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석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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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김석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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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오사카(大板)에서 태어난 김석범은 평생에 걸쳐 ‘제주 4·3 사건’에 관련된 작품 집필에 매달렸다. 그는 18세인 1943년에 제주도에서 일 년여 머물며 의기투합한 청년들과 조선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1945년 3월에는 중국으로 탈출해서 임수정부를 찾아간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오사카로 돌아가야 했다. 해방 후인 1946년에도 그는 서울로 돌아와 국학자 정인보 선생이 설립한 국학전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오사카로 밀항한 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김석범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주도에서 밀항해 온 친척으로부터 제주 민중들의 참혹한 학살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이후로 그는 야만적인 권력에 의해 자행된 ‘제주 4·3 사건’의 문학적 형상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나이 32세 때인 1957년에 발표한 ?간수 박 서방(看守朴書房)?과 ?까마귀의 죽음(鴉の死)?에서 시작해, ?관덕정(觀德亭)?(1961), ?만덕유령기담(万德幽靈奇譚)?(1970) 과 ??月?(2001)에 이르기까지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김석범은 1988년 다시 고국을 찾을 때까지 정권의 회유와 압박으로 많은 괴로움과 좌절을 겪어야 했으며, 제주 4·3 평화상 1회 수상자가 되었을 때도 이념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조국의 진정한 통일과 미래를 위한 망명 문학이 부정되는 현실에 맞서 자신의 문학은 ‘망명문학’이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만약 그가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화산도?는 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문학계에서도 김석범은 일본어로부터 자유와 해방이라는 고뇌를 안고 작가 활동을 해왔다. 일본어를 절대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보편성에 근거한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면서, 조선인 작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는 길을 지향했다. ?화산도?로 1983년 아사히신문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상과 1998년 마이니치(每日) 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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