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강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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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강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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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생으로 전쟁과 가난을 혹독히 겪었던 그는 세브란스 (현 연세대) 의대에 다닐 때부터 무의촌 봉사에 힘을 기울였다. 수련의 과정을 거친 후, 자발적으로 당시 무의촌이나 다름없었던 강원도 간성의 허름한 정미소를 개조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1970 년 말에 속초에 병원을 개업하고, 10여 년간 진료를 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올 만큼 유능한 외과의사로 살던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교통사고를 비롯해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이전에 품었던 의료 선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다시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성업중인 병원을 내려놓고 선교사가 되겠다는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가족 과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내 삶의 꼬리나 몸통이 아닌,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그리고 1982년 49세 되던 해, 고(故) 한경직 목사님의 권면으로 당시 최빈국이라 할 만큼 의료나 모든 면이 낙후되어 있던 네팔 히말라야로 선교의 첫발을 내딛는다. 그는 병원에 오는 환자들뿐 아니라 중병에 걸리거나 다쳐도 병원에 올 수 없는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 간호사 출신인 부인 최화순 권사와 함께 이동진료 사역을 했다. 그러는 중에 의사로서의 한계를 절감하는 한편,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크신 은혜에 감격하여 환자의 빈부귀천에 상관치 않고 진심으로 섬기게 되었다. 자신의 피를 수혈하여 중환자를 살려내고, 환자가 퇴원하면 식료품을 사들고 집에까지 가서 섬기는 그를 가리켜 현지인들은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2010년, 그는 77세의 고령에도‘하나님이 부르실 그날까지 은퇴는 없다’는 마음으로 네팔로 3차 의료 선교를 떠나 현재 사역 중이다. 네팔(10년)과 방글라데시(4년), 스리랑카(4년)와 에티오피아(7년) 그리고 국내 사역(3년)까지 약 30년간 삶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사이 그의 머리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처럼 희어졌지만, 그의 가슴은 여전히 구령(??의 열정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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