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저 : 지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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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명:우재석
2004년 51세의 나이에 출가했다. 그의 출가 동기는 우연히 듣게된 뉴스 보도 때문이다. 경상북도 도의원 임기를 마치고 17대 국회의원 출마 준비를 하던 2003년 “45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한다.”라는 보도를 듣게 된 것. 그 순간 ‘단 한 명의 자살자라도 구하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고, 그 길로 출가를 결심했다.
“세속에 살면서 묵언마을을 운영할 수도 있었다. 집을 떠나 머리를 깎은 것은 세속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찾아온 사람들에게 마음의 힘을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속세인보다 종교인으로서 다가갈 때 그들이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출가 동기를 이야기 한다.
속세에서 그의 이름은 우재석. 경상북도 안동 갈라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까지 이 시골에 살았지만 답답함을 느껴 무작정 도시로 나왔다.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볼펜 장사 등을 하면서 하루 하루를 연명하였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그의 인생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80년대 초 일어난 소 파동 때문이다. 당시 그는 안동축협에 근무했다. 소파동으로 120여 만 원에 거래되던 소 값이 12만 원으로 폭락하는 것을 보고 ‘이때야 말로 소를 키울 때’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나서서 소 백 여 마리를 키웠고, 이를 토대로 큰 돈을 벌기도 했다. 최초로 한우를 몸무게 재어서 판매했으며, 최초 생산자인 농부가 직판장을 개점해 선보였다. 꽃등심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고 또 쓰레기통에 들어가던 차돌박이를 여러분 밥상에 올렸다. 그러나 출가 이후 단 한 푼의 보시도 받지 않고 묵언마을을 지었고, 지금은 이곳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세속에 살면서 묵언마을을 운영할 수도 있었다. 집을 떠나 머리를 깎은 것은 세속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찾아온 사람들에게 마음의 힘을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속세인보다 종교인으로서 다가갈 때 그들이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출가 동기를 이야기 한다.
속세에서 그의 이름은 우재석. 경상북도 안동 갈라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까지 이 시골에 살았지만 답답함을 느껴 무작정 도시로 나왔다.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볼펜 장사 등을 하면서 하루 하루를 연명하였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그의 인생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80년대 초 일어난 소 파동 때문이다. 당시 그는 안동축협에 근무했다. 소파동으로 120여 만 원에 거래되던 소 값이 12만 원으로 폭락하는 것을 보고 ‘이때야 말로 소를 키울 때’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나서서 소 백 여 마리를 키웠고, 이를 토대로 큰 돈을 벌기도 했다. 최초로 한우를 몸무게 재어서 판매했으며, 최초 생산자인 농부가 직판장을 개점해 선보였다. 꽃등심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고 또 쓰레기통에 들어가던 차돌박이를 여러분 밥상에 올렸다. 그러나 출가 이후 단 한 푼의 보시도 받지 않고 묵언마을을 지었고, 지금은 이곳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