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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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김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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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 졸업반 마칠 때까지 통행금지 시간이 넘도록 집안일을 돕다가 용케 그리고 우연히 대학에 입학했다.
정치 비슷한 바보 놀음에 등록금을 만들지 못했다. 휴학에 들어갔다.
국군통합병원 ‘군의관 소령님까지 달려들어 정밀 검사’를 했다. ‘너 같은 눈으론 돈 써도 군대 못 간다’던 그 소령님의 판정을, 몇 번 쓴 글들 때문이었는지, 제3공화국은 신체검사 기록까지 바꾸어버렸다.
고시 1차 발표 결과를 서울의 친구에게서 연락 받은 지 며칠 지난 어느 날, 집을 찾아온 방위병 아저씨로부터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현역 입영 명령서’라는 서류를 받았다. 알아보니 ‘입대 영장’이란다. 입대 날까지 보름의 여유가 있었지만, 그 보름으로는 병무청에서 신체검사 결과가 법에 따라 적법하게 정정되었다는 확인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밤 열차는 절대 타지 말라’던 입대 선배들의 말이 그대로 나의 일이 되고 말았다. 훈련을 마친 후, 그 많은 후방 가는 관광버스를 ‘놓치고’, 헌병들의 개머리판에 두들겨 맞으며 밤새 밤 열차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백골사단이 걸리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보충대 선배의 말이 또 나의 일이 되고 말았다. 군용 트럭을 타고, 또 군용 트럭을 타고, 다시 군용 트럭을 바꿔 타고, 백골 3사단 소총 소대 소총수로 떨어졌다.
‘아직 어리던’ 사랑하는 누나의 안쓰러운 손길로 복학이 가능했다. 고시 재도전은 언감생심, ‘4학년 2학기에 월급 제일 많이 주는 회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안정, 여유, 넉넉… 그러나 마흔이 가까워질 무렵, 어느 날 밤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사표를 제출했다.

김태근 목사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1971년)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소망교회에서 부목사를 역임했으며, 1998년에 분당소망교회를 개척하여 현재 담임목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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