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윌리 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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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윌리 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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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마디

보통 나는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기다린다. 실재가 더 생생한 진실 속에 드러나도록. 그것은 시점의 쾌락이다.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일어나지 않은 것을,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 일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Willy Ronis
‘휴머니스트 사진작가’라 불린 군단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의 아버지는 스튜디오에서 사진 보정 작업을 하다가 나중에 자기 스튜디오를 차렸고, 윌리는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음악 작곡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군복무 후 제대했을 때 아버지가 병이 들자 아버지의 사진관 일을 돕게 된다. 그리고 손에 카메라 하나 들고 파리 거리 곳곳을 누비며 사진작가로서 그 기나긴 이력을 시작한다. 앤설 애덤스(Ansel Adams)와 앨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사진을 접하서 사진의 풍부한 잠재력에 눈을 뜨게 되는데, 1936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 사진관을 정리하고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20세기 그 모든 사건 현장과 이미지와 풍경 등을 ‘르포르타주’한다. 이 무렵에 훗날 매그넘을 창시한 로버트 카파(Robert Capa), 데이비드 시무어(David Seymour)와 만났고,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 브라사이(Brassai)와 휴머니스트 사진 에이전시인 라포(Rapho)에서 함께 일했다.

1934년 노동자 시위를 시작으로 1938년 시트로앵 자벨 자동차 회사 파업을 담은 연작 사진을 찍으면서 사회 현실에 눈을 뜬다. 제2차 세계대전 전쟁포로 귀환 등의 장면을 비롯해, 1951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진 ‘규소폐증에 걸린 광부’등을 찍었다. 1953년부터 프랑스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시사 화보잡지 <라이프>의 사진기자가 되었으며, 195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메달상을 받았다. 1979년 작품집 『사진』(La Photographie)으로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상했고, 『우연의 실』(Sur le fil du hasard)로 나다르 상을 수상했다. 1993년부터 영국 ‘로열 포토그래픽 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되었으며, 2008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라포 에이전시와 문화유산부의 기획으로 그의 작품은 프랑스는 물론 해외 각국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 및 회고전을 가졌다. 20세기를 통째로 살고, 온전히 경험하고, 그 전부를 기록했던 그는 2009년 9월 11일 9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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