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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 황인숙 산문집

황인숙 | | 2020년 10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6 리뷰 33건 | 판매지수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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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세와 지혜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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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358g | 128*188*17mm
ISBN13 9791158161200
ISBN10 115816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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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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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바닥에 가까운 삼등 선실에서 한밤에 잠에서 깨어, 바다를 보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갑판으로 통하는 계단참의 둥근 선창 너머에 검디검고 맑디맑은, 깊은 바다가 있
었다. 그 자리에 붙박여 나는 오래오래 바다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바다에 수장해달라고 하리라. 깊고 깊은, 어둡고 어두운 바다인데 거기 떠도는 내 주검을 떠올리니 한없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바로 저기가 내가 기꺼이 주검을 맡길 곳 같았다.
--- p.12 「순하고 따뜻하고 맑은, 남쪽 바다」 중에서

“선배, 1등 당첨되면 뭐할 거야?”
“응, 먼저 고양이 밥 주는 알바를 구할 거야.”
어쩌면 그는 피곤하던 차에 고양이 밥 알바 쓰기에 대한 내 평소 소망을 떠올리고 로또 생각을 해냈을지 모른다. 내가 늘어놓는 이런저런 로또 1등 당첨금 용처를 듣던 그가 섭섭한 척하며 말했다.
“나한테는?”
“음, 스쿠터 한 대 사줄게.”
--- p.23 「고양이 밥 주는 알바를 구할 거야」 중에서

나도 최후에 웃는 자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미신을 버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매번 행운을 믿고 끝까지 카드를 받으니, 행운에만 기대지 않는 사람보다 원하는 카드를 받을 확률이 높을 수밖에. 숱한 실패를 거듭하는 와중에 말이다. 스트레이트플러시는 끔찍하게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려고 포커를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 p.75 「가을 하늘 공활하고」 중에서

다리에 힘이 없어져서인가, 어찌나 자주 넘어지는지 무릎에 딱지가 가실 새 없다. 예전에도 잘 넘어지는 편이었지만 발목을 겹질러도 툴툴 털고 일어나 파스 한 장 붙이면 그만이었다. 이젠 호락호락 낫지 않으리라 싶으니 다치는 게 겁난다.
노년이라는 것은 소외나 외로움보다도, 사고에도 범죄에도 방어 능력이 없는 취약한 삶이라는 게 슬그머니 실감난다. 내게도 노년이, 노년이 있을 거라네. 그렇겠지?
--- p.82-83 「내게도 노년이, 노년이 있을 거라네」 중에서

내 삶은 확실히 길고양이들 밥을 주기 전과 후로 갈렸다. 요점만 말하자면,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뒤로 나는 사람들에게 훨씬 착해졌고, 순해졌다. 유독 못난 사람들에게 유독 해코지를 당하는 고양이들을 보호하려는 일념으로 유독 못난 인간한테 참을성은 또 얼마나 많아졌는지……. 2층 세입자는 그런 걸 알 바 없으니 움찔한 것이다.
사실 당신은 그런 태클을 내게 안 걸어도 그만일 것이다. 한편 그 어떤 말을 들어도 나는 고양이들을 굶길 자신이 없다. 그러니 그 어떤 말도 소용없다. 어쩌면 당신은 그걸 알면서도 제 스트레스나 풀어보자고 그러는 걸 테지.
--- p.146 「순해지고 강해지다」 중에서

내 나이를 추상화하자면, ‘나이’라는 것 자체가 추상인 듯도 싶지만, 겨울을 코앞에 둔 이맘때라 할 수 있겠다. 변신 욕망이나 새로운 삶에의 의욕이 샘솟는 건 축복받은 유전
자를 타고나 언제까지고 에너지 넘치는, 가령 피카소같이, 아주 드문 경우이고 대개 삶의 추위에 망연할 나이. 글쎄, 글쎄, 글쎄, 라고만 우물거릴 나이. 아니, 힘을 내보자! ‘라고만’이 아니라 ‘라고는’ 웅얼거릴 나이. ‘글쎄’는 아직 여지가 있는 감탄사 아니던가?
--- p.162 「비일상으로의 탈주」 중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삶을 무르익힌다는 것이다. 삶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깊은 삶은 기품 있는 삶이다. 삶이 깊어지면 남을 생각할 줄 알게 된다. 남을 생각할 줄 안다는 건 기품의 기본이다. 세월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인 그 기품. 이것이 아름다움 아닌가?
--- p.236-237 「깊은 삶, 기품 있는 삶」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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