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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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전봉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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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10월 3일 평안남도 안주군 동면 명학리 10번지에서 부친 전형순(全亨淳), 모친 최성준(崔成俊)의 막내(7남)로 태어났다. 이후 관리인 부친을 따라 도내의 여러 군을 전전하면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냄. 당시 심상소학교(현재의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소년소설 등 을 탐독하다가 중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하기도 했다. 1945년 평양 숭인중학 졸업하고, 1946년 해방 이듬해가 되는 이해 여름 바다로 38선을 넘어 남으로 왔다. 1950년 『문예』지에서 1월호에 「원」「사월」(서정주 천)이, 5월호에 「축도」(김영랑 천)가 추천을 받아 등단한 뒤, 잠시 경기도 양주군 갈매국민학교에서 준교사를 지냈다. 6·25전쟁이 일 어남으로 징집되어 군에 입대하였으나, 위생 병으로 복무하던 중 중공군 총공격 때 중동부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하여 이후 대 구의 피난민수용소에서 지냈다. 이 무렵 김종삼, 이철범, 최계락 등과 사귀었으며 또한 음악다실 ‘르네상스’의 레코드를 황운헌과 함께 정리한 인연으로 이곳에 상당 기간 기식했다.

1953년 환도와 더불어 서울에 올라와 출판사 ‘희망사’에 취직함으로써 출판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뒤 ‘신세계’를 거쳐 ‘삼중당’ ‘태평양화장품’ ‘여상’ 등에서 일하였다. 195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에 참여하고 동회의 기관지 『현대시』 창간호의 편집 실무를 담당하였으며 김광림, 김종삼과 함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자유세계사)를 펴냈다. 1962년 동인회 『현대시』에 참가하고 동명의 동인지 편집을 맡고, 1964년 『문학춘추』(삼중당)지가 창간되면서 편집 책임을 맡으며 박재삼과 함께 일하였으며, 1969년 『현대시학』지를 창간하여 주간직을 역임했다. 1987년 12월31일 서울대학병원에 지병인 당뇨가 악화되어 입원, 1988년 계속 발표하던 연작시 「6·25」를 끝맺지 못하고 6월 13일 작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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