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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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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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zabeth Barrett Browning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의 시인으로, 생존하던 기간 동안 영국과 미국에서 대중적인 인물이었다. 살아생전 영국의 가장 유명한 여류 시인이었으나 가족도 부와 영예도 버리고 여섯 살 연하의 무명 시인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여인이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시한부나 다름없는 인생을 살았지만 사랑의 힘으로 15년간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아들까지 낳았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영국 문학사상 최고의 러브스토리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06년 3월 6일 영국의 더럼에서 아버지 에드워드 몰턴 배럿(Edward Moulton Barrett)과 어머니 메리 그레이엄 클라크(Mary Graham Clark) 사이에서 열두 명의 형제자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남동생들의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존 밀턴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읽었으며, 곧 고전문학과 형이상학에 지적으로 심취하게 되었다. 여섯 살인가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시를 썼으며, 열네 살이던 1820년에 그녀의 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그녀가 쓴 네 권으로 된 서사시집 『마라톤에서의 전투(The Battle of Marathon)』를 출간해 주었다. 정식으로 출간된 그녀의 첫 번째 시집은 1826년 『마음에 관한 에세이와 기타 시들(An Essay on Mind, with other poems)』인데, 이 시집의 출간으로 인해 그녀는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학자들과 서신 왕래를 하게 되었고, 그리스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1844년에 출간된 『시』로 인해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의 대열에 들어섰고 당시 무명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열렬한 구애 편지를 받게 된다. 스무 살이 될 무렵부터 당시로서는 진단을 내릴 수 없는 희귀병으로 인해 병마와 싸워 온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로버트의 구혼을 거절했으나 결국 로버트의 진심에 감동하여 부친의 반대를 피해 이탈리아로 도망쳐 결혼한다. 엘리자베스는 1861년 6월 29일 15년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마치고 죽었다.

엘리자베스가 로버트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그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쓴 상태였지만, 그와 만난 이후 『포르투갈어에서 옮긴 소네트(Sonnets from the Portuguese)』와 『오로라 리(Aurora Leigh)』라는 유명한 작품들을 쓰게 되었다. “포르투갈어(Portuguese)”는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부르던 애칭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의 사랑시 소네트는 남편인 로버트의 주장에 따라 다음번 시집에 포함되어 출간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그녀의 지위는 더 높아지고 확고해졌다. 워즈워스가 죽은 후인 1850년에 그녀는 계관시인 승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계관시인의 영예는 테니슨에게로 갔다. 1856년에 출간된, 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오로라 리』는 그녀의 야심적인 장시 작품으로 인기가 많았다. 1860년에는 이탈리아인들의 정치적 사건에 관한 『의회 이전의 시(Poems before Congress』라는 시집을 남편에게 헌사하며 출간했다. 그녀의 마지막 시집은 『악기(A Musical Instrument)』로, 그녀가 죽은 후에 남편이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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