할 수 있다. 우리가 듣는 음악은 모두 +와 -신호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이 바뀌었을 경우 음상이 왜곡되어 표현된다. 예를 들어 위상이 바뀌면 스피커 정 중앙에서 들려야할 보컬이 양 스피커 바깥쪽에서 들린다. 스피커 케이블의 +, -가 바뀌어 체결되어 있거나 혹은 카트리지의 +,- 리드선이 반대로 결선되어 있을 경우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 트랙을 듣고 테스트해본 후 위상이 바뀌었다고 판단되면 시스템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이 외에 5번부터 8번까지 들어보면서 특정 주파수 톤에서 피크나 디스토션이 없는지 또는 카트리지가 해당 대역을 제대로 주행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만일 주행에 문제가 있다면 카트리지 오버행 및 오프셋 등을 다시 셋업 해야한다.
다음으로 ‘그룹 #2 Tones’에서는 공진을 확인하는 테스트 톤 네 트랙 그리고 안티스케이팅을 체크하는 테스트 톤 한 트랙 담고 있다. 본 LP를 제작하는데 사용한 커터헤드는 노이만 SX-74 로서 현존 최고 수준의 커터헤드다. 약 10Hz에서 16kHz까지 매우 평탄한 주파수 반응을 갖는다. 그러나 모든 레코딩 헤드는 2차 공진 주파수를 가지며 SX-74는 약 18kHz에서 공진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 공진 지점 주변 주파수 대역에서 공진 없이 소리를 재생할 수 있어야하는데 이 테스트 LP에서는 총 네 개 주파수 테스트 톤을 제공하고 있다. 1/2 스피드로 커팅한 트랙들은 20kHz, 18kHz, 16kHz, 12.5kHz 등 총 네 개 주파수 톤으로 각각 8초간 재생된다. 공진이 생긴다면 카트리지 상태나 셋업 또는 카트리지와 톤암의 상성 등을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그 다음 트랙은 315Hz 레벨의 테스트 톤으로 약 50초간 재생된다. 이 트랙은 꽤 큰 볼륨으로 재생되는데 전체 레코드의 중간 즈음에 이 트랙을 위치시켜 카트리지가 플래터 스핀들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는지 살펴보자. 바로 톤암의 안티스케이팅이 적당한 레벨로 세팅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이다. 이 부분에서 디스토션이 일어나고 미끄러진다면 안티스케이팅 수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룹 #3 Music’이다. 수록된 트랙은 지금까지 들어본 테스트 톤이 아니라 실제 ‘음악’이다. ‘Jersey Pines’라는 이름의 이 곡은 엔지니어 크리스 무스의 친구이자 뮤지션 한스포드 로우(Hansford Rowe)의 [No Other]라는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1999년 캐나다 퀘백에서 녹음한 곡이다. 보컬과 기타 등 아주 단순한 편성의 포크 록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어두운 분위기에 블루지한 보컬이 매력적이다. 이전 트랙들을 통해 톤암과 카트리지 조정을 마치고 들으면 그동안 얼마나 음악이 왜곡되어 들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엔지니어가 만든 턴테이블과 톤암, 카트리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저가 턴테이블보다 나을 것이 없다. 또한 저렴한 턴테이블이라고 하더라도 기본기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고 더불어 정확히 세팅해서 듣는다면 LP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을 소리로 보답해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이다. 시중엔 여러 턴테이블 세팅 툴이나 카트리지 얼라인먼트가 출시되어 있다. 하지만 얼마나 정확히 세팅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본 테스트 레코드는 그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글 : 코난 이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