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존 웹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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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존 웹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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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Webster
1578년에서 1579년 사이에 태어나 1627에서 1634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그가 살았던 런던 교구(St. Sepulchre without Newgate)에서 보관하던 기록이 1666년 있었던 런던 대화재 때 소실되어서 이 기록조차 불확실하다. 스미스필드(Smithfield) 근처 카우 레인(Cow Lane)과 호지어 레인(Hosier Lane)이 만나는 모퉁이에서 마차와 수레 제조업에 종사하던 존 웹스터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브래드브룩(M.C. Bradbrook)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인문주의 문법학교 중 하나였던 ‘The Merchant Taylors' School’에서 수학했다. 웹스터는 자코비안 시대(Jacobean period)를 대표하는 극작가다. 이 때문에 이 시기 대중 극장의 소위 ‘퇴보’를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작가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웹스터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르네상스 극작가다. 특히 <하얀 악마>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현대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본격적으로 전문 연극인들이 관례로 공연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혁신의 본보기이자 현대성을 반영하는 작가로 재발견된 것이다. 한때 존 웹스터는 근세 초기 영국의 드라마 작가 중에서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인물로 평가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의 비극에 담긴 중요한 주제들, 즉 정의의 불확실성, 여성의 성에 대한 사회적 규제, 폭정의 공포, 사회적 지위를 잃고 되찾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 타협과 같은 주제 때문에 그를 사회·정치적 현상에 대한 비평가로 부각하기도 한다. 웹스터의 작품들은 19세기에 고딕 소설과 ‘어두운 낭만주의’(Dark Romanticism) 형식의 선구로서 재발견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 웹스터는 지적인 상념과 소외감의 화신이 되었다. 특히 20세기 중반에 그의 명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이는 두 번의 세계 대전과 유대인 대학살의 악몽이 그가 제시한 매우 음울한 시선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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