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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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정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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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자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전남지역 민청학련 사건의 주역이었던 김상윤이 1977년 광주에 세운 ‘녹두서점’에 고교 동창의 소개로 당시 금서였던 리영희 교수의 『8억인과의 대화』를 사러 갔다가 그 인연으로 1978년 11월 김상윤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 후 서점은 김상윤과 정현애 그리고 윤상원이 맡아 운영했다. 1980년 5월 17일 자정 직전, 남편 김상윤이 예비검속을 위해 권총을 들고 들이닥친 합동수사본부 요원들에 의해 불법으로 체포·연행되었다. 다음 날인 5월 18일 새벽부터, 신혼집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정현애의 ‘녹두서점’은 지역사회와 전국에 긴박한 광주의 상황을 전파하는 상황실이자 항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5·18 기간 동안 중학교 역사교사였던 정현애는 학교로 출근하지 못하고 서점을 지키면서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항쟁 직후, 상무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고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은 물론이고 동지, 시민들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일이었다. 이후 기소유예(2023년 4월, 5·18 당시 받았 던 ‘기소유예’는 결국 ‘죄가 성립되지 않음’이란 판결로 결론 났다)로 석방되고 나서 녹두서점으로 모여드는 구속자 가족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기 위해 5·18구속자석방운동에 전념 하였고 진실규명을 위해 오래도록 애썼다. 당시 직장이었던 학교에서는 직위 해제되었다. 후에 다시 복직되었으나 1989년 전교조 파동 때 다시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되었다. 2002년 제4대 광주광역시의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저지운동에 동참하며 사퇴하였다. 2010년 다시 제6대 광주광역시의원을 역임하였다. 이후에도 5·18 진상규명, 지역교육문제, 여성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금은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전남 담양군 수북면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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