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모딜리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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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 모딜리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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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igliani
유대계 명문의 아들로 태어나,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미술학교에 다닌 뒤, 1906년 이후는 파리에서 살았다. 1908년 처음으로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고, 다음해, 조각자 카마이노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고 1909년 브랑쿠시의 권유로 조각제작을 시도하여, 니그로조각과 브랑수시식의 사실을 떠난 간결한 조형양식을 흡수 발전시킨 독자적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장티푸스 폐렴등 안아파본 병이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해서 1913년부턴 회화에만 전념을 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늘 조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한다. 어쨋건 모딜리아니는 초기회화에서 세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07년 있었던 세잔의 회고전에서 본 세잔의 표현주의는 그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주로 초상화만을 그렸고 보통 주위의 이웃이나 지인, 창녀들을 모델로 그렸다 1910년 「첼로를 켜는 사람」등 6점의 유화를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으며, 1913년 퐁마르나스로 옮겨 키슬링,수틴등과 사귀었다. 에콜 드 파리의 뛰어난 작가로서 제1차 세계대전중에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탁월한 데생력을 반영하는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의 구성, 미묘한 색조와 중후한 마티에르 등이 특색이다. 1917년, 베르트 배유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초기에는 풍경화도
몇 점 그렸으나, 파리로 온 후부터는 초상화와 누드화가 대부분이다. 특히 긴 목을 가진 단순화된 형태의 여인상은 독특하여, 무한한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품고있으며, 보티첼리나 베네치아파의 작풍과도 이어지는 섬세하고 우아한 이탈리아적 개성을 보여준다. 시인적 자질이 풍부한 다감한 미남자로 일화가 많으며,
만년에 잔느 에뷔테른과의 사이에 딸을 두었다. 생전에는 폴 기욤, 즈보로브스키 등 일부 화상이 원조했을 뿐,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가난 속에 과음과 방랑을 일삼다가 1920년 초파리의 자선병원에서 짧은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