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Stephen Fr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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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Stephen Fr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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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프리어스
영국 레스터 출신으로 캠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런던 로얄 코트 씨어터에서 감독 린지 앤더슨과 배우 알버트 피니의 조수로 일한 뒤 카렐 리즈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

프리어스는 직접 주연까지 자청한 알버트 피니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미국 영화의 형사물을 풍자한 <검슈>(71)를 만들며 감독 데뷔하지만 커다란 빛을 보지는 못했다. 이후 84년 두번째 영화 <히트>를 완성할 때까지 프리어스 감독은 13년간 텔레비전 드라마 연출을 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84년 두번째 영화 <히트>에서 갱스터 스릴러 장르를 인용한 냉소적인 사회비판으로 주목을 끌며 스크린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86년 채널 4의 제작지원금 80만 달러로 완성한 16미리 영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스티븐 프리어즈를 일약 영국 뉴 웨이브 감독의 선두주자로 뛰어오르게 하였다. 파키스탄 이민 2세인 작가 하니프 쿠레이쉬와 공동작업하며 인종과 노동계급의 현실을 포착하여 80년대 대처리즘이 지배하는 보수우경화한 영국 사회의 중심부를 뚫고 들어가는 그의 작업은 이후 완성한 <새미와 로지 잠자리에 들다>(87)에서 좀 더 심화된다. 파키스탄 출신의 지식인 새미와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인 그의 아내 로지, 그들을 둘러싼 흑인 등, 런던 빈민가의 자유주의적 타인종 커플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새미와 로지 잠자리에 들다>는 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가장 신랄한 풍자극으로 평가받았으며 동세대 영국 감독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가장 사회비판적이며, 가장 개인적인 감독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알란 베넷의 시나리오로 완성한 <귀를 쫑긋 세워라> (87)에서 극작가 조 오튼과 연인이자 결국 그를 살해하는 케네스 할리웰에 대한 호모 섹슈얼 러브스토리로 아웃사이더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를 계속해나간 스티븐 프리어즈는 88년 그의 첫번째 헐리우드 진출작 <위험한 관계>를 완성한다. 드 라크로와의 18세기 소설을 바탕으로 한 크리스토퍼 햄튼의 연극을 영화로 만든 <위험한 관계>에서 스티븐 프리어즈는 앙시엥 레짐 시대를 배경으로 부르주아 문화의 허위의식과 가장을 건축적인 미장센 속에서 풍자문학의 양식으로 그려내며 같은 원작으로 같은 해에 만들어진 밀로스 포만의 <발몽>을 훨씬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두번째 영화이며, 마틴 스콜세지가 제작을 맡은 <그리프터스>(90)에서 스티븐 프리어즈는 데뷰작 <검슈> 이래 두번째의 필름 느와르를 완성한다. 짐 톰슨 원작의 음산한 남부 캘리포니아의 가족이야기 <그리프터스>는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가장 통렬하고 비판적인 텍스트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 내에서의 미디어 비판을 수행한 <리틀 빅 히어로>는 여전히 냉소적인 유머를 띄우고 있으나 절반의 실패로 끝났으며, 93년 영국으로 돌아가 BBC 프로덕션에서 로디 도일의 원작으로 한 아일랜드 노동자 계급 가족에 대한 3부작 중 첫번째 이야기로 <스내퍼>를 완성한다.

96년 다시 헐리우드 자본과 손잡고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자 한 <메리 라일리>를 그 자신의 시스템을 이끌고 완성하나 헐리우드 장르 영화와 영국 영화의 전통 사이에 선 갈등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직후 BBC의 지원으로 로디 도일의 3부작 중 세번째 이야기 <화물운반차>를 완성한 그는 지금도 여전히 헐리우드와 유럽 작가주의 사이의 경계를 오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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