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카미유 클로델

이전

  저 : 카미유 클로델
관심작가 알림신청
Camille Claudel
프랑스의 조각가.

1864년 12월 8일, 프랑스 북동부 페르-앙-타르드누아에서 루이-프로스페르 클로델과 루이즈-아타나이즈 세르보의 둘째아이로 태어났다. 가정교사 콜랭과의 인연으로 조각가 알프레드 부셰를 만나 열세 살에 처음으로 조각의 기초를 익힌다. 이 시절 〈다비드와 골리앗〉 〈비스마르크〉 〈나폴레옹〉 등 신화나 역사 속 인물들의 찰흙 소조 작품들을 만든다. 열여덟 살이던 1881년, 남동생을 모델로 본격적인 첫 작품 〈열세 살의 폴 클로델〉 청동 흉상을 만든다.

1883년 오귀스트 로댕을 두 번째 스승으로 맞아, 1884년 제작 조수 자격으로 로댕의 아틀리에에 들어간다. 이 무렵 〈늙은 엘렌〉(1882) 〈나의 남동생〉(1884) 〈지강티〉(1885) 등의 작품이 탄생한다. 로댕의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 작품의 제작에 참여하고 모델 역할도 했으며, 자신의 작품 역시 왕성하게 창조해나간다.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함께하며 못지않은 열정으로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로댕은 오랜 동반자인 로즈 뵈레의 손을 놓지 않았고, 그 때문에 결별과 만남을 반복하던 카미유는 1898년경 그와 완전히 관계를 끊고 튀렌 거리 63번지에 아틀리에를 빌린다. 이때를 전후로 〈클로토〉 〈중년〉 〈페르세우스〉 〈깊은 생각〉 〈난롯가에서의 꿈〉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샤쿤탈라〉의 대리석 버전) 〈상처 입은 니오비드〉 등을 완성한다.

활발한 창작활동 속에서도 늘 재정적 지원에 목말라했고, 로댕에 대한 증오와 배신감에 시달렸으며,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지 못했다는 불안감으로 점차 불안정한 정서 상태에 빠져든다. 급기야 1913년 3월, 가족의 요청으로 빌-에브라르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카미유 클로델은, 이듬해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으로 옮겨진 뒤 1943년 10월 19일 삶을 마감하기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카미유 클로델의 대표 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