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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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사 : 이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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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상의 호는 노산으로 1903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 1925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까지 와세다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구학문과 신학문을 두루 거쳤기 때문에 이후 그는 전통 시가 양식인 시조를 쓰고 연구하면서도 정형과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고 인식의 다양함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으며, 실제로 문장력이 뛰어나서 당대 여러 문사와 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흔히 대중들에게 시조 시인으로 기억되는 노산은 시조뿐만 아니라 시·기행·사화·전기·수필·평론·논문처럼 소설을 뺀 거의 모든 형식의 글을 썼고 그 수준 또한 높았다. 공식 문단 활동은 1924년부터 ≪조선문단≫에 여러 갈래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할 때부터지만 스무 살 때부터 이미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 <꿈 깬 뒤>와 같은 작품을 써 왔다. 육당 최남선과 가람 이병기와 함께 현대 시조의 개척자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가고파>, <봄처녀>, <성불사의 밤>, <고향 생각>, <사랑> 같은 작품들을 비롯해 수많은 시조들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38년 일제 탄압이 극심해지자 붓을 꺾고 유랑 길에 올라 전남 백운사에 은거하기도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함남 흥원 경찰서와 함흥 형무소에 구금되었다. 해방을 맞이하고 나서 호남신문사를 창립해 사장을 지내고 국학 도서 출판관 사장 또한 지냈다. 그 뒤로 전남 광주 호남신문사 사장, 대구 청구대 교수, 이충무공기념사업회 회장, 민족문화협회 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재단법인 한글학회 이사, 한국산악협회 회장, 독립원동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영남대 교수, 한글학회 회관 건립 위원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종신 명예회장, 예술원 종신 회원, 국정자문위원, 통일촉진회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1982년 서울에서 사망했다.

시조집에는 ≪노산시조집≫(1932), ≪조국 강산≫(1954), ≪노산시조선집≫(1958), ≪푸른 하늘의 뜻은≫(1970), ≪기원≫(1982)이 있으며, 저서에 ≪묘향산유기≫(1931), ≪노방초≫(1935), ≪무상≫(1935), ≪탐라 기행 한라산≫(1937), ≪노산 문선≫(1942), ≪이충무공 일대기≫(1946), ≪대도론≫(1947), ≪조선 사화집≫(1949), ≪민족의 맥박≫(1951), ≪노변필담≫(1953), ≪피어린 육백리≫(1962), ≪노산 문학선≫(196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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