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곳 이상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자연 기계』
저자인 리처드 화이트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로 환경사 분야를 발전시키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학자다. 1995년에 차세대 학계와 예술계를 선도할 개인에게 수여되는, 흔히 ‘천재들의 상’이라고 일컬어지는 맥아서 펠로우(MacArthur fellow)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대표적인 환경사 연구자로 떠올라 큰 주목을 받았다. 수상과 동시에 출간된 이 책 『자연 기계』(The Organic Machine)는 깊이 있는 분석과 밀도 높은 서술로 환경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문, 역사, 사회과학계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자연 기계』는 환경 문제를 다학제적으로 접근한 혁신적인 사례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이 책은 자연과 인간, 환경 문제들을 다루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다학제적 사고를 교육할 목적으로 개설된 신입생 세미나 등의 필독서로 자리 잡게 되었고, 현재 약 100여 개가 넘는 미국의 주요 학교에서 이 책을 강의에 사용하고 있다.
깊이 있는 사례 연구를 통해 환경의 역사를 생생히 접근하다.―인간과 자연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환경의 역사!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컬럼비아 강이라는 하나의 소재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에 있다. 『자연 기계』는 지리학만이 아니라 생물학,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을 가로지르며 컬럼비아 강의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화이트는 컬럼비아 강을 단지 미국과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북미에서 네 번째로 큰 강이 아니라, ‘연어’와 ‘댐’이 투쟁하는 역동적인 역사의 장소로 그려낸다. 그러나 이 싸움을 단순히 환경보호(연어) 대 기술개발(댐)의 대립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 책의 독특한 관점은 연어를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이를 통해 에너지를 습득하는 에너지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서부 개척기 동안 연어는 인디언뿐만 아니라 개척자들에게도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컬럼비아 강의 연어를 통해 사람들은 에너지를 획득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당시 세계 최대의 인공 구조물이었던 그랜드쿨리 댐이 건설되면서 연어의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캐나다의 로키산맥에서부터 가파른 경사를 따라 미국 워싱턴 주를 흐르는 컬럼비아 강은 전력 에너지를 획득하기에 가장 탁월한 장소였던 것이다.
여기서 저자 화이트는 댐의 건설이 연어의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방식으로 서술하기보다는 에너지의 획득 방식의 변화로 사태를 바라본다. 연어잡이를 하던 장소에 댐이 세워지면서 사람들의 에너지원은 연어에서 댐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식량 대신 전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바뀌었는가? 화이트는 연어잡이를 통해 인간과 연어가 관계 맺던 특유의 문화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전기 문명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문명은 20세기 대공황기 실업자들을 고용했던 건설의 현장이자,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비행기와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는 곳이며, 현재는 세계 거대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의 컴퓨터 서버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공급하는 장소가 되었다. 연어를 희생한 대가로 인간은 고용, 전쟁, 컴퓨터를 얻게 된 것이다.
물론 화이트는 댐 건설을 무조건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무언가를 개발하기 위해서 기술을 사용할 때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서 고찰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화이트는 댐을 철거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주장하는 어업 이해관계자들을 비판한다. 원자력 발전은 댐을 철거하여 일시적으로 연어를 늘릴 수 있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 컬럼비아 강뿐만 아니라 자연환경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화이트는 환경을 에너지의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기존의 연구들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러한 두 접근 모두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자연 혹은 인간이라는 단일한 힘으로 환원시킨다. 그러나 화이트는 컬럼비아 강은 자연 스스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의 의도대로 변형된 것만도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탄생한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화이트는 책 속에서 컬럼비아 강과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탄생한 수많은 산물을 “자연 기계”(Organic machine)라고 부른다. 자연 기계는 강을 크게 바꾸어놓은 댐만이 아니라 인공 부화장에서 태어난 연어들, 원자력 개발로 인한 수많은 인공 방사능 물질들, 컴퓨터로 모델링한 가상의 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혼합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자연 기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는 인간과 자연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재창조해왔는지를 에너지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이트는 섣불리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의 인공물을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컬럼비아 강의 댐의 건설을 통해 전기에너지를 발전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비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비극의 기저에는 인간과 자연의 혼합물인 자연 기계가 아니라, 자연을 기계로 파악하여 이를 기계처럼 합리화할 수 있다는 인간의 무모한 시도가 있었다고 비판한다. 화이트는 컬럼비아 강의 개발과 댐의 건설은 그들이 믿었던 것처럼 환경 친화적이고 저렴한 에너지를 공급하지도 못했고,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공평한 사회를 가져오지도 못했다. 결국 강의 개발로 인한 수력발전의 이득은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대기업에게 치중되었고, 강의 개간은 소규모 농부들의 몰락과 대규모 농장의 등장을 가져왔으며, 막대한 전력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핵폭탄 개발에 사용되어 이 지역을 방사능에 오염된 곳으로 만들었다. 강의 개발은 인간 사회의 여러 모순과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심화시켰던 것이다.
화이트는 컬럼비아 강에서의 댐의 건설에 담긴 비전의 좌절과 한계에는 자연 대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컬럼비아 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며 상호작용하는 동적인 자연 기계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화이트는 컬럼비아 강의 사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인간과 자연의 혼합물인 ‘자연 기계’의 관점에서 환경 문제를 살펴보기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