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홍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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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홍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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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世泰, 유하柳下, 도장道長, 창랑滄浪
가난이 그의 전 생애를 숙명처럼 따라다닌 위항시인 유하(柳下) 홍세태(洪世泰)는 1653년에 무관인 아버지 홍익하(洪翊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도장(道長), 호는 창랑(滄浪)·유하(柳下).자(字)를 도장(道長)이라 하고 호는 창랑(滄浪)이라고 하였다. 이 시기는 문운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하던 조선조 후기 숙종 연간으로, 바야흐로 위항문학이 발흥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유하는 다섯 살에 이미 책을 읽을 줄 알았고, 나이 들어 경사와 제자백가에 무불통할 정도로 글재주를 타고났다. 신분 제약으로 인해 사회 진출의 통로를 폐쇄당한 그는 1675년 잡과(雜科)에 응시하여 한학과(漢學科)에 합격은 하였으나, 체아직에 머물다가 훨씬 뒤인 46세 때에야 비로소 이문학관의 직책에 나아갈 수 있었다. 궁핍한 생황을 그의 벼슬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이어 제술관에 임명되기도 하고 서부주부 겸 찬수랑이 되기도 하였지만, 생활 형편은 여전히 가난하였다.

뛰어난 문장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청직(淸職)에 나아갈 수 없는 봉건사회의 모순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였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하여 강한 비판을 가하기도 하였다. 불우한 처지의 그들은 유유상종하였고 대우받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비분강개를 시와 술로 스스로 즐겼으니, 이러한 모임이 바로 시회(詩會)였고 이들이 모여 문학활동을 펼친 모임이 시사(詩社)였던 것이다. 그가 참여한 시사(詩社)의 이름이 곧 ‘낙하시사(洛下詩社)’였다. 홀로 남은 아내에게 그가 직접 편집한 시고(詩稿)를 남기고 73세의 생애를 끝마쳤다. 그의 둘째사위인 조창회(趙昌會)와 문객인 김정우(金鼎禹)에 의해 『유하집(柳下集)』 14권이 간행되었으니 3편의 부(賦)와 2권의 문(文) 그리고 1,627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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