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마디
비단 용산의 참사만이 아닐 것입니다. 15년 전에도,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들은 추방의 언덕, 생존의 망루 위로 오르고 또 오릅니다. 수원, 성남, 서울 곳곳에서 도시의 이름, 인간의 이름으로 어떤 이들은 살아남거나 또 어떤 이들은 짓밟히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저는 알고 싶습니다. 과연 누가 제 손에 칼을 쥐어 줬던 걸까요. 그 칼로 정말 나무 십자가를 진 남자를 찔렀던 걸까요. 그는 어째서 피투성이가 되어 언덕 위에 오른 걸까요. 왜 그 누군가들은 그를 자신들의 도시에서 내쫓았던 걸까요. 그 누군가들은 누구인가요. 가해자와 피해자, 승자와 패자, 가진 자와 잃은 자. 여전히 우리는 이와 같은 도식적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누가 승자일까요. 이런 구별을 끊임없이 책동하는 이들이 승자일까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야말로 바로 그 꿈을 꾸려는 자들과 꿈을 빼앗으려는 세력 간의 한 판 싸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싸움을 폐신집합소라는 아수라장에서 무력 소년이 생존해나가는 자못 ‘거창한 이야기’로 꾸미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변두리 하위 장르라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를 격분케 한 힘의 실체를 일깨워줄 수 있는 일말의 화두는 남겨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괴상망측한 작품을 쓴 저의 서글픈 탄식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조차 기회와 역전의 가능성이 주어진 각본대로 정해져 있다면, 그래서 패배가 결정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 판을 아예 둘러엎고 우리들만의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할까요. 아님 그 판에 주어진 각본대로 적당히 순응하는 착한 선수가 되는 게 옳을까요? 이것도 저것도 아님 그 판에 머물러서 주어진 각본과 역할을 걷어치우고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버텨내는 ‘불량주전’으로 살아남는 게 좋을까요.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열외인종 잔혹사』를 비롯해 장편소설 『메이드 인 강남』, 『반인간선언』, 『크리스마스 캐럴』, 『기억의 문』, 『너머의 세상』, 『광신자들』, 『망루』, 『무력소년 생존기』, 청소년소설 『한 개 모자란 키스』, 『주유천하 탐정기』, 『아지트』, 에세이 『황홀하거나 불량하거나』, 청소년 인터뷰집 『이 괴물 희생자』,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평론집 『성역과 바벨』, 번역서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