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 윤응렬
관심작가 알림신청
1927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3중을 거쳐 일본 육군소년비행학교를 졸업했다. 전투조종사로 남방전선의 자바에 파견되었다가 가미가제 특공대원으로 차출되어 일본 본토로 이동하던 중, 해방을 만나 목숨을 건졌다.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나 고향인 평양으로 갔다가 북한공군에 입대했다. 평양정치학원에서 사상교육을 받던 중 사상적 갈등으로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와 육군사관학교(7기)와 단국대학을 졸업했다. 6·25전쟁 직전에는 옹진전투, 지리산 및 영남지구 공비토벌에 조종사로 참여했다. 전쟁 중에는 F-51 무스탕 전투기를 몰고 승호리철교폭파, 351고지폭격을 포함한 107회 적진출격의 공로로 을지무공훈장, 미국수훈항공십자훈장, 미국비행훈장 등을 받았다.
공군소장으로 공군사관학교 교장과 공군작전사령관을 역임했고, 군을 떠난 다음에는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차관급)과 코리아타코마 사장을 지냈다. 그리고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군수산업체를 상대로 최신무기를 도입하는 사업에 종사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거대기업 제네럴 다이내믹스를 상대로 8년 간의 지루한 소송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강인함을 보였다. 현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거주하고 있다.
공군소장으로 공군사관학교 교장과 공군작전사령관을 역임했고, 군을 떠난 다음에는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차관급)과 코리아타코마 사장을 지냈다. 그리고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군수산업체를 상대로 최신무기를 도입하는 사업에 종사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거대기업 제네럴 다이내믹스를 상대로 8년 간의 지루한 소송에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는 강인함을 보였다. 현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