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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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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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자 정치가이며 풍류객이었던 송강 정철(1536~1593)은 현실과 자연을 왕래하면서 영욕을 반복하던 조선조 사대부 지식인의 전형적인 일생을 보여주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돈녕부 판관 정유침이었다. 큰누이(仁宗의 貴人), 둘째 누이(桂林君의 부인) 덕에 어려서부터 궁중 출입이 잦았고, 후일 명종이 된 경원대군(慶源大君)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열 살 때 둘째 매형인 계림군이 을사사화에 연루됨으로써 그의 집안 역시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게 되었다. 큰형은 유배 도중 죽었고 그 역시 전라도 담양 창평에 정착하기까지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로 돌아다녀야 했다. 창평에 거주하는 10녀년 간 임억령(林億齡) · 김인후(金麟厚) · 송순(宋純) · 기대승(奇大升) 등을 만나 시문(詩文)과 학문을배웠다. 26세 되던 1561년에 진사시에 1등으로 급제하고 다음 해 별시 문과에 장원을 한 다음 사헌부 지평을 시작으로여러 벼슬을 지냈다. 벼슬을 중심으로 한 그의 일생은 제1기(27세~40세) : 사헌부 지평~암행어사, 제2기(43세~44세) : 장악원정~승지, 제3기(45세~50세) : 강원도 관찰사~대사헌, 제4기(54세~56세) : 우의정ㆍ죄의정, 제5기(57세~58세) : 체찰사 및 사은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정치에 참여한 기간을 이와 같이 여러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벼슬살이가 순탄치 않았음을 입증하는 일이다. 그는 반대파인 동인의 탄핵과 모함을 심하게 받았으나 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로 우의정에 발탁되면서 제4기의 벼슬길을 걷게 되었고, 이 시기에 그는 서인의 영수로서 동인들을 철저히 핍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서인의 영수로서 동인들을 철저히 핍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당쟁의 와중에서 사은사의 자격으로 명나라에 다녀 온 후 결국 치사(致仕)하게 되었고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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