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대부분의 노동자에게는 ‘월급 결정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회사가 일방적으로 월급을 책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월급도 수요?공급 법칙, 득 시장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기존 경제학의 설명과는 정반대입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월급 시스템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낮은 월급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기 위해 수요?공급이라는 그럴싸한 ‘실드(shield)’를 친 셈입니다. “이 월급에도 일할 사람 널리고 널렸어”라며 잔뜩 후려친 연봉계약서를 노동자에게 들이밀기 위한 술책이라는 말이죠._29-30쪽
우리가 개미처럼 힘겹게 사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기득권층이 쳐놓은 근면성실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세뇌됐기 때문입니다. ‘착한 직장인 콤플렉스’에 빠져서 헤쳐나오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죠. 휴가를 다 누리는 것이 혹시 회사에 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내가 야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라는 고민도 바로 착한 직장인 콤플렉스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콤플렉스에 벗어나 생각하면 명확합니다. 휴가를 챙기고 야근을 거부해서 회사 업무에 지장이 생기면 회사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효율화를 앞세워 여유인력 없이 몰아친 결과이기 때문에 회사가 책임져야 합니다. 결코 노동자의 잘못이 아닙니다._81-82쪽
그런데 만약 고용 수준을 끌어올려 완전고용에 가깝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노동자들이 자본에 감사할 리 없습니다. 자본 입장에서는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부리기 힘들어지는 것이죠. 칼레츠키는 이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에서 완전고용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발달해도 태생적으로 일자리는 항상 부족하게 된다는 설명이죠. 노동자를 길들이기 위해 일부러 완전고용을 피하면서 어느 정도의 실업을 유지하려는 대기업과 정치권력의 결탁, 또 이에 동조하는 경제학자와 언론 때문에 노동자들이 아무리 눈높이를 낮춘다고 해도 일자리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_96-97쪽
하세가와 교수는 개미의 일 가운데 알에 금이 가지 않도록 돌보는 등의 ‘누군가가 항상 하지 않으면 집단 전체에 치명적 피해를 끼치는 일’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일개미 1,200마리씩 집단으로 나눠 한 달 이상 현미경으로 관찰했죠. 그 결과, 백수 개미가 있는 집단은 일하는 개미가 지쳐서 휴식을 취할 때 백수 개미가 대신 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집단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알을 돌보는 일을 돌아가며 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수 개미가 없는 집단에서는 알을 돌보던 개미가 지치면 알을 그냥 방치했습니다. 결국 치명적 피해를 입고 집단 자체가 무너졌죠. 백수 개미가 있는 집단은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아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안정적이었던 셈입니다._143쪽
청년실업률에 숨겨진 꼼수가 더 있습니다. 바로 실업률 앞에 붙은 ‘청년’이 문제인데요. 우리나라는 통계를 계산할 때 청년층을 15~29세로 잡습니다. 그런데 OECD는 청년층을 15~24세로 규정하고 있죠. 무려 5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통계청에서는 군대 때문에 우리나라 청년층 연령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설명도 좀 궁색해보입니다. 요즘은 2년 정도 군대생활을 하니까 26세로 하면 될 텐데 굳이 29세로 높여놓은 이유가 뭘까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OECD 기준대로 24세까지만 청년으로 인정할 경우 사회에 진출해 구직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드니, 그만큼 실업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연령 폭을 조금 늘렸을 뿐인데 청년실업률이 낮아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_1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