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마쓰시타 고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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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마쓰시타 고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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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마디

자네가 책임자라 할지라도 각각의 전문적인 부분에 대해선 지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걸세. 그렇다면 이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그건 자네 부서의 경영에 대해 누구보다 열정을 갖는 걸세. 지식, 재능 같은 부분에서는 뒤져도 좋아. 부서 안에는 우수한 사람도 많을 테니 그들보다 뒤져도 상관없네. 하지만 ‘이 일을 해나간다’는 열의만큼은 자네가 최고여야 하네.

폭풍우를 헤쳐 나가려면 우산이나 우비 등의 준비가 필요하듯이 불황을 헤쳐나가는데도 각오와 준비가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어떻게 우산을 쓰면 비바람에 제대로 맞설 수 있을지에 대한 사전 연구도 해야한다. 선택이 후퇴가 아닌 전진인 이상, 뚫고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되어 있다.

Konosuke Matsushita,まつした こうのすけ,松下 幸之助
1894년 11월 27일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그는 1918년 마쓰시타 전기제작소를 설립하여 1973년 은퇴하기까지 ‘경영이란 끊임없는 창의적 연구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실천하였다. 그는 독특한 경영 이념과 탁월한 통찰력 및 국제감각으로 마쓰시타 전기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내셔널과 파나소닉 등의 상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1920년 세계 공황 때는 인력을 감축하기보다 사업부제를 도입하고 주 5일제를 실시하는 등 현대 기업들보다 훨씬 앞선 경영 방식을 실천했다.

마쓰시타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하고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역경을 기회로 만들며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가 되었다. 그는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꼬마 점원이 되었지만 그 덕에 어렸을 때부터 상인의 몸가짐을 익혔고, 세상의 쓴맛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기 때문에 남에게 일을 부탁하는 법을 배웠고, 학력이 모자랐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했으며, 몇 번인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을 통해 강한 운을 타고났음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마쓰시타는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국가의 장래에까지 정성을 쏟았다. 1946년에는 PHP연구소를 창설하여 풍요로운 삶을 위한 PHP(Peace, Happiness, Prosperity)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일본 정재계 최고 인재를 길러내는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을 설립하여 인재양성에 이바지했다.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하여 수많은 학술단체와 사회복지재단에 재산을 기부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1989년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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