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유리 올레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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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유리 올레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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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주요 소설가이자 단편 작가, 희곡 작가, 시인, 수필가, 기자, 번역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1899년 엘리사베트그라드(우크라이나의 키로보그라드)의 몰락한 폴란드계 귀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데사의 리셸렙스카야 김나지움 시기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노보로시스크 대학에서 2년간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그는 오데사 문학 토론 그룹에도 참여했다. 이 그룹에서 올레샤는 젊은 작가들인 일리야 일프, 발렌틴 카타예프, 예두아르트 바그리츠키 등과 교우 관계를 맺었다.

1919년 그는 후에 폴란드로 떠난 부모님의 군주제 지지의 동정을 ‘붉은 군대’에 자원함으로써 거부했다. 올레샤는 처음에 하리코프로 파송되어 선전·선동 기자로 활동했고, 오데사문학그룹 ‘녹색 등’에서 활동하며 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던 그는 1922년 모스크바로 이주한 뒤 철도노동자신문 『경적』에 ‘주빌로(조각칼)’라는 필명으로 풍자기사를 써 인기를 끌었다.

1927년 소설 「질투」를 발표하며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작품은 새로운 소비에트 질서 속에서 구세계 가치의 공존을 모색하는 동시대 인텔리겐치아의 비극을 다양한 비유와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올레샤는 곧 이 소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각색했다.

그는 1930년에 『세 뚱보』를 갖고 똑같은 작업을 했다. 이 작품들로 인해 올레샤는 소비에트 일류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세 뚱보』는 여러 사람에 의해 오페라, 라디오, 영화(두 차례) 등으로 각색되었다. 그는 1932년까지 몇몇 훌륭한 단편들을 집필했다. 이 작품들은 그의 가장 뛰어난 걸작들로 간주되는데, 『버찌씨』. 『체인』, 『사랑』, 『리옴파』, 그의 유일한 원작 희곡인 「자산 목록」(1931) 등이 그것이다.

1920-1930년대 초에 씌어진 그의 단편들에서는 사물에 대한 예리하고 비범한 관찰과 직유와 은유의 눈부신 향연, 독창적인 상상력의 역동적 울림을 확인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스탈린주의가 팽배해지며 그는 침묵을 강요당했고, ‘메타포의 왕’으로 이름을 떨치던 올레샤는 잡문에만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사후 출간된, 일기와 자전적 기록인 『매일 한 줄씩』은 올레샤 말년의 빛나는 문학적 상상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스탈린주의의 어두운 시절 동안 올레샤는 거의 침묵했고 생존을 위해서 번역과 약간의 이류급 이야기, 영화 시나리오 등을 집필했다. 그는 무일푼이었으나 성공한 소비에트 작가들은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알았고 그를 접대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말년에 지나친 음주로 건강을 해친 결과 올레샤는 1960년 5월 10일 심장 발작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마지막 장편 반(半)자서적 작품인 『매일 한 줄씩』(1965)은 그가 1960년 죽을 때까지 작업했던 방대하고 다양한 단편(斷編)적 글들을 편집·발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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