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 서창의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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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다.
1957년 9월 22일 세레명 ‘안나’로 영세 받다.
1959년 6월 29일 정결·순명·청빈 서원 맹세하다.
1962년 10월 17일 첫 소임지 강릉 본당으로 가다.
1968년 12월 두 번째 소임지 종로 본당으로 옮기다.
1973년 건강 악화로 수녀복을 벗다.
1974년 12월 20일 보따리 하나 들고 상계동 빈민촌으로 들어가 그곳 성당의 전교회장을 맡아 그들과 함께 15년 동안 울고 웃으며 지내다.
1991년 3월 17일 상계동 빈민촌보다 더 오지인 대부도 선감공소로 들어가다.
그곳 공소회장을 거치며 갯벌이 턱밑에 찬 가난한 바닷가 이웃들과 한 몸이 되어 새로운 공소 성전을 짓다.
2007년 6월 3일 폐암 진단 후, 6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 받다.
2009년 선감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남양성모성지 미사 중 “아멘”이 터졌고,
몸속에 있던 암 덩어리가 일시에 빠져나가는 기적을 체험하다.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께 이 사실을 알리고, 서 안나는 체험을 여러 차례 간증했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들을 현양하는 성지다.
2021년 5월 현재 서 안나는 대부도 선감공소에서 살고 계시다.
1957년 9월 22일 세레명 ‘안나’로 영세 받다.
1959년 6월 29일 정결·순명·청빈 서원 맹세하다.
1962년 10월 17일 첫 소임지 강릉 본당으로 가다.
1968년 12월 두 번째 소임지 종로 본당으로 옮기다.
1973년 건강 악화로 수녀복을 벗다.
1974년 12월 20일 보따리 하나 들고 상계동 빈민촌으로 들어가 그곳 성당의 전교회장을 맡아 그들과 함께 15년 동안 울고 웃으며 지내다.
1991년 3월 17일 상계동 빈민촌보다 더 오지인 대부도 선감공소로 들어가다.
그곳 공소회장을 거치며 갯벌이 턱밑에 찬 가난한 바닷가 이웃들과 한 몸이 되어 새로운 공소 성전을 짓다.
2007년 6월 3일 폐암 진단 후, 6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 받다.
2009년 선감 집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남양성모성지 미사 중 “아멘”이 터졌고,
몸속에 있던 암 덩어리가 일시에 빠져나가는 기적을 체험하다.
남양성모성지 이상각 신부께 이 사실을 알리고, 서 안나는 체험을 여러 차례 간증했다. 남양성모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들을 현양하는 성지다.
2021년 5월 현재 서 안나는 대부도 선감공소에서 살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