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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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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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ius Plinius Secundus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23~79)는 로마인이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라고 부르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코모Como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냈지만,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로마로 가서 이집트 문법학자인 아피온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는 아프리카, 이집트, 그리스 등을 여행하며 헤로도토스 같은 유명한 여행가가 되었으며, 스물세 살 때 게르마니아로 파견되어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휘하에서 군 복무를 하며 그의 총애를 받아 기병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로마로 돌아와 법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갈망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져서 법률 공부를 그만두고, 그가 잘 아는 폼포니우스의 생애와 게르마니아 전쟁의 역사를 저술하는 데 착수했다. 그가 쓴 『게르마니아 전쟁사Bella Germaniae』는 모두 20권이었는데 현재 한 권도 전하지 않는다. 네로 황제 치하에서 플리니우스는 히스파니아(에스파냐) 동남부 해안 근처의 행정장관이자 징세관에 임명되었다. 그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70년, 매제 루키우스 카이킬루스 킬로는 나중에 『서한집Epistulae』의 저자이자 법률가로 명성을 떨친 열 살 된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해 플리니우스는 임지에서 돌아오자마자 조카를 입양했다. 우리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조카(그를 소플리니우스로 부르기도 한다) 덕분이다.
플리니우스는 베수비오 화산이 마주보이는 항구 미세눔(지금의 미세노)의 해군기지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중 79년 8월 24일과 25일에 걸친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실종되었거나 조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화산 폭발로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 그리고 오플론티스가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에 근처 스타비아이에 머물고 있던 그도 화산 연기에 질식사했다는 설이 있고, 19세기 미국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인 제이컵 비글로Jacob Bigelow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 후 20세기 폼페이에서 발견된 유골 중에 플리니우스의 유골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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